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지 않았다
2014년의 지독한 여름이었다. 그 여름에 엄마는 실종됐다.
실종되기 얼마 전,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거실로 불렀다. 그러곤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뚝뚝 엄마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한 손으로 눈물을 닦은 뒤 엄마는 무슨 말을 했다. 10년도 넘은 기억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 말 잘 듣고 잘 살라는 말만은 선명하다.
동생들은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억지로 삼켰다. 대신 머리를 굴렸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외할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가는 걸까. 우리는 그냥 버려지는 걸까.
엄마와 동생들의 울음이 만든 그 분위기가 나를 왠지 모르게 짜증 나게 했다. 유난이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엄마는 사라졌다. 아빠는 실종신고를 한 것 같았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집에는 늘 나와 동생들뿐이었다. 동생은 받지 않는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울어댔다. 정확히는 나한테 매달려 찡찡댔다. 나는 또 짜증이 났다. 그땐 몰랐다. 이미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화가 났다는 걸.
다음 날, 젊은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왔다. 나는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경찰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나는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게임만 하고 있었다. 경찰 한 명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네 엄마가 실종됐잖아. 걱정 안 되니?"
걱정은 없었다. 짜증만 더 올라왔다.
며칠 뒤 우리는 근처 교회에 맡겨졌다. 우리끼리만 집에 둘 수 없었던 아빠가 보낸 거였다. 권사님은 편하게 있으라며, 밥 먹을 때도 숟가락만 몇 개 더 얹으면 된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 집은 조용했고, 따뜻했다. 술만 마시면 우리를 때리던 엄마와 달리,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권사님이 말했다. "얘들아, 무슨 소식을 듣더라도 너무 힘들어하지 마.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셔. 항상 보살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엄마가 진짜 우리를 버렸구나.
집에 도착하니 친척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좁은 집이 더 좁아 보였다. 친척들의 얼굴엔 모두 그늘이 져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가고 이번엔 아빠가 우리를 불렀다. 아빠는 한참 말을 못 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엄마가 사고로 죽었댄다.
사고가 아니라는 건 어린 나이임에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우리를 버린 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을 버린 거였다. 유서 한 장 없이 가버렸다.
이번엔 아빠가 우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또 짜증이 올라왔다.
장례가 시작되고, 지인들과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하얀 핀을 꽂았다.
내 모습을 본 고모가 나를 껴안으며 이 어린 새끼들을 두고 어떻게 먼저 갈 수 있냐고 소리치며 엉엉 울었다. 답답했다. 고모의 품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때 친척오빠가 날 구해줬다. 고모를 뜯어말리며 데려가서 진정시켰다.
울어야 할 것 같았는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차가워진 엄마를 봤다.
와, 시체다.
그 생각뿐이었다.
어른들이 자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라며 내 손을 엄마의 뺨에 갖다 댔다. 차가웠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울었다. 아니, 소리쳤다. 구역질이 났다. 아빠가 역겹기까지 했다. 유흥업소 다니지 말고 있을 때 잘했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리치며 우는 아빠의 모습이 연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치실의 약품 냄새가 독하게 코를 찔렀다. 속이 울렁거렸다. 핏기 없이 보라색으로 변한 입술, 창백해진 엄마 얼굴을 보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문을 열고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제서야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안치실의 특이한 약품 냄새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히고 손이 떨린다.
엄마가 사라지기 전, 아빠가 말한 적이 있다. 사는 게 지옥이고, 죽으면 그게 천국이라고.
그 말이 엄마의 등을 밀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