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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04. 2024

히키코모리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

동굴 속 이야기 셋 

히키코모리란 뭘까? 더 이상 마음을 기댈 곳이 없는 것,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족에게 조차 거부되었다고 생각해 막다른 곳에 몰려 '사회적 자살'을 선택한 사람을 히키코모리라 부르고 싶다. 마치 미로와도 같은 어두컴컴한 거대한 동굴 속 깊이 홀로 남겨진 사람과도 같다. 


원치 않았음에도 사회적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몰려있는 사람들이다.




히키코모리를 이해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 봤던 영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왕따로 인한 자퇴, 가정폭력의 반복에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말한다. '엄마세대의 부모는 그걸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학교에 안 가고 시체놀이를 하는데..'

상처 입은 아들에 대한 어머님의 친절한 지적

출처 : SBS 스페셜 [2020 은둔형 외톨이]


'시체놀이'란 인식.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맘 편히 쉬면서 시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라고 생각된다. 우선, 우울증 히키코모리의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 부터가 이해의 시작이다. 히키코모리들은 닫힌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히키코모리가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다. 폰을 보고 있다. 게임을 한다.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방안은 쓰레기 투성이다.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즐기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사실은 노는 것도 아니고 휴식도 아니다. 놀이는 기분전환을 위한 여가활동이고, 휴식은 다음의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는 긍정적인 시간이다. 현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단어를 골라서 설명한다면 '정신고문이 일어나는 현장'정도로 말하는 게 맞겠다. 정신고문이라는 말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정신고문이 올바른 설명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울증 히키코모리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먼저 정상인의 생활을 잠시 떠올려보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게 되면 본인의 지식과 생각을 종합해서 즉시 말로 반응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여러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며 때로는 몸을 움직여서 반응을 한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도 감각은 현재를 의식한다. 


히키코모리는 어떨까? 방안에 고립되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이 적어진다. 외부의 자극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머릿속 생각이 외부의 입력을 대신하기 시작하고 하나의 생각에 반응해서 또 다른 생각을 떠올리는 식으로 사고가 흘러가게 된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는 고립된 공간에서 중단될 일도 없다. 이때 사고의 소재는 머릿속에서 꺼낼 수 있는 것들로 주로 과거에 관한 것들이 된다.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없는 것들로 후회, 분노, 자책, 자기혐오와 같은 감정들로 이어진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통이 길어지는 것을 꺼리는지 생각의 길이가 점차 짧아진다. 처음엔 하나를 깊이 생각하면서 괴로워했다면 시간이 지나며 점차 짧은 생각들의 체인 형태로 바뀌어지고, 나중엔 끊임없는 짧은 고통의 사이클로 변해버린다. 마치 유튜브 쇼츠의 고통 버전 같은 느낌이다.


사고습관이 변해버리면서 의식이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생각들 때문에 눈으로 봐도 의식을 못할 때가 있다. 쓰레기집이 그 예다. 환청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앞사람의 얘기를 듣는데 머릿속에선 마음대로 사람이 다음에 말할 법한 것을 상상하고 있다. 그래서 귀가 아닌 생각을 입력으로 받아들이고 내 맘대로 들었다고 착각을 버린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환청이다. 이제 정리하자.


히키코모리 생활이 길어지면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고습관이 생긴다. 매 순간 짧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자신을 고통주는 감정들도 엄습해 온다. 닫힌 방문 속 우울증 히키코모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에 대한 정신고문이다. 방안의 쓰레기들을 봐도 보질 못하고 들어도 듣질 못한다. 자신의 생각 외엔 모든 걸 차단하고 매 순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고통받는다.




히키코모리의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경험에 비추어 설명했다. 이것으로 히키코모리의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을까? 히키코모리는 막다른 곳에 몰려 사회적 자살을 실행한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고통받고 고뇌한다. 다만, 그런 마음을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혹은 거부당했기 때문에 소통의 단절이 일어났고 그래서 누군가에겐 시체놀이로 보이는 것뿐이란 기억해 두자.


5일 뒤면 히키코모리들이 1년 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명절엔 자살도 많다. 다음엔 명절의 무엇이 히키코모리를 괴롭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Q. 잠을 자면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의 루프에서 벗어나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어떤가?
A. 내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히키코모리 기간이 길어지고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난 몇 가지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었다. 그 꿈 중 하나는 어느 순간 알몸이 되어버리는 꿈이다. 꿈속에서 느닷없이 알몸이 되어버린다. 끔찍한 수치심에 사로잡혀 몸을 가리고 안 보이는 곳으로 달아나 옷을 찾아서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또, 고도비만의 몸이 드러나는 상황도 있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식은땀을 흘리며 상황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회피하고 달아난다. 

꿈속이라고 편해지진 않는다. 오히려 꿈이기 때문에 극한의 상황에서 고통을 받기도 한다. 회사 워크숍으로 수백 명이 모인 곳에서 장기자랑을 하다가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꿈이라던가... 꿈에서 깨어나 그 감정에 영향을 받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던 심리가 꿈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반영된 것 같다. 최근 들어 알몸이 되는 꿈은 전혀 꾸질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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