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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Apr 29. 2024

협업을 좌우하는 '설명 책임'

그는 눈앞의 화이트보드를 주먹으로 뚫어버리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어제 봉사활동을 하는 중에 머릿속에 스쳐가는 장면이 있었다. 


회의실에 고객사와 컨설팅 그룹, 수행사 관리자, 중간관리자들이 있었다. 컨설턴트 한 명이 소리 질렀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까라면 까란 말이야! 그게 싫으면 관둬!". 그 자리에서 수행사 O차장이 벌떡 일어나 "O발!" 소리 지르며 눈앞의 화이트보드를 주먹으로 휘갈겼다. 한 번으로는 기분이 풀리지 않는지 두 번 휘갈겼고 화이트보드는 큰 구멍이 뚫렸다. O차장은 회의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정적이 감돌았다


Accountability(설명 책임)에 대한 일화다. 잠시 뒤에 이어서 얘길 하자.





일요일의 봉사활동이다. 난 1시간가량 간단한 대청소로 들었다. '일요일에 대청소를 하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되겠지?' 그래서 교회에 갔던 가벼운 복장 그대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사무실을 비워내고 청소하는 일로 시작해서, 스티로폼을 부수고, 야채 크로켓 내용물처럼 곰팡이가 피고 먼지가 수북한 스펀지와 쿠션들을 찢고, 오함마와 빠루를 휘두르며 가구의 뼈와 살을 분리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좋아하는 넥타이를 했으면 보라색 꽃의 넥타이를 휘날리며 오함마를 풀스윙으로 휘두를 뻔했다.

봉사활동에 왔어요. 네? 오함마를 휘두르라고요?


어제 봉사활동은 약 20명이 함께 했다. 일하는 도중에 잠깐씩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가구는 폐기물 업체를 불러서 처리를 하자, 당근에 올리자, 일일이 우리가 분리를 하자, 이건 내가 들고 가도 되겠냐, 쓰레기봉투는 왜 많이 샀냐, 트럭을 부르자, 내가 트럭을 가져오겠다 등의 얘기로 옥신각신했다.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는 시간이 있는 지도 몰랐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서있는 게 대다수였다. 그리고 일이 언제 정확히 끝나는지 몰라서 슬금슬금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딱히, 한심하거나 화나는 상황은 아니다. 이해한다. 대개 협업하는 환경에서 이런 상황은 늘 반복된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일에 대한 정보는 초기엔 소수의 결정권자와 관리자만이 갖고 있다. 이 초기 정보를 구성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누군가가 해야 한다. 일을 하는 이유, 방법론, 우선순위, 기한, 결정권자, 문의 채널, 가치교환이 될 수 있는 대상과 조건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전환해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중간 관리자 역할이다. 


조직이 클수록 중간 관리자가 치이는 경향이 있다. 팀원에게 세세히 지시를 하고 확인하고 바로 잡는 일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임박한 기한을 달성하기 위해 팀원을 많이 충원하면 일이 잘 진행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일이 진행되게 하는 중간관리자에게 심각한 과부하가 걸리며 오히려 팀의 진척은 저하되곤 한다. 

들어오는 정보는 많지만 나가는 정보가 적은 중간관리자는 댐에 비유할 수 있다


어제 봉사활동은 중간 관리자의 실패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개 협동해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협업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율성이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 자율성이란 판단 가능성과 결정 가능성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개인이 충분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때 발현될 수 있다.


그래서 협업에서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Accountability(설명 책임)을 최우선해야 한다.

설명 책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합의와 더 나은 선택, 개선을 목적으로 상호간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할 일은 이런 거예요. 질문 있으신가요?


어제 봉사활동을 생각해 보면? 일의 개요만 알려져도 복장이 달라진다. 일의 끝이 보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눈치를 보면서 사라질 이유가 없다. 할 일이 보이기 때문에 전체 풍경을 보고 내가 지금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있다. 누가 시키고 감독하고 그것에 감정이 상할 이유도 없다. 결정이 정해지지 않아서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 얘기했던 화이트보드를 주먹으로 뚫는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난 지금도 기억한다. 


O차장은 발언권을 얻고 일어서서 말했다. '왜 그것을 해야만 하죠?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해야만 하는 건가요?' 고객사도, 컨설턴트도, 수행사 관리자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O차장은 파트장으로 십여 명의 팀원이 불만 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납득 가는 설명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일을 시키는 사람과 그것에 동의한 사람들 모두가 단순한 질문에 답을 없었다. O차장은 그 일을 팀원에게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을 논리아닌 일방적인 감정과 위계('넌 수행사 계약직이잖아. 시키면 하라고!')로 밀어붙이는 것을 도무지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O차장은 착하고 차분하고 유머 있는 분이었다. 불합리성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 상황이 꽤나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 외로 이러한 일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다음 독서모임 주제는 OO에요 => 왜죠? => 그냥요.

이 설계는 틀린 설계예요 => 왜죠? 무엇이 얼마큼 어떤 면에서 틀린 설계인지 설명해 주세요 => (앗.. 대답할 수 없는데...) 책 보고 공부하세요

우린 자기 조직화 원칙을 따릅니다 => 5년간 동일한 기법을 강제하고 있고, 그 기법은 단 한 번도 개선된 적이 없고, 개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데 왜 그것이 자기 조직화인가요? => 아? 우린 그것을 '자기 조직화'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당장 이 일을 멈추고 1개월간 OO를 하겠습니다 => 그 일을 왜 해야 하는 거죠? => OO책에서 OO을 하면 생산성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 그런데 왜 1개월이죠? OO은 어떤 수준으로 얼마큼 할 생각이죠? => ... (아? 그건 나도 모르겠네. 어쨌든! 경영진은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해서 싫다니까? 하아... 이직하고 싶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제안하거나 지시하지 말라는 게 내 요점이다. 설명할 수 없으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는 게 좋다.


설명은 때때로 귀찮은 일로 생각된다. '어디까지 설명해 줘야 되는 거야! 귀찮게!'. 이해한다. 나한테 당연한 것을 남에게 세세히 전달하는 것이 때때로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설명이 이익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또, 설명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더 높은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낮은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핵심을 추상화하거나 메타포로 전달하거나 사례를 들어 전달하다 보면 몰랐던 것이나 비밀스러운 면을 깨닫고 크게 배우기도 한다. 나를 위해서도 꽤나 좋은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


'설명 책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설명하자. 인내하자.


- 어제 봉사활동과 같은 일을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

중간 관리자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중간관리자가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이 글의 범주를 벗어나서 쓰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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