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 내가 나갈게. 안 그래도 이제 그만 쉬고 싶었어. 나이 한 살이라도 많은 나라면 김 과장도 부담이 덜겠지. 젊은 이들은 그냥 놔둬."
2년 3개월 전 내가 회사 인사과장한테 희망퇴직을 하겠다고 이렇게 말한 후 약 일주일 뒤 나는 내가 한 말을 후회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는 참 세상살이와 세상인심을 대하기에 순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였다. 총무와 비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그 이후로 고객관리, 영업관리, 물류관리, 영업지원을 거쳐 구매팀에서 마지막 안착을 하였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 어떤 여한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소였다.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전진했고 가라는 쪽으로 이동했다. 등에 놓인 써레는 무거웠지만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개처럼 주인에게 꼬리 치는 법도 몰랐고 고양이처럼 튕겨대는 맛도 몰랐다. 요령과 술수를 피우는 여우와 늑대들을 불평하면서도 소는 주인에게 이끌려 땅을 파기만 했다. 우시장에 팔리거나 잡아먹히지 않을 걸 보면 '나'라는 소가 일구었던 땅이 꽤 쓸만했던 모양이다.
소처럼 일했던 25년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출산을 겪었다. 육아를 위해서 친정집 옆으로 이사를 하고서 더부살이인지, 두 집 살림인지를 하였다. 아이 맡긴 죄인은 비록 친정엄마라 하더라도 두 배의 눈치, 두 배의 비용, 두 배의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 나는 아이로 인해 발생하는 외부적 환경과 사건들로 인해 세 배의 눈치를 보게 되었는데, 그 무렵 나는 영업지원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업지원팀은 고객에게 물건을 납품하고 마감하고 연락하고 불편을 해결해주고 소요 계획을 짜고 고객과 회사 내부 간의 일을 코디네이션 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전화는 주말이든 야간이든 고객님들이 하는 전화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 8시간 외 나머지 시간은 나에게 주어졌으나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퇴사를 고민했다.나도 야망이 있고 욕망이 들끓던 젊은 때여서 내 '야망과 욕망'을 실현시켜줄 것 같았던 일을 손에서 놓기는 쉽지 않았다. 때마침 회사에 구매팀이 생겼다. 소처럼 일한 덕분이었던지 구매팀으로 보직 변경 신청이 쉽게 허락되었다. 영업과 달리, 구매는 사회에서 말하는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업무라,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나는 퇴사를 무기한 연기했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먹기에 쉬운 것은 없었다. 갑이라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내 것이라서 심장 졸이지 않고 일할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나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하지만 본인이 실제로 겪기 전까지는 완벽히 알기 어려운 지극히 당연한 상식 - 남의 떡이 커 보인다. 는 사실을 나는 터득하였다. 내 성격에는 차라리 영업지원팀이 더 맞는 옷이었다.
갑이라서 을을 불러놓고 해마다 때마다 단가를 깎기 위해서 날실과 씨실을 가지고 완성된 원단을 짜듯이 온갖 사실과 진실을 이리 엮고 저리 나열하여 을들을 압박하는 것이 내 주 업무였다. 원가절감은 구매팀 최대의 업무 성과 지수이기 때문에 단가 인하는 해마다 반복되었다. 반복에서 오는 단조로움과 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을들을 압박하는 기술을 '협상과 상생, 설득'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연구하고 공부하였다. 되풀이되는 성과 지표와 목표 달성을 위해 나도 압박하고 경쟁시키는 구매자가 되어 갔다. 공급자를 압박하고 경쟁시키면서 나는 서서히 닳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고객님들 앞에서 굽신거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남한테 모진 소리하는 것은 사람이 못할 짓이었다. 나는 '야망과 욕망'의 실현을 통한 사회적 성취와 존재의 이유 따윈 잊어 갔고 그저 한 달에 한번 따박 따박 통장에 꼽히는 월급만을 생각하는 직장인이 되어갔다. 동시에 나는 항상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퇴사를 꿈꿀 때면 나는 박력 있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당신, 회사에서 잘 먹고 잘 사세요.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 볼 겁니다."
사직서를 책상 위에 당당하게 던지고 사무실을 나오는 상상을 틈만 나면 하였다. 내가 상상해도 내가 좀 멋있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빌었다. 내가 생각하는 퇴사는 동료와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아름다운 퇴사였다. 언젠가 한 번은 올 그날을 꿈꾸며 나는 통장 속 숫자에 빌붙어 살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연말 휴가를 다녀오니 회사가 어수선했다. 계속 경기가 안 좋았기 때문에 사내 분위기는 늘 가라앉아 있었는데 휴가 복귀의 첫날은 다른 때와 달랐다. 어수선한 이유를 수사반장처럼 조사했다. 아니 조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직원들은 "회사에 뭔 일 있나?"하고 운을 띄우기가 무섭게 내 조사에 스스로 이유를 너도나도 발설하였다.
