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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02. 2021

성석제 - <투명 인간>


< 투명인간 김만수의 이력서 >

*이름: 김만수(金萬壽)

*출생: 1961년 X월 X일

*주소: 서울 어느 동네 벌집촌.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오만 원짜리 판잣집

*학력: - 시골 동네 문희군 소재 문희 국민학교 재학 중 5학년(1972년) 서울로 전학하여 서울 어느 국민학교   졸업

         - 서울의 어느 중학교 졸업

         - 서울 어느 동네에 있는 5년짜리 공업전문 고등학교 졸업

*병역: 대한민국 전투경찰 만기 제대(1981~1983) - 탈영병을 잡기 위한 군경 합동 작전 시 혼자 시민들을 위험 작전 지역에서 대피시키다 탈영병으로부터 총을 맞음. 이때의 총상으로 6개월간 군 병원 입원 후 만기 제대

*경력: - 군 전역 후 세차장에서 손 세차로 사회생활 시작

         - 손 세차 단골손님의 소개로 성일산업(자동차 부품 회사) 생산관리과 사원으로 입사

         - 탁월한 사회성과 사교성, 성실성으로 성일산업 노무과로 보직 이동 후 경조사 전담팀 창설 및 과장 대리 역임

         - 경영 부실로 회사 흑자 부도 후 성일산업 재건을 위한 투쟁 위원회 위원장 및 마지막 7인 위원회 위원장 역임 (~1995 혹은 1996년까지)

         - 성일 산업 퇴사(혹은 채권단에 의한 강제 퇴출) 후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신문 배달

         - 신문 배달 후 오전 10시까지 폐지 수거 업무

         - 10시부터 1시까지 세차장 단골손님 집 파트타임 청소 도우미

         - 1시부터 4시까지 인근 시장 가게들 물품(쌀, 부식, 채소, 식당 등) 배달

         - 4시부터 7시까지 직장인 단골손님 손 세차 아르바이트

         - 7시부터 9시까지 인근 세탁소 세탁물 수거 및 가정집 배달

         - 9시부터 11:30분까지 인근 식당의 야간 야식 배달

         - 11:30부터 자정까지 24시간 찜질방 청소 알바

         - 상기 파트타임 및 알바로 7년 만에 약 7억 가량의 빚 청산 및 신용불량자 탈출 성공

           (성실성 확실히 보장)

*가족관계: - 일제 시절 항일운동으로 옥살이를 하고 옥바라지로 파탄 난 집안 식구를 이끌고 개운리로 야반  도주한 할아버지

               - 손 귀한 집안에 시집와 4대 독자 충현(김만수 아버지)을 낳은 할머니

               - 인텔리 하지만 가족부양에는 무능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공부는 않고 그저 일만 열심히 한   아버지

               - 손 귀한 집에서 무려 6남매를 낳고 시부모, 남편 봉양과 살림, 육아를 혼자 도맡아 한 솜씨 좋은 엄마

               - 공부 잘하고 착하고 배려심 있고 서울대를 갔지만 등록금 때문에 현장 노가다를 뛰다 월남까지  간, 그러다 고엽제 때문에 월남에서 병사한 큰 형 김백수

               - 살림 밑천이라 중학교도 못 가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다 홧김에 운전수에게 시집간 큰 누나 금희

               - 공장에 다니며 동생들 학비를 보태는데 인생을 바쳤으나 연탄가스 중독으로 한순간에 바보멍청이가 되어버린 작은 누나 명희

               - 욕심 많고 이기적이지만 공부는 곧 잘해 삼수 끝의 서울대 입학한 연년생 동생 석수

               - 언니, 오빠들의 뒤바라지로 서울 명문 여대에 입학하여 야학으로 노동으로 길을 들어버린 막내 옥희

               - 성일산업 앞 식당에서 만나 결혼을 한 맘씨 좋고 솜씨 좋은 아내 송진주

               - 석수와 석수의 여자친구인 오영주에게서 버림받았지만 사랑으로 키우고 싶었던 아들 태석

*별명: - 소쿨이 - 소쿠리 하나 들고나가면 온갖 나물을 누구보다 빨리 잘 캐어서 생긴 별명

         - 하회탈 - 늘 웃고 있는 얼굴이어서.

*취미: 없음

*특기: - 남 이야기 들어주기 - 노무팀 근무 시 노사화합과 회사의 노동 분규 무발생에 큰 영향을 끼침

         - 청소 - 무언가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짐

         - 식물에 대한 지식 - 산이나 들에서 나는 대부분의 식물, 약초를 앎

*성장 배경: 산골 화전민 마을에 살아서 학교까지 편도 십 리 왕복 이십 리를 걸어 다녔음.다른 남매들과 달리 공부를 못했음.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크고 길어 어머니를 힘들게 하였음.

