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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Mar 08. 2024

미알못은 매일 인사동 미술관에 갑니다 (1/2)

산책, 히키코모리의 나날 그리고 <바닷가의 수도승>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시간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짧은 시간에 굳이 쉬지 않고 걷는 게 뭐람? 그러던 중 전환점이 찾아왔다. 단기 프로젝트 근무지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근처였다. 같이 일하던 선배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에비뉴엘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취미였다. 근무지는 숨 막히는 공간이었고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어서 선배를 따라서 매일같이 에비뉴엘을 휘휘 도는 것은 점심시간의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K군, 하나하나 다른 걸 몰라? 이것은 예술이라고!


선배가 재잘대는 이야기를 듣고 쇼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선배는 짧은 점심시간 동안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행복해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하고 행복을 느끼는 모습은 나에겐 생소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 곧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을지로에 있는 회사였다. 출장을 가지 않을 때면 점심시간에 주변 맛집을 가곤 했다. 곧 귀찮아졌고 밥을 먹고 청계천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중 '코 앞이 인사동인데 남들 관광 오는 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게 이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인사동에서 틈틈이 배팅센터, 한식집, 전통차를 즐겼지만 그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각해 낸 게 미술관이었다.


인사동 하면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다니자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질리지 않고 운동도 되면서 여름엔 에어컨에 땀도 식힐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산책코스가 있을까? 갤러리 루벤 근처를 시작으로 왼쪽으로 인사아트센터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반대편을 훑어서 내려오곤 했다. 조그마한 갤러리에 앉아계시는 큐레이터, 작가분들을 귀찮게 하지 않고 가끔 마음에 들면 도록을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미술관을 산책하면서 약 5년을 보냈다. 난 순수 공돌이고 확실한 미알못(미술 문외한)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미알못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재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작가도 모른다. 작품의 콘텍스트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저 마음이 끌리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과 산책으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책 중간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림'이란 소제목과 <요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가 감동시키는 그림에 대한 간절함을 연상시켰고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고흐는 과학 전집 mind 편에서 처음 접했다. 정신병을 언급하면서 고흐를 예로 들었는데 그때 느꼈던 고흐의 인상과 동생 태오에게 남긴 편지로 알게 된 고흐의 인상은 완전 딴판이었다. 동생을 사랑하고 팔리지 않는 작가의 고뇌와 약한 모습이 편지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다. 고흐는 평범하고 정 많은 형으로 느껴졌다. 

<요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미술관>을 읽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어두움, 쓸쓸함이 느껴졌고 까마귀가 떠난 적막함을 연상시켜서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과학 전집의 mind 편을 읽을 때는 조심해서 책장을 넘기곤 했었지만 이젠 특별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취미로 모으던 엽서에 그려져서 반짝이고 시원한 느낌을 주던 <밤의 카페테라스>도 그저 그랬다. <감자 먹는 사람들>만이 혐오의 감정을 자아냈다는 것 외엔 무덤덤했다.


'모두가 칭찬하고 열광하는 반 고흐 작품들에게서 아름다움이라던가 감탄이라던가 그런 감정들을 못 느끼는 난 뼛속까지 미알못 공돌이인가? 인생이 끝날 때까지 미술과 가까워질 일은 없을지도... 난 왜 감동을 못 느끼는 걸까?고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아니 그냥 순수하게 미술에 대해 무식해서? 공부를 해야 느낄 수 있는걸까?' 답답해졌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밤의 카페테라스>,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멀뚱이 천장을 바라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던 시기였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한 기회로 어떤 그림을 마주쳤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란 작가의 <바닷가의 수도승>이었다.

<바닷가의 수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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