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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Apr 22. 2024

도시인의 월든, 고시원, 사회화된 나

뭣? 고시원 생활의 안락함을 모른다고?

난 회복을 위해서 열심히 걷고, 읽고, 쓴다. 언어능력이 퇴화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숙명이다. 


마음에 꽂힌 책 한 권을 여러 번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요즘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치료란 불순한 의무감 때문이다.

지난주, 불순한 의무감으로 읽었던 책들이다


자연을 좋아하지만 자연인이 되길 원하거나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과 같은 삶을 지향하진 않는다. 시골에서 뱀 잡으러 다니고, 옥수수를 따고, 아침에 콩밭에서 김을 매는 고단함, 밤나무에서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송충이를 툭툭 털어내고, 입안으로 돌진해 들어온 풍뎅이, 날벌레를 뱉어내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개에 싸인 녹빛의 아련한 추억엔 감사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몇 년 뒤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도시인의 월든 - 박혜윤, 2022>은 문명화된 사회가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표준으로 간주하는 삶만이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이상한' 선택을 해도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 쓰인 책이다. 


온 힘을 다해도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꺾이는 시기가 온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 조차 중년에 건강으로, 노년에 커리어가 단절되고, 가정에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는 등의 일을 겪을 수가 있다. 이들은 사회에서 표준으로 간주하는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 없음에 좌절하고 고통을 받는다. 삶은 계속되는데 선택이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인생이 끝났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런 이들에게 선택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용기와 위로가 되는 책이다.

삶은 계속된다. 힘내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회가치에 얼마나 잘 길들여져 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점검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따끔한 에피소드가 있다.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지인이 등장한다. 저렴한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부끄러워 그 마트를 다니지 않는다. 소비엔 사회계층적 활동이 섞여있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엿볼 수 있는 짤막한 얘기였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내가 살았던 고시원이 생각났다.

침대와 작은 서랍, TV가 전부인 작은 고시원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역삼에 있었다. 회사 사장님의 학연 영향으로 공채로 같이 입사한 사람들을 보면 S대 동문이라던가 외국에서 학교 다니신 분들도 있었다. 뭐랄까 부유한 분들이 많았다.


집이 멀어서 버스에서 버리는 시간들이 아까웠고 피곤했다. 그렇다고 집을 얻는 것은 돈낭비였다. 잠만 자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고시원에 들어갔다. 


회사 사람들이 어디 사는지를 물어봤을 때 "OO고시원에 있어요. 출근시간이 3분밖에 안 걸려요!"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실제로 쾌적하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평일에 한번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출퇴근의 피로는 아예 없어졌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잠깐 30분씩 고시원에서 자고 나오거나 더울 땐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나올 수도 있었으니 이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너무도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그런 눈치였다. 고시원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수치였다. 소비활동과 거주공간이 사람의 등급을 판단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 사실을 처음 알고 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고시원은 수치의 상징이었던 거야?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쾌적함을 포기하고 봉천동에서 살게 되었다. 2호선 출퇴근은 매일 아침 고역이었다. 


난 사회화되었다. 사회화된 가치에 편입하기 위해서 쾌적함을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쾌적한 아침을 보냈던 것은 고시원에서 지내던 몇 개월이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러한 쾌적함은 느낄 수 없었다. 연봉이 올라가고 살던 공간이 넓어져도 통근버스에서 코를 골고 있으면 회사 정문에서 내려주더라도 전철 3-4개 거리에서 통근해도 이건 마찬가지였다. 차원이 달랐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고시원으로 직행한다. 다음날 출근까지 무려 15시간의 여유가 있다. 운동하고 게임하고 8시간 자고 아침에 회사에서 영어스터디를 하고 저녁에 회사 독서모임에 참가해도 시간적 여유가 남아돌았다. 어이가 없었다.




고시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생하다. 난 15시간이란 여유가 너무도 황홀하고 좋았다. 퇴근하면 스프링 침대에 눕자마자 온몸을 몸부림치면서 베개를 껴안고 '아가갸라가ㄹ갈갈걀'거리면서 낄낄대고 기쁨을 만끽했다. 그만큼 너무도 좋았다.


퇴근하면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근처를 2-30분 조깅하고 단골 분식집에서 쫄면을 먹었다. 쫄면을 먹고 있으면 그 타이밍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마주쳤다. '나.. 이것 참. 결혼하신 형들은 왜 고시원에서 살지 않는 걸까.. 이렇게나 좋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달짝지근한 단무지를 촵촵 씹어가면서 또 기쁨에 다리를 떨고 오두방정을 떨었었다.

 고시원의 황홀한 라이프 스타일을 모르는 유부남 형들이 불쌍하지 뭐야!


지금의 나는 고시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이야... 난 완벽히 사회화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길들여진 생각을 정답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의 내면의 가치 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 다니엘 튜더, 2013>에서 언급된 '경쟁, 체면, 신상, 엄친아' 단어에 담겨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나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제 CHRIS님의 글 AMOITIC FLUID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다.


익숙함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 영화 <북샵 THE BOOK SHOP>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가치 차이를 많이도 겪었다. 생소하고 쇼킹하고 어이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깊이 있는 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에 곧 익숙해졌다. 

'사회적'으로는 진화했지만...


사회적으로는 현명해졌지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휩쓸려 살았다. 그 부채가 히키코모리로 돌아온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시계를 뒤로 돌려 과거를 떠올리면 이상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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