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키코모리 K선생 Feb 11. 2024

엄마란 이름의 죄책감

동굴 속 이야기 일곱

집 상태는 늘 비슷했다. 방바닥은 먼지가 날리고 싱크대엔 산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  빈 페트병과 알루미늄캔들은 트로피 마냥 세워져 있고, 배달음식에서 나온 각종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싱크대 왼쪽에 고이 모셔져 있고, 수없이 많은 과자와 빵 비닐들은 일회용 비닐봉지에 넣어 부엌 쓰레기통 옆에 몇 개씩이나 차곡차곡 쌓아두곤 했다. 빨래거리가 없는 게 괴이한 쓰레기집이었다.


그런 쓰레기집에 부모님은 가끔씩 찾아오셨다. 




부모님은 내 얼굴이 어떤지 보기 위해서 들르시곤 했다. 인터폰도 핸드폰도 받지 않으니까 직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셨다. 초인종을 눌러도 깨어있지만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엄마는 방문을 열고 깨어있는 걸 아시면서 '자니?'라고 물어보시곤 했다. 얼굴을 보이면 '자고 있어. 청소만 하고 갈게'란 말을 남기시고 문을 닫으셨다. 그리고 두 시간 넘게 쓰레기 집을 청소하시고, 반찬을 냉장고에 채워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두시고 내 방의 문을 살짝 열고 '엄마 갈게'라고 말씀하시고 조용히 떠나셨다. 


난 부모님이 집에 오실 때면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엄마의 한숨소리와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어쩌다 멀쩡히 얼굴을 내밀면 '누워있어'란 말씀에 그저 누워있었다. 그럴 때면 난 차가운 돌침대에 누워서 퀭한 눈으로 몇 시간이고 천장만 바라보다가 가끔씩 한숨을 쉬거나 신음소리를 내는 모습이었고, 엄마는 문을 살짝 열어 그런 날 보고 문을 닫곤 하셨다.


난 엄마의 눈을 볼 때면 실망과 슬픔을 본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인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난 엄마를 보면 죄책감, 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마지막엔 자책과 절망이란 감정을 느꼈다. 


히키코모리 초기엔 '엄마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다시 열심히 힘내볼게요'란 말을 했었다. 그리고 곧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난 몇 번이고 실패를 반복했고 내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수없이 기대하게 만들고 실망을 안겨드렸다. 그래서 결국엔 기대의 말, 사과의 말, 도움의 말조차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도움을 요청해야 할 마지막 동아줄인 엄마한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죄책감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거나 전화벨이 울리거나 카톡만 보내셔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난 죄인이 되었다. 고통스러워서 가족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이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아마도 무슨 큰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난 포기했다. 그렇게 엄마와도 단절되었다. 가족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우울증 히키코모리가 방문을 닫고 가족과 단절하는 행동의 아래에는 죄책감과 분노란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죄책감에 대해서 설명드렸다. 히키코모리가 어떤 죄책감을 느끼는지 어떻게 부담과 자책과 절망이란 감정으로 이어지는지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울증 히키코모리는 바깥을 외출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 수치심 때문이란 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울증 히키코모리가 방문을 닫고 가족과 단절하는 이유도 같을 거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둘은 다르고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점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Q. 히키코모리는 사회적 단절이 문제지 않나? 그런데 가족과의 단절을 별개의 문제로 나눠서 생각하는 게 맞을까?
A. 난 나누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문밖을 나설 땐 타인의 시선으로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느끼고 거기서 공포로 이어졌다. 가족에게선 수치심과 두려움이란 감정은 거의 느끼질 않고 죄책감과 분노를 느낀다. 나에게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생각된다. 
Q. 분노는 왜 설명하지 않나?
A. 껄끄럽다. 어쨌든 가족과의 단절은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죄책감이 더 크거나 분노가 더 크거나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감정이건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난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더 깊이 단절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글을 쓰는 게 참 힘이 드는 일이네요.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제 글을 보니 너무 두서없는 글이고 개인적인 글이라 부끄러워져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보려고 했는데 역부족이란 걸 지난 3일간 깨달았습니다. 훌륭한 책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이 가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