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이야기 여덟
우울증 히키코모리인 내 외출을 가로막았던 수치와 공포는 어디서 오는 건지 설 연휴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모습이 만족스럽고 자신감이 넘치면 타인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그 모든 시선은 부러움과 칭찬의 눈빛으로 느껴진다. 건전하지 못한 내 사고방식에서 타인은 자의식의 투영이었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수치심과 공포는 다름 아닌 타인에게 투영된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스스로 잠시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자기혐오였다. 매 순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기혐오를 타인에게 투영해 나 스스로에게 퍼부어댄 것뿐이다. 그것이 우울증 히키코모리인 나의 외출을 가로막는 것들의 정체였다.
동창, 모임친구, 직장동료를 마주치면 어쩌지? 내 실패를 들키면 어떻게 하지? 내 초라한 모습, 추악한 면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하지? 내가 몇 년째 백수라는 사실을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알면 어쩌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 한가로이 벤치에서 햇볕이나 쬐는 날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아. 왜 절룩거린 걸까? 병원을 다니지 않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거야? 이 시간에 왜 이 사람은 여길 계속 오는 걸까라면서 날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것 같아... 끝이 없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을 왜 갖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타인의 시선이 조금은 분리된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의식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단순한 결론과 건전한 생각은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현시점에서 가능한 것이고 한참 바닥으로 추락 중인 나는 이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재확인하게 된다.
'수전 손택'이란 작가가 있다. 그녀의 책 <타인의 고통 - Susan Sontag, 2003>은 전쟁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것을 미디어로 '나와 관계없는 따분한 얘기'로 소비하는 우리의 관계를 통찰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히키코모리 개인의 고통으로 치환해도 괜찮은 지점의 내용들이 있다. 책의 메시지는 '겪어본 적 없는 우리는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아듣지 못한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의 특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성찰해야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럴듯하게 맞닿는 지점이 있다.
Q. 결국 어떻게 첫 정신과 진료를 받았나?
A. 어머니가 나한테 가고 싶은 정신과를 찾아서 알려달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난 조금 멀어도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병원으로 골랐다. 지하 2층에 주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마자 바로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정신과를 택했다. 예약도 오후 진료 시작인 2시로 예약해서 진료실에 바로 들어갈 수 있게 했었다. 그렇게 세세한 것을 신경 쓸 만큼 당시엔 너무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Q. 우울증 히키코모리에게 새벽 4시가 괜찮은 시간인가?
A. 3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오가고 5시는 버스 첫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오간다. 새벽 4시는 그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서 사람이 없고 조용하다. 히키코모리가 외출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편의점에 익숙해진 뒤 아침에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 역시 새벽 4시가 운동시작시간이 되었다.
Q. 땀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누구나 똑같지 않나?
A. 교육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1이라면 5 정도의 느낌이다. 무엇보다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반응과 압박감에 큰 차이가 느껴졌다.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호전되면 이러한 긴장과 스트레스, 신체적인 반응도 같이 호전되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건데 땀과 심장박동 같은 자율신경반응이 꺼림칙한 느낌을 갖게 만들면, 그것이 어떤 행동을 저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외출에 대한 공포와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Q. 공포감을 느낄 때 '인데놀'과 같은 약을 먹고 외출하면 되는 거 아닌가?
A. 의사 선생님께서 인데놀을 처방해 주셨는데 약을 빌려서 외출하면 '약을 먹지 않았을 때는 나갈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에 약을 회피했다. 환자의 오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정신과 선생님과 면밀히 상담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