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또 다른 준비이려니 곧 도약하려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주변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1년이 되도록 여전하니 이젠 서서히 '그냥 집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름 뭔가 늘 하고 있는데 말이다.
퇴사 후 벌써 1년. 난 늘 뭔가를 하고 있지만 남에겐 그저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사람.
시어머니가 간단한 시술과 치료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누군가는 병원에 있어야 한다.
모두들 돈을 벌어오는 일을 하고 있다.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말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가 있겠다, 고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제가 있을께요.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라고 말해버렸다. 뒷말은 안해도 될 말이었다.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를 한 시어머니가 딸집에 잠깐 머물렀다. 아들과 며느리는 당연히 그의 엄마와 시어머니를 뵈러 갔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시누이가 6살배기 아이 돌보미를 구하고 있는 중이었나보다. 시어미니는 앞뒤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화제를 던졌다.
"며느리 네가 oo 봐주면 되겠네. 아직은 일 없잖아. 일 생길 때까지 니가 애 좀 봐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원래부터 포커페이스과는 아니었으니 표시가 났을 터.
내 눈동자는 흔들렸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신랑도 흔들렸던 듯했다. 센스있고 쿨한 시누이가 올캐집과 본인 집이 멀어서 차비가 더 든다는 말로 무리없이 봉합을 잘 하였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나는 등에서 더운 열기가 뻗쳐오르고 시선은 시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시어머니에게는 그동안 일하던 며느리는 당신 아들의 짐을 나눠지는 보탬이었다가 지금은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돈을 벌어오지 않은 일은 일이 아니 건일까.
집안일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는 워킹맘들 사이의 이야기는 남 들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니가 하면 되겠네."라는 말이 공기 중에 흩어진 순간 내게는 진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