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키코모리 K선생 Apr 02. 2024

명동 성당, 엄마의 정원 그리고 인사동

말없이 기다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서울로 나서는 3번째 외출. 이젠 외출 횟수가 중요한 히키코모리가 아니다. 지금은 23도. 더운 날이다.




동료와 만나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고, 명동성당 그늘에서 최근 읽었던 책, 회사 일, 생각과 시작, 건강, 신앙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사진 찍는 외국인, 외국인을 도와주는 할머님, 그늘을 찾는 직장인들이 오가는 명동성당

농담과 진지함을 반반씩 말해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유쾌하면서도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동료와 전 직장 빌딩에서 커피를 마실까 잠시 망설였지만 꺼려진다.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게 있다. 다음엔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자. 


(1시간 뒤) 들어가서 베리 쥬스를 마셨다. 한걸음 나아갔다.

쉬운데 쉽지 않았다. 용기가 없어서다.




인사동을 걸었다. 갤러리 작품 교체 시간대에 신은비 작가님의 "엄마의 정원"을 보았다.

"인생의 희노애락 모두 덧 없고, 엄마는 떠나셨지만, 50년 '엄마의 정원'은 내 작품속에서 피고집니다"


모란꽃 주변에 방울방울 퍼져나간 흰 물감에서 그리움과 슬픔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를 떠올릴 매개체가 매년 한 번씩 피어나서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도 복인 것 같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서 살았는데 화단에 사과나무, 국화, 사루비아, 석류, 해바라기, 맨드라미 같은 것들이 심어져 있었다. 사루비아를 떠올리자 샛노란 햇빛과 차가운 마루, 쥐며느리를 굴리던 사촌누나와 함께 사루비아 꽃잎을 뽑아 달달한 즙을 빨아먹으며 할머니에게 한소리 듣던 장면이 생각났다.


왜 이런 멋진 기억들을 잊고 사는걸까? 흠?




더위를 식히러 들어왔다. 손님으로 작가님 한분과 무언가 집중해서 쓰시는 사장님이 있다.  너무 집중해서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신다. 몰두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기 좋다.


집중을 끊기 죄송해서 한동안 카페 안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며 기다렸다.

말없이 기다리는 시간도 좋다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고 일어났다.


날도 따뜻하지만 마음은 더 따뜻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 다쿠아즈 그리고 고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