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이야기 넷
설날은 불편한 이벤트의 날이다. 가족과 친척 모두의 앞에서 난 거대한 코끼리가 되어버린다. 뻔히 보이고 모두가 의식하지만 언급하기 껄끄러운 코끼리. 난 모두의 앞에서 멀뚱히 앉은 채로 전시된다. 모두의 불편한 시선과 의식하는 시선을 맘껏 받아내는 것이 의무인 이벤트의 날 설날이니까? 이것은 지옥이다.
11살 화창한 휴일 어느 날 아버지는 가정화목을 위해 산에 피크닉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힘들 때였다. 빚쟁이의 독촉 전화 소리에 대한 공포는 일상이었다. 아버지는 가정을 경제적으로 희생해서 형제들을 부양하셨고 부모님 두 분은 매일같이 싸웠다. 어린 우리들은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물리적, 심리적 공포를 느끼곤 했다. 부모님은 싸우는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TV를 틀어두시곤 했다. 재미있는 프로가 나오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웃음을 참아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일어나곤 했다. 나중엔 이불속으로 피신하는 게 허락되었다.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손으로 귀를 막고 '아---' 소리를 내면서 싸움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곤 했다.
화창했던 그날도 오전엔 부모님의 싸움이 이어졌다. 그런데 화목을 위한 피크닉이라.. 우리 가족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명령이었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피크닉을 준비했다. 그리고 산의 초입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벌컥 화를 내셨고 집으로 돌아섰다. 그렇게 피크닉은 중단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해주신 오뚜기 스프를 맛있게 먹으면서 일찍 끝나서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꼈다.
결국 화목을 위한 피크닉은 무엇을 위한 이벤트였던 걸까? 가정화목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란 건 확실하다. 아버지가 본인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만든 강제적 이벤트가 아녔나 싶다. 그런 불편한 이벤트가 필요했을까?
이제 곧 설 연휴다. 어렸을 땐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기였다. 미리 세뱃돈과 용돈을 계산하면서 설연휴가 끝나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 마음이 들뜨곤 했다. 그리고 히키코모리가 되었을 땐 1년 중에서 가장 숨 막히고 괴로운 기간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며 제사와 세배에 참가하도록 강제되었기 때문이다.
설날은 불편한 이벤트의 날이다. 가족과 친척 모두의 앞에서 난 거대한 코끼리가 되어버린다. 뻔히 보이고 모두가 의식하지만 언급하기 껄끄러운 코끼리.
난 모두의 앞에서 멀뚱히 앉은 채로 전시된다. 모두의 불편한 시선과 의식하는 시선을 맘껏 받아내는 것이 의무인 이벤트의 날 설날이니까?
이것은 지옥이다.
우리들은 관계를 회복하지도 않았다. 평소에도 서로가 불편하다. 나도 가족도 친척도 모두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명절엔 밖으로 나와서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럴 땐 '이 불편한 공기의 이벤트는 도대체 누굴 위한 걸까? 무엇을 위해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모두가 참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가족 간의 관계가 원만해져서 방문 밖을 나서는 게 편해진 때도 친척들을 마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역시나 불편한 공기에서 서로가 어색했고 모두에게 스트레스였다.
설날에 가족이 다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행복과 안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명절을 같이 쇠는 것이 수십 년 째라 모두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멀리서 찾아온 친척과 지인들에 대한 체면치레로 가족이 나와 맞이하는 게 중요한 분들도 있을 테다. 그런데 말이다.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세배와 차례에 관계가 단절된 히키코모리를 끌어내서 전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가족의 생일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인데 '아빠 생일축하 노래 부르자'라며 억지로 나와 불편한 공기 속에 모여 앉아 콩그레츌레이션 노래를 부르면서 박수를 치고 폭죽을 터뜨리며 서로 억지로 웃는다. '가족이고 아버지니까 축하하는 마음이 없어도 나와서 웃는 표정을 지어! 축하드려!'란 건데 서로가 불편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그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가족의 자책감 해소가 목적일까? 우리 가족은 아직 화목하고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 목적일까?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강제하는 이벤트는 자기만족 외엔 의미가 없다. 서로 간의 단절을 재확인하고, '역시 히키코모리의 감정 따위는 무시되는구나'를 확신시키는 자리로는 의미가 있겠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설날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가족과 친척들 간에 덕담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히키코모리도 설날을 맞아서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고 절망을 털어내고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길 진심으로 원한다.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기대어 도움을 요청하고 싶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서 지긋지긋한 절망의 동굴에서 빠져나가길 원한다. 설날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질 않는다.
설날을 계기로 히키코모리와 가족이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의미 없는 이벤트 참여를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관계회복을 위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진솔하게 서로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더라도 말이다. 서로 사죄하고 용서하고 그간 쌓아왔던 분노와 죄책감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고 응원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희망을 모색한다고 일정계획을 짜서 '봄 되면 학교 가자', '담 달엔 취직하자', '이번엔 시험 합격하자', '회복하자' 이러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급하면서 압박해 봐야 와닿지도 않고 시야를 좁게 만들 뿐이다. '그것마저 못해내면 내 인생에 희망적인 선택지는 없다', ‘실패해선 절대 안 된다’와 같은 생각이 심어지면 그것이 실패하게 될 경우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다.
인생은 길고 늦지 않았다, 선택지는 많다, 무엇을 하건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에 의미가 있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프레임을 히키코모리에게 제시하고 거기에 동의해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무엇을 선택하건 비난하지 않고 열심히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히키코모리가 본인의 관점을 바꾸고 가족과의 관계를 해결하고 부모님과 손잡고 정신과에 가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은 잘 자고 잘 먹고 운동으로 건강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프레임을 바꾸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설 연휴까지 4일 남았다. 이 글을 본 히키코모리 가족이 있다면 잘 궁리해서 서로 간의 화해를 꼭 실현하길 바란다. 가족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설 연휴에 만들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한다.
히키코모리에게 명절 연휴는 위험하다.
- 자살생각과 시도 : 고립은둔 청년의 75.4%가 자살을 생각했고 이 중 26.7%가 자살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 전체 청년 평균 자살생각(2.3%)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고립·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살 생각과 시도율은 점차증가하며 은둔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89.5%가 자살을 생각하고 그중 41.9%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 <보건복지부, 2023>
- 명절 전·후 자살자 수 변화 추이 : 명절 시작 전 29.3명이던 평균 자살자 수가 명절이 끝난 후 3일간 평균 42명으로 급증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