희망퇴직을 받는대요. 5명 정도. 일단 이익을 못 낸 책임을 지고 사장이 그만두기로 했대요. 일 년 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준대요. 우리 회사에서 일 년치면 역대급이라는데, 누가 손을 들겠어요. 희망자가 없으니 결국은 찍히는 사람이 될까 봐 다들 걱정이네요.
나는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기력도 창의력도 역량도 서서히. 월급만 바라보는 삶은 몸속에서 피만 뽑아내어 사람이 말라 가는 느낌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삶을 갈구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바꿔 말하면, 멋진 퇴사를 위한 구실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희망퇴직 소문은 안성맞춤인 핑계가 되어주었다. 왜냐하면 그때 곧 고3이 되어가는 둘째는 엄마의 돌봄이 필요할 정도의 성적과 생활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무기한 연기해왔던 퇴사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퇴사를 하면, 일 년 치 위로금도 받을 수 있고 고3 아이 케어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내가 나간다면 혹시라도 모를 다른 젊은 과/차장급 직원의 걱정도 덜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월급만 쳐다보는 인생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며 실행해 보는 인생도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지금 퇴사를 하면, 동료와 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고마움의 큰 박수를 받는 멋진 퇴사가 가능할 것 같았다. 두루두루 내 소망이 이뤄지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더 오래 고민도 없이 바로 인사과장을 찾아갔다.
장면 1 #직원 단체 메일. 사장이 희망퇴직자 이름을 발표한다. 내 이름도 포함되었다. 사장의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회사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희망퇴직을 함에 직원 여러분들께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뼈를 깎는 심정으로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부터 나섰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참해준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여러분과 회사를 위해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나가시는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시고 퇴사 이후에도 발전과 건승할 수 있도록 모두 기원합시다. 감사합니다.'
장면 2 #메일 수신 후 직원들이 하나 둘 나에게 와서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회사 나가면 더 잘되실 거예요. 퇴사 축하합니다. 잘됐습니다.
장면 3 #인수인계를 하고 전체 송별 파티를 한 후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회사의 일익 번창을 기원하겠습니다. 잘 사세요.'라는 인사말을 던지고 멋지게 퇴장한다. 끝.
꿈은 꿈으로 끝났다. 내 희망퇴직 소식은 사장 명의로 직원들에게 발표되지 않았다. 사장은 이메일을 쓰기는 썼다고 한다. 그의 보스에게. 그가 결단하고 설득하여 사장을 포함한 몇 명의 직원을 내보기로 했으니 일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 지급을 결재해달라는 내용으로. 희망퇴직자 명단은 소문과 속삭임으로 퍼져나갔고 소문과 속삭임으로 전파된 것들은 박수와 응원으로 하는 이별이 아닌 신중과 눈치로 하는 송별이 되었다.
25년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의별 정치와 술수와 암행을 목격했으면서 아름다운 희망퇴직을 꿈꾸었다니! 그 순간 나는 왜 그리도 세상살이에 순진했을까?
희망퇴직을 말했던 당시, 큰 결심 해주어 고맙다던 사장은 내 박수와 응원을 소멸시키고 대신, 나보다 한 달 먼저 퇴사하면서 벌였던 그만의 송별 파티에서 왜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을까. 나는 내 아름다운 퇴직이 그의 개인적인 거대한 어떤 큰 그림을 위해 희생당했다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2년 전쯤에 이런 깔끔하지 못한 퇴사를 하고 말았다.
애매한 마지막 때문에 나는 내가 사표를 쓰고 퇴사를 했는지 아니면 회사에서 잘렸는지 스스로 헷갈리기도 했다. 이 헷갈림은 내 계획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었는데 이 때문인지 나는 아직까지 전 직장의 사장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그리고 나에게 뭐가 미안한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와 어떤 접촉도 하기 싫었다. 멀리서 그가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으면 하고 치졸한 바램을 기원할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인사과장에게 퇴사를 말하던 그날 그때,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퇴사의 모습이 아닐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혹시 내가 퇴사를 후회하는 걸까, 는 생각도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곱씹고 곱씹어봐도 그 회사는 그만두었을 것 같다. 아름다운 퇴사를 먼저 생각하기에는 나는 이미 벌써 소진되고 방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의 사장으로부터 왜 그랬는지, 뭐가 미안한지 이야기를 듣게 될 날이 올까? - 갱년기영향인지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어느 순간이면 이것이 궁금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