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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ug 26. 2021

앙드레 지드 -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성경의 이 구절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당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아직 알 수가 없다. 내가 책을 잘 못 읽은 걸까? 아니면 지드의 좁은 문은 성경과 다른 의미인가? 그도 아니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내가 성경에서 말하는 '좁은 문'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학창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로 '좁은 문'을 추천받곤 했다. 그때 내가 '좁은 문'이라는 제목에서 받은 느낌은 다음과 같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이 욕심 많은 사람의 모함으로 부모를 잃고 재산도 다 잃고 바닥의 삶까지 갔지만 부모의 복수도 하고 꿈도 이루기 위해서 모진 결심을 한다. 그 후 실력을 키우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꿈을 찾는 데 성공한다. 실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복수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달을 만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복수에 대한 마음은 접고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된다."


즉, 전형적인 고생담과 성공 스토리인 것 같았다. 한창 세상을 삐딱하게 꼬나보던 사춘기 시절 나는 '좁은 문'이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책을 필독도서로 추천해준 선생님 말씀을 한 귀로 흘리고 이 책을 내 독서 목록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위에 언급된 성경 구절도 한몫했음이었다.



소설의 주요 인물은 주인공 알리사, 알리사와 사랑에 빠진 제롬, 제롬을 좋아한 알리사의 동생 줄리에뜨이다. 그리고 나는 주요 인물 리스트에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알리사의 엄마인 루실 뷔꼴랭. 루실은 타고난 미모를 가졌으나 사랑을 주는 것을 몰라 어느 장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기 전까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자고 먹고 몸을 가꾸는 일뿐이었다. 아니, 하나가 더 있었지. 루실은 어린 제롬을 성추행했었다.


알리사와 제롬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온 집안이 알고 약혼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지만 알리사는 약혼을 청하는 제롬에게 약혼이라는 절차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더 중요하니 약혼을 미루자고 한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들은 '좁은 문'에 대한 성경 말씀과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으로 그녀의 말에 따른다. 제롬은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좁은 문'이었던 것이다.


한편, 제롬을 사랑하지만 자신을 봐주지 않고 언니를 더 깊이 사랑하는 제롬에 대한 마음을 감추고 줄리에뜨는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사업가와 결혼을 한다. 제롬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알리사는 제롬을 만나기를 꺼려하고 제롬 역시 어색한 만남보다 솔직한 편지가 더 편안하다. 그러던 중 결혼과 약혼을 요구하는 제롬에게 알리사는 "우리는 행복보다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났다"며 죽음도 하느님 안에 있는 그들을 갈라놓지 못할 거라고 하며 결혼을 거부하고 제롬을 멀리한다.


세월이 흐르고 알리사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롬은 알리사가 남긴 편지에서 알리사는 영혼을 다 바쳐 제롬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리사가 죽었음에도 여전히 알리사를 잊지 못하는 제롬에게 줄리에뜨는 묻는다. 희망 없는 사랑이 가능하냐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제롬에게 줄리에뜨는 말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



이 책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주인공이 세상살이에 부침을 겪지도 않았고 꿈을 이루고 복수에 대한 결심도 없었다. 오로지 제롬과 알리사가 주고받은 편지와 제롬의 생각과 고백뿐이었다. 아, 나는 행동과 서사보다 감정과 생각이 많이 낭만주의적인 소설 애호가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사랑을 밀어내고 보고 싶으면서 만나지도 않고 오로지 편지로만 감정을 교류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알리사와 제롬이 너무 답답하였다.


알리사는 어머니가 바람나서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을 보살피는 것을 제외하곤 재력 있는 집안의 규수로서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에 변화와 반전이라곤 전혀 없었다. 변화라면 어머니가 바람나서 집을 나간 정도? 알리사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자신에게도 그 피가 전해졌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건지 스스로를 가혹할 정도로 수도원의 수도승처럼 (심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우연히 동생 줄리에뜨가 제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제롬을 멀리한 것은 아마도 나름 동생을 위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알리사는 사랑을 눈앞에 두고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사랑에서 멀어지는 좁은 문을 선택했다.


제롬은 사춘기 시절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 첫사랑 알리사를 신적인 존재로 모셔놓고 알리사가 하자는 대로 다 응해주었다. 마치 알리사가 하느님이라도 된 것처럼. 약혼을 미루자면 미루었고 그녀를 만나러 갈 때 오지마라고 해서 몇 년 동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에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알리사를 위해 그녀가 좋아할 만한 책을 읽었다. 제롬에게 알리사는 신이었다. 제롬은 여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신적인 어떤 존재를 사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알리사 방에서 영적인 책들이 치워져 있고 세속적인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제롬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람이 내가 알던 내가 사랑한 그 알리사가 맞나!' 제롬은 그가 생각한 '좁은 문'은 알리사를 사랑하는 것, 그녀가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좁은 문을 통과하면 하느님에게로 가까이 가고 하느님 안에서 알리사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줄리에뜨는 동적인 논쟁과 다툼이 없이 정적인 생각의 활자적 교류만 있었던 주인공 알리사와 제롬과는 달리  현실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줄리에뜨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다.) 제롬을 좋아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그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충실히 결혼 생활을 영위하였다. 아이도 다섯이나 낳으면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세상을 발을 딛고 삶을 살아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고 보듬어 주면서.



현실 속 사랑을 한 것이 아닌 꿈속의 사랑을 한 제롬에게 현실을 살아낸 사람이 한 마지막 일침. 그래서 이 말이 가치 있게 들렸다.


알리사와 제롬은 그들을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쉽게 쟁취할 수 있는 사랑을 굳이 돌아 돌아가면서 이루지 못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으니. 그들은 스스로 만든 좁은 문을 들어가 걸으면서 자신들을 대단하다고 여겼을까?


나는 그저 편안한 부잣집(아마도 귀족) 도련님과 아가씨들이 고행 코스프레쯤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소설이 쓰인 1909년 즈음에는 러시아 혁명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5년 전으로 유럽은 시국이 어수선할 때였다. 격변의 시기에 신과 사랑으로 좁은 문을 노래한다는 것이 못내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지 않고 정말로 자신이 사랑하는 제롬을 떠나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의 결합을 선택한 줄리에뜨의 선택이 더 '좁은 문'에 들어가는 선택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만 보고 언니인 알리사와 제롬을 중재하는 것이 줄리에뜨에겐 많이 아픈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줄리에뜨는 자신의 희생으로 둘의 사랑을 지켜주었다. 비록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알리사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잠들어 있는" 제롬의 사랑의 알리사에 대한 사랑에 슬퍼하기는 하지만.

내가 미래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었다. 이처럼 나는 행복과 덕행을 혼돈하고 있었다. (P35)


알리사도 제롬도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행복(사랑)으로 향하는 고행(덕행)을 행복이라고, 사랑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교훈은 이거다.

행복해지려고 하지 말자.

왜냐하면, 지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이 순간 자체가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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