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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ug 17. 2021

우리집 가족여행의 이유

여행과 창의력

내가 좋아하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는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 2가지는 독서와 여행이라고 했다.


김정운은 창의력이라는 것을 키우려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사물을 낯설기 보아야 하고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고 했다. 늘 보던 것, 늘 먹던 것, 늘 하던 것만 하면 익숙하메 길들여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어 새로운 것을 도무지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의 책에서-김정운의 모든 책을 다 읽었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이 말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반발심이 일어났다. 나는 독서라 하면 꽤나 읽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라는 사람은 도통 창의력, 창조성 이딴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독서가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느 정답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인 여행에 대하여 생각해보자면, 또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어린 시절 많이 경험하고 많이 보아야 한다는-여행이 그런 것이라면-것과 완전 반대 방향에 있었다. 이린 시절 경험한 여행이라곤 여름 방학때마다 며칠씩 묵어갔던 외갓집뿐이었다. 그 외에는 집 앞의 들과 동산과 개울뿐이었다. 뭔가 낯선 것을 접해 볼 기회란 나에겐 없었다. 내가 창의력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으니 나는 김정운의 그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정운의 그 말 탓이었는지 아니면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보니 비교적 긴 휴가를 쓰기 쉬워서였는지 혹은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해주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주 여행을-해외 여행을-다녀야 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온 가족 해외여행을 계획했는데 2008년 가까운 아시아나라인 홍콩/마카오가 우리의 첫 여행지였다.


짧은 3박 4일의 첫 해외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와 흐뭇한 추억도 많이 있지만 가장 큰 기억은 비행기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여름이었는데 홍콩에 돌풍이 일어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첫 해외여행인데 출발도 못하고 하루를 생으로 까먹게 생겨서 무척 억울해하고 있었다. 안전이나 사고 등에 대해서는 당장 내 일이 아니면 둔감해지는 것이 사람이라, 설마 뭔 일이 있겠냐며 그저 비행기가 뜨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3시간이 넘게 대기하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우리 비행기는 이륙을 했다. 이륙하자마자 제공되는 비빔밥 기내식을 신기해하며 우리는 무슨 미션을 부여받은 사람처럼 꾸역 꾸역 기내식을 다 먹고 음료와 술까지 몇 차례나 다 먹은 후에 밤비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내 방송에서 30분쯤 있으면 홍콩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되고 얼마 안있어 터뷸런스가 왔다. 아니 터뷸런스가 아니라 돌풍이었다. 우리를 한국에서 3시간이 넘게 출발못하게 한 그 돌풍이 다시 홍콩 하늘에 불어닥치고 있었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기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한참을 감았던 태엽이 막 풀린 장난감처럼 제 혼자 위아래로 앞뒤로 양옆으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랐고 아이들은 더 놀랐다. 미션처럼 먹은 비빔밥은 둘째는 급기야 다 게워내고 말았다. 창의력이니, 많은 경험이니 하다가 이제 죽는구나, 죽기엔 너무 젊지 않은가, 애들은 죽지엔 너무 어리지 않은가, 여기서 나 혼자 살 바에야 다같이 죽는게 낫겠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짧지 않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대만이나 중국으로 회항을 하네 마네 하던 비행기는 천만다행으로 홍콩 공장에 착륙을 하였다. 홍콩을 여행하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진이 다 빠져 집에 가고 싶었고 많은 경험은 충분하다 생각되었다.


우리의 두번째 여행은 2010년 아이들은 각각 13살, 10살이었고 장소는 대개의 한국인들이 꿈에 그린다는 서유럽이었다. 당시로-아니 지금도-거금인 천만원 정도의 돈을 들여 여행을 계획했다. 자유와 창의를 체험하기에 패키지 여행은 한계가 있지 싶었다. 그리고 뭔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여행은 나에게 경험과 함께 자랑거리도 제공해주어야 했다. 그래야 천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았다.


장소와 날짜가 정해진 다음에는 모든 계획과 일정은 내가 조직했다. 바쁜 신랑을 배제시켰고 어려서 뭐가 뭔지 잘 모를 것 같은 아이들도 제외시켰다.

