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Mar 13. 2021

브런치 일 년, 그리고 다시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쯤 되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유롭게 산문을 쓰는 플랫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글 같지 않은 내 글을 누군가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감을 해준다는 데에 감동을 느꼈다. 글 목록의 숫자가 늘어가는 것에 그저 놀라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메인에 소개되어 방문자와 조회수가 폭발할 때면 놀라움을 넘어 세상이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일 년간 브런치를 통해서 다른 세상을 알았고 재미있었다.


지난 일 년간 나는 81개의 글을 썼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개의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니 꽤나 성공한 숫자이다. 그리고 3개의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었고 그중 한 개는 브런치북이 되었다. 매거진에 묶이지 않은 글도 14개 정도 된다. 퀄리티에 상관없이 아무튼 스스로와의 약속을 썩 꽤 잘 지켰다.


일 년 정도나 꾸준히 글을 올리고 보니 내가 무슨 큰 작가라도 된 듯 착각이 들었나 보다. 언젠가부터 잘 쓰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잘 쓰는 작가일 거라는 착각이 생겼다. 잘 써보리라는 마음이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부담이 생겼다. 부담은 시작을 어렵게 만들었다.


처음 브런치를 찾아와 글을 쓸 때만 해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서 하나만을 고르는 것이 어려웠다. 일 년 전은 내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긴 때였고 그 변화와 그 전의 삶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들려주고픈 이야기도 많았다. 내 안의 이야기만으로도 소재는 충분하였다. 그저 않아서 차분히 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미있던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자꾸 욕심이 난다. 첫 문장을 의미 있게 재미있게 쓰고 싶다. 의미와 재미의 두 가지를 모두 사로잡는 첫 문장을 만들려다 보니 첫 문장에서만 몇 시간을 허비한다. 쓰고 지우고 쓰고 고치고 그러다 글쓰기를 미룬다. 내일 써야지. 다음에 써야지. 잘 써질 때 써야지. 좋은 글귀가 번개처럼 떠오르면 써야지.

글을 쓰는 기간이 시작 때에 비해 자꾸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나는 글을 안 쓰는 날수만큼 머릿속 생각 회로는 가동이 되지 않아서 혈관 속이 혈전으로 막힌 것처럼 서서히 막혀가고 있나 보다. 문장이 더 떠오르지 않고 키보드는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는 그 많던 소재와 이야기는 사라지고 내가 무얼 쓰고 싶은 건지 그것도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보다 남들이 보고 재미있어할 만한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에 사람들이 좋다고 할까, 를 생각하고 찾다 보면 또 시간은 금방 간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자료조사를 방송 작가나 대학원 논문 준비하는 대학원생처럼 거창하게 하는 것은 또 아니다. 그저 인터넷 검색 몇 번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글이 인기를 끄는 가, 정도를 클릭하고 또 머리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뿐이다. 앉아서 그리고 누워서 하는 생각에는 재미난 이야기는 전혀 떠오르지 않고 아이디어는 컴퓨터 화면에 탄생하기도 전에 생각만으로 용도 폐기되어버린다. 생각과 폐기의 무한 반복이다. 시작된 생각의 시작되지 않은 생산은 무기력과 어설픈 치기만을 낳았다. 나는 요즘 그런 상태에 빠져있다.


애초부터 평범한 나는 평범한 이야기밖에 할 게 없었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겪는 특별한 경험이 없던 나는 그나마 제일 오래 한 경험인 육아와 자녀교육 이야기를 처음 소재로 글을 썼었다. 그때는 생각했다. 육아 이야기를 쓰고 나면 그다음으로 오래 했던 직장 생활 이야기, 그다음에는 대학 생활 이야기, 그다음에는 우리 엄마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 내 고민 이야기, 이런 것들을 막 그냥 써야겠다고.

하지만 일 년을 지나면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좋은 글에 대한 기대를 스스로에게 하고는 이런 평범하고 남들과 똑같은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 거라고 쓸 만한 의미도 없을 거라고 평범한 소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다. 지금 나는 글의 첫 줄이 그래서 너무 어렵다. 차일피일 글 쓰는 것을 미루고 있다.


많이 어렵게 책상에 앉아 오래간만에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 일 년을 맞이한 즈음, 글은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방황을 하고 있다. 내가 무슨 작가라고? 알아주지도 않는 꼴사나운 방황을 하는 건지 우습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잡생각을 떨치고 아무렇게라도 이렇게 앉아서 쓰는 것은, 겨우 일 년 만에 중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강원국씨는 글 잘 쓰는 법에 대하여 첫 번째 원칙으로 '무조건 매일 써라'는 것이었다. 한 때 블로그에 백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쓸 거리가 없어서 하루 종일 쓸 거리를 찾다가 단 세줄을 쓴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매일 쓰니 써지기는 하더라.

백일 글쓰기가 끝난 이루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닌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그런데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잃어버렸고 글을 시작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기 직전이다.


브런치 시작한 지 딱 일 년 하고 한 달.

다시 초심으로. 다시 시작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글감을 찾지 말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도 처음에 마음먹었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학생들에게 새 학기가 있듯이 3월 13일, 오늘이 2021년도 나의 새 학기 첫날이다.

다시 매주 하나 이상의 글로 브런치를 꾸준히 방문하겠다. 새 학기 내가 나에게 내어준 이번 학기 숙제이다. 6월의 어느 날 숙제 검사를 하는 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나에게 꼭 찍어주겠다.



작가의 이전글 1990년 5월 9일 거리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