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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털, 다홍 책 그리고 투썸플레이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길래?

by 히키코모리 K선생

책장을 넘기자 하얀색 짧은 털이 나폴거리며 날아다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친 게 신기하고 기분이 좋다. 이불 같은 검은색 잠바에 내려앉은 이 하얀색 털이 개털인지, 고양이 털인지, 옷에서 떨어져 나온 털인지 정체를 모르겠다. 검지로 두어 번 튕겼지만 도로 옷에 내려앉는다. '후~' 하고 불어내자 공중으로 솟아올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아하게 일직선으로 내려온다. 손으로 받아내려고 하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연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하~'하고 코웃음을 치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덧없어지는 걸까? 책은 다홍색을 입은 <홍차와 장미의 나날 - 모리 마리, 2018> 다.


거칠은 책표지를 엄지로 문지를 때 감이 뭐랄까..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더운 여름 시원한 '대나무 자리'에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자리를 드드득 긁어대던 그 촉감과 그때 느꼈던 피부의 시원 상쾌함이 연결되었기 때문일까?




아메리카노 잔을 들어 옆으로 살짝 옮긴다. 미끈한 노란 테이블을 만져보니 뜨거운 머그잔이 있던 자리는 동그랗게 따뜻하고 바깥은 차갑다. 어릴 적 겨울철 방의 윗목 같은 촉감이다. 노란빛 미끄러운 장판. 물이 지나다니는 자리는 따끈하고 바깥은 차갑다. 잘 때가 되어서 바닥에 이불을 깔면 온기는 한참 동안 올라오지 않는다. 그럴 땐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따끈 차가운 노란 장판에 손을 비비고 발을 비비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나 참. 투썸에서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니 행복한 인생이네'

KakaoTalk_20240223_215157049_02.jpg 노란 장판 in 투썸플레이스


'집에 들어갈 시간이다. 날리는 털의 정체를 눈치챘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누구냐 넌? 어디서 날아온 거니? 범인은 누구실까?' 주변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는 건 무리다. 털의 범인을 잡는 건 포기했다




유난히 밝으신 세 분이네. 내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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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전등을 보는게 더 보름 기분이 난다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10분이 지나면 키스의 맛이 난다. 재떨이를 씻어낸 차가운 아메리카노 맛.


쓰잘데기 없는 글에 배터리를 소비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길래? 식물이라도 키워야 할까? 아니 아니.. '나를 봐줘'라는 기분으로 글을 쓰는 것뿐이잖나? 뭣? 낯 뜨거운데? 어쩔 수 없네. 쇼가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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