*성격 장점: - 철저한 책임감으로 아버지가 직업을 놓은 후부터 온 가족의 생계와 학비를 다 책임짐.

                  성일산업 부도 후 회사 재건을 위해 투쟁 중일 때 사재를 털어 투쟁 중인 회사 동료의 생계를                      책임짐. 그러다 전 재산을 날림.

                - 뭐든지 열심히 함. 세차 일을 할 때도 세차뿐 아니라 내 차를 돌보듯 기본 정비 차량 하부 엔진까지 청소를 하며 단시일 내에 수백 명의 단골 확보 경력이 있음.

                - 타고난 친화력. 고등학교 시절 함부로 말도 못 붙이던 새마을금고 이사장 집 예쁜 여학생 인혜의 유일한 친구로 인혜가 자주 놀러와 라면도 끓여먹고 같이 놀았음. 성일산업 재직 당시 사장님부터 말단 생산직 직원까지 모두와 사이가 아주 좋았음.

*성격 단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에게 모진 소리를 못함.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여 손해를 많이 봄.

*좌우명: 책임을 질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올바른 정의이다!



김만수 씨는 61년에 시골에서 태어나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집안의 희망이었던 큰 형의 죽음으로 집안이 서울로 이사를 하고 폭력과 통제가 난무하던 감옥 혹은 군대 같은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어쩌다 보니 집안의 가장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제대 후부터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만수 씨는 온 집안을 책임졌다. 생계부터 가족의 목숨을 좌우하는 결정까지. 만수 씨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맡겨진 임무에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며 혼자만의 삶이 아닌 가족, 동료의 몫까지 적어도 20명의 삶을 살아냈고 버텨내었다.


모두들 도망쳤다. 모두들 외면했고 회피했다. 해일처럼 다가오는 역경을 고난을 남에게 넘기기 바빴다. 오직 만수 씨만 빼고는.


평생 엄마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만을 강요당할 것이 두려웠던 맏딸 금희는 아무 남자를 골라 결혼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던 무려 서울대까지 입학했던 동생 석수는 '어쩌다 운동권'으로 고문을 받다가 삶 자체를 본인 스스로를 회피했다. 모두를 남겨두고 혼자 도망쳤다. 머리로 노동운동하던 막내 옥희는 머리가 복잡해지자 역시 머리로 노동운동하던 남자와 결혼 속으로 도피했다. 결국은 이 결혼은 허락한 만수 씨를 원망하면서. 집안의 희망 큰 아들을 잃고 아버지는 술로 도피했다. 회사가 부도가 나자 사장은 채권단에서 도망쳤고 직원들은 각자 살 길을 찾다 떠났다. 같이 투쟁하던 동료들은 그들의 생계를 회피했다. 석수의 여자친구 오영주는 유학을 위해 석수와 자신의 아이 태석을 버렸다.


모두가 회피하거나 버렸거나 도망친 현실을 만수 씨는 책임을 졌다. 책임진 이상 이 땅에 그보다 열심히 산 사람이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고 버틴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만수 씨는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가족은 그를 떠났고 결국 만수 씨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투명 인간이 안되기 위해 만수 씨는 이렇게 했어야 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만수 씨에게 이렇게 조언했을 것이다.

- 만수 씨, 동생 석수 삼수 고만두라 그래. 없는 형편에 성적에 맞춰 장학금 주는 데 가야지. 무슨 삼수까지 해서 서울대야. 동생 보고 공부 집어치우고 아무 데나 들어가라고 해!
- 만수 씨, 연탄가스 마시고 지체 저능아처럼 된 명희 누나, 그냥 요양원이나 정신병원으로 보내. 집에서 누나 케어하면 집사람도 힘들어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니야. 정신없는 누나도 모를 거야. 그냥 요양원 보내. 알았어?
- 만수 씨, 은행 같은 채권단 상대로 못 이겨. 그러니까 투쟁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다른데 취직해. 성일산업? 원상 복귀? 복직? 됐네요. 정신 차리세요, 이 친구야!
- 만수 씨, 성일산업 취직하지 말고 세차장 사장님이 제안한 세차장 사업같이 하지그래? 회사원 해봐야 월급밖에 더 있어? 장사를 해야 돈도 만지고 잘 살게 돼. 산업 역군? 나라에 보탬? 누가 알아준다고! 지금이라도 같이 하자 그래.


하지만 만수 씨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옆에 누구 하나라도 자기만이 아닌 만수 씨 인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만수 씨도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었을까?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 보면 휠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 367쪽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아마도 만수 씨는 그래도 책임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된 만수 씨, 늘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약간은 변했을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닌 채로 일까?

나는 간절히 열심히 산, 투명 인간이어도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을 김만수 씨를 응원한다. 세상은 늘 변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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