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이야기 아홉
초등학생 시절 한낮에 할 일이 없으면 집 앞에 10미터는 될 법한 느티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에 기대 누워 쓸데없는 공상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바람이 불면 느티나무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몇 그루의 버드나무들은 가지를 물결처럼 흔들며 '솨아솨아' 파도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빚쟁이들의 전화소리도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난 온전히 마음의 평안을 누리곤 했다.
2023년 12월. 카페에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았다.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산들바람에 버드나무 잎이 흔들리던 그 시절 그 광경 그 소리 그 평온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응답하지 않은 수북이 쌓인 메시지와 카톡을 보면서 미뤄둔 메시지들을 보냈다.
응답이 없는데도 꾸준히 연락 줘서 감사하다는 말, 마음속 얘기, 내 사정, 인간적인 관계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용서를 구한다고, 언젠가 사과를 해야지 싶었는데 그게 지금이 되었노라고..
바로 전화가 왔고 짧은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날 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쳐다보는 사람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고, 모자를 쓰고 와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 자신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귀를 애는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에서 버드나무 잎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귤을 까먹었다. 단맛이 났다.
10년 차 히키코모리의 잠수는 이렇게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히키코모리의 연락회피는 가족,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을 야기한다. 나도 연락을 극단적으로 회피했다.
히키코모리 초기에는 반가운 마음에 모든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히키코모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누군가의 연락은 부끄러움, 수치심, 열등감을 자극했다. 누구의 연락을 받아도 정체된 상태에서 화젯거리가 없고 할 말이 없어서 머쓱했고 가벼운 농담인데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리곤 연락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한두 번 연락을 받지 않기 시작하면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관계를 망친 자신에 대한 자책이 이어지면서 죄인이 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사죄해야 할 텐데..' 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카톡과 전화소리는 날 짓누르기 시작했다. 사과할 용기가 나질 않았고 응답하지 않은 카톡과 메시지는 끝도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더 심해지면서는 카톡이나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랐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공포의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폰을 꺼두거나 구석에 던져뒀다가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한 번에 쌓인 카톡과 메시지를 읽곤 했다. 이것이 히키코모리 연락두절의 정체다.
요약하면, 한두 번 연락을 받지 않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친 뒤, 죄책감이 커지면서 공포의 감정으로 발전. 그리고 어느샌가 연락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서 머뭇거리게 된 것이다.
우울증 히키코모리는 연락을 회피한다.
히키코모리가 연락을 회피하는 것은 귀찮거나 싫어서가 아니다.
사실, 히키코모리는 누구보다도 연락을 고대하고 기다린다.
먼저 연락하고 용서를 구할 용기가 없어 머뭇거릴뿐이다.
연락이 단절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잘못이고 용서받기 힘든 몹쓸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회복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용기 없고 머뭇거리는 히키코모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서 사과와 용서의 장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용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보세요). 수년간 연락이 두절된 히키코모리와 지금 당장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나처럼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란다. 난 너무도 용기가 없었다. 어리석었다. 비극이다.
Q. 단번에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나?
A. 차단된 관계도 있다. 내 잘못이다. 인간적인 유대가 깊었던 사람들에게만 연락했다. 아직 연락하지 못한 관계도 있다. 다시 연락하기 애매한 관계라서 지나간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다.
Q. 어떻게 갑자기 연락할 용기가 생길 수가 있나? 이해할 수 없다.
A. 자기 긍정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서 연락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특별히 한 명의 친구가 수년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독려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