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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l 22. 2021

셰익스피어 - <한여름밤의 꿈>


참여중인 독서토론 클럽 '책담'이 30회를 맞았다.

도서관 강의를 통해서 처음 만난 회원들은 모두 다 30회까지나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여러 우여곡절끝에 만 2년 넘게 무려 30회씩이나 '책담'을 만들고 이끌어 온 우리 스스로를

우리는 기특해 했다.

60회, 90회, 100회까지 한번 가보자고 언어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약속을 했다.

무려 3중 잠금 장치가 있는 약속이니 쉽게 허물 수 없지 않을까?


30번째 독서 토론 책은 너무도 유명해서 초등학생도 알만한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한여름밤의 꿈>. 낮에는 내리쬐는 태양으로

밤에는 어둠에 지기 싫어하는 한낮의 태양이 남겨놓은 열기로

때는 바야흐로 '여름'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7월에 꼭 맞는 책 선정이다.


이렇듯 계절과 함께하는 책을 선정한 안목있는 고씨 여인은 전직 뮤지컬 무대 감독 출신이다.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연극무대에서 조연출을 거쳐

뮤지컬과 행사의 무대감독을 두루 거쳤으니 <한여름밤의 꿈>이야말로

고씨 여인에겐 한참을 지나쳐온 고향 마을에 부모님을 뵈러 간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서 토론 모임은

토론이라기엔 우리가 모르는 고씨 여인이 가진 지식의 향연장이 되었고,

고씨 여인의 강의장이라가엔

사랑의 묘약이 가진 효험으로 인해 다른 여인들의 사랑에 대한 꿀 떨어지는 경연장이었다.


고씨 여인이 대접하는 지식의 향연-달의 비유, 티타니아와 당나귀의 성적 은유, 당시 시대상, 언어의 유희 등등-에 나는 연극영화대학원을 가고싶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과 모르는 것을 대면할 때의 놀람과 부끄러움은

내가 세상을 더 넓게 보기 위해 산등성이 한 계단을 올라서는 것과 같다.

한 계단 더 올라갔을 때 보이는 것은 계단 아래에서 보는 풍경과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여름밤의 꿈>은 고작 110쪽짜리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이 짧은 작품 안에는 온갖 이야기가 다 있다.

지금은 흔해 빠진 소재인 사랑의 묘약이 등장해서 갑자기 누군가를 이유도 없이 사랑하게 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근간이 되는 '피라무스와 디스비'라는 극 중 극도 상연되며,

지극히 현실적인 도시와 환상과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숲속의 2중 공간 구도도 그려져 있다.


아주 짧은 소설 안에 고대부터 당시의 시대상까지 온갖 이야기를 섞어찌개마냥 버무려놓았는데도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흥미를 유발하며 곳곳에 배치된 코미디에 웃음을 유발한다.

제사 지낸 후 온갖 제사 음식을 한데 섞어 생김도 불분명하고 정체도 모를 음식이 되었는데

먹어보면 나도 모르는 새 바닥을 긁게되는 그런 맛의 작품이 <한여름밤의 꿈>이다.


작품은 크게 네 부류의 계층이 등장한다.

먼저, 요정계. 요정계의 왕과 왕비인 오베론과 티타니아와 뒤죽박죽으로 한데 섞이는 것을 즐기는 요정 퍽, 그리고 이들을 시중드는 각종 요정들(완두꽃, 거미줄, 티끌, 겨자씨)

두번째로 지배층계. 여기에는 아테네의 시장과도 같은 개념의 지도층인 테세우스와 그의 부인 히폴리타 그리고 그의 시종들이 있고,

세번째로는 귀족층인데 작품의 주요 인물로 잘못 발린 사랑의 묘약으로 사랑의 작대기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연인들-허미아, 라이샌더, 헬레나, 드미트리우스-과 허미아의 아버지 이지우스가 그들이고,

마지막 네번째 부류로는 '피라무스와 디스비'를 연극하는 노동계층이 있는데 목수 퀸즈, 베틀장이 바틈, 풀무장이 플루트, 땜장이 스나우트, 가구장이 스넉, 양복장이 스타블링이 여기에 속한다.


네 부류의 인간군상이(아, 몇 명은 인간이 아니지만) 서로 교차하고 어긋나면서 오해가 빚어지고 갈등이 고조되며 계층간의 크로스오버가 생기기도 한다. 1500년대 중반에 발표된 작품이 현대 문학과 각종 문화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라만큼 <한여름밤의 꿈>에는 다양하고 깔끔한 드라마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군더더기없이.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찬양하는 것이리라.


세익스피어의 대부분의(아마 거의? - 고씨 여인에게 물어봐야겠다) 작품이 희곡으로 씌여졌다.

처음에 연극을 하듯 모든 배역의 대사를 톤을 바꿔가며 읽었는데

비록 국어로 번역되었다 하더라도 최대한 운율을 살려 번역을 해놓았기에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대사 하나 하나가 캐릭터를 잘 표현해놓아서 읽는 재미가 쏙쏙,

독서 토론 회원들이랑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뒷부분은 시간에 쫓기다보니 다른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쓰윽 읽었더니,

희곡은 서사가 눈에 띄지 않는 재미없는 단어의 나열뿐인 것으로 느껴졌고,

아름답고 생동감있던 대사는 드레스에 꼭 없어도 되는 장식으로 달아놓은 코사지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역시 작품은 작가가 쓴 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독자의 첫 번째 의무가 아닐까 한다.


열대야로 자정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찌는듯한 지금 이 한여름밤에,

나는 사랑의 묘약이든, 숲 속 요정이든

누군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나에게로 와서 꿈 꾸게해주고

환상을 체험하게 되기를 소원하며

잠자리에 들러간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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