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돌아오는 시점

안전해진 뒤에야 가능해진 말

by 두부

—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시간


말은 정리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생각이 끝났다고, 감정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바로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이 돌아오는 데에는 언제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 시간은 말의 준비와는 다른 종류의 시간이다. 갈등이 막 지나간 직후에는, 상대의 인식 속에서 그 일이 아직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점에 도착한 말은 설명이 아니라 재점화에 가깝다. 무엇을 말하든, 그 말은 이해를 돕기보다 이미 지나가고 싶은 장면을 다시 불러온다. 그래서 어떤 말은 옳아도 위험하고, 진실이어도 닿지 않는다. 말이 돌아오는 시점은, 그 일이 상대의 인식에서도 한참 멀어졌을 때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일이 더 이상 지금의 감정을 지배하지 않을 만큼 거리가 생겼을 때.


그때의 말은 더 이상 사건을 흔드는 언어가 아니라, 정리된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나 역시 안전해져야 한다. 이 말을 꺼내도 다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는 감각,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말이 돌아온다는 건, 상대가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말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말을 준비하기보다, 말을 하지 않고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하루를 넘기고, 다시 그다음 날을 살아내는 일.


침묵은 그 자체로 안정이 아니라, 불안을 끌어안은 채 버티는 방식에 가깝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된다. 이 말을 하지 않아도 오늘을 건널 수 있고, 지금 당장 꺼내지 않아도 나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때의 말은 변명도 해명도 아니다. 관계를 바꾸기 위한 언어라기보다, 나를 더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그 말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을 다시 불안 속으로 밀어 넣지는 않는다.


말이 돌아오는 시점은 늦은 타이밍이 아니다. 그동안 말이 없었던 시간 역시 공백이 아니라 준비였다.

말은 결국 돌아온다. 다만 그것은 언제나, 가장 안전해진 순간에야 조용히 나에게 허락된다.



다음 글에서는,

불안을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아진 순간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기록은 불안과 침묵, 판단을 미루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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