2010년 여행계획이 아직 컴퓨터에 살아있었다.

계획은 완벽해보였다. 이제 낯선 곳을 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새벽에 도착하고 첫날 암스테르담에서 풍차공원(잔세스키스)을 오전에 돌아보았다. 오후에는 반고호 미술관에 가서 해바라기 등 유명한 반고호의 그림을 봐야할 차례였다. 담락 거리를 돌아보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나만) 설레는 마음으로 반고호 미술관엘 입장했다. 1층을 돌아보고 있을 때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며 커다란 등받이 없는 탁자처럼 생긴 소파에 잠깐 앉아있겠다고 해서 나는 허락을 했다. 새벽 비행기에 쉬지도 못하고 풍차 공원에 담락거리까지, 어른인 나도 다리가 아픈데 아이들은 당연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그림은 안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제일 윗층인 3층 중요 자리에 있는 노오란 해바리기 그림만 봐도 본전뽑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1,2층의 그림을 보고 해바라기 앞에서 애들을 데리고 갈 작정이었다.


3층 해바라기가 바로 눈앞이었다. 나는 1층 소파에서 쉬고 있을 애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소파에 우리 아이들은 대(大)자로 뻗어서 자고 있었다. 옆에서 미술관 경비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얼른 애들을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 해바라기 보러 가자. 어서 일어나"

내가 애들을 깨우는 동안 옆에 있던 경비 아줌마가 뭐라 뭐라 했다. 너무 유창한 발음이라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서운 얼굴에 삿대질까지 해대는 걸 보니 대략 "아니, 여긴 공공시설물이고 여러 사람들이 잠깐 쉬어가거나 앉아있는 곳인데 뭐하는 짓입니까? 여기가 댁네 집인줄 아쇼, 엉? 여기가 당신집 안방인줄 아냔 말이예요! 참, 내 애들이라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어서 애들 데리고 가욧!" 이런 내용인 듯 했다. 아이들은 잠에 취해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와 남편이 애들 한 명씩 안고 데리고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그래도 비싼 입장료 값 하려고 3층으로 기어코 올라갔다. 해바라기 앞에서 가슴에 안겨 잠들어있는 애들을 깨워서 말했다. "애들아, 이게 고호의 해바라기야. 잠깐 눈 좀 떠서 봐봐. 이거 억수로 유명한 그림이라고. 여기 또 오겠니? 어서 봐봐." 애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꿈속인듯 '몰라, 몰라'만 입밖으로 되뇌일 뿐이었다.

나는 피곤에 쩔은 애들을 안고 내 창의력만 채운 다음에 비싼 미술관을 나와야 했다. 호텔로 가는 지하철에서 그 경비원이 우리가 한국사람인 걸 몰라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이게 웬 나라망신인가 했다.


기족들과 가끔씩 가족여행의 추억을 곱씹곤 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말한다.

"고호미술관엘 갔었다고? 하나도 기억이 안나"

"유럽갔을 때는 에펠탑이랑 바티칸 천정화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홍콩 비행기 돌풍? 그런 일이 있었나?"

"거, 호주 우리 갔었던 데 이름이 뭐라고? 생각이 안나네."

"거기 꼭 다시 한번 친구들이랑 가봐야지. 그럼 뭐라도 생각나겠지"


아이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많은 경험과 창의력 생성을 위해 돈과 비용을 들여 가족여행을 갔건만 정작 아이들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나와 남편의 추억만 잔뜩 쌓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당장 기억은 못하지만 머리 속 저 깊은 기억저장장치 속 어딘가 여행의 기억이, 감각이, 잠재력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한 것은 부모이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그것을 끄집어 낼 일이 있을 것이라고.


코로나로 낯선 경험과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주는 여행-해외여행-을 못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으로 봐선 코로나 발생 3년째인 내년에도 여행을 못갈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선인가? 나도 왠지 모르게 자꾸 삶과 생각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창의력이 생성되지도 연습되지도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 낯선 사람 낯선 환경 낯선 시스템과 조우하고 싶다. 나도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여권을 들고 공항 탑승구에 서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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