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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Apr 10. 2024

회복의 여정 : 다시 태어나다(2/2)

동굴 속 이야기 열일곱

친구를 만난다는 단 하나의 목표가 생기고 일상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건강회복과 함께 감각과 감정이 열렸고 일상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감사함을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평범함경탄하며 감동을 느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만 해가 빈 잔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일상과 공간에서 기쁨을 찾아나간다


민들레가 한겨울 11월, 12월, 1월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도 눈치챌 수 있었고 추위에서 오는 눈썹의 통증도 알아챌 수 있었다. 개똥 밟기가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란 것도, 나뭇가지에 얹힌 작은 눈덩이가 바람에 흔들흔들 너울져 떨어지는 광경이 마치 꽃이 떨어지는 모습과 닮았다는 것도 직접 보면서 느끼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매일 조금씩 소소한 감동과 기쁨으로 채워졌다.




회복은 외부에서 오는 도움 자극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혼자서도 여러 가지로 노력했고 자잘한 수확이 있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매번 주변인들의 자극에 의해서 비로소 크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서울로의 외출, 1박 2일 여행,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브런치 작가 신청, 글쓰기, 독서 모임 가입, 교회, 인사동 방문, 퇴근시간의 회사 근처 방문, 공포의 일부였던 이전 직장 방문. 모든 장벽과 낯선 도전은 누군가의 권유가 출발점이었다.


만약, 혼자서 고립된 채 노력했다면 여전히 사람 없는 산책로를 걷는 일상만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극을 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회복의 나날들을 거쳤다. 얼마 전부터 난 히키코모리 꼬리표를 떼어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안 해본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도 편하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내면의 회복에 '완전함'이란 없다. 지금의 상태로 만족할 있으면 마침표를 찍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이번주에 회복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지난주에 어머니께 히키코모리 생활의 끝을 알렸다. 이번주는 내 나름대로 히키코모리 생활의 끝을 다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내 10년간의 히키코모리 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어두운 날들과는 작별이다


어제 정신과에 들렀다가 5시간에 걸쳐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왔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께는 별 일 아니지만 나한테는 풀코스 마라톤과 같은 의미다. 오늘부터는 히키코모리가 아니다. '히키코모리 K선생'이 아닌 'K선생'으로 고쳐 써도 괜찮을 것 같다.


10년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태어난 날로 삼기로 했다.

히키코모리 마지막 날을 기념으로 박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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