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노트8 미드나잇 블루와 아이폰12 블루의 또 다른 이름
조금 더 작은 스마트폰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중 아이폰12 미니가 출시되었다. 아이폰12 미니 자체로도 예뻤지만, 특히 '블루' 색상이 기존의 아이폰과 차별성도 있고 예뻤다. '이번에는 블루 색상이 빨리 나가겠네'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런데 웬 걸. 블루 색상 앞에 다른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달 블루'. 사람들은 너무 맞는 비유라며 홍보 영상의 아이폰을 캡처하여 포터 트럭 색상과 비교해서 올리고 있었다. 용달 블루라는 말은 당연히 예쁘다는 칭찬은 아니었다. 해외에서는 예쁘다고 난리가 났다는 블루 색상은 한국에서는 용달 블루라는 이름이 덧씌워져 듣는 사람들 머릿속에 '촌스럽다'는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순수하게 포터 트럭의 그 파란색이 싫은 걸까? 용달 블루라는 말을 들은 후 뇌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났을 연상 작용을 상상해보면 이렇다. 먼저 '용달'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보인다. 엄연히 말하면 용달은 트럭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물건을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직업을 의미한다. 동네에서 야채를 배달하고 판매하는 일,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이동하는 트럭의 모습, LPG가스를 실은 트럭의 모습, 끙끙대며 무거운 짐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단어는 이러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운행하는 포터 트럭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눈과 눈썹을 찌푸리는 듯한 신체 반응과 함께 촌스럽다는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블루 칼라/화이트 칼라로 흔히 칭하는 계급적 의미의 블루도 한몫했을 것이다. '용달 블루'와 관련된 여러 글과 댓글을 확인해 보면 정말 객관적으로 그 색이 싫은지, 연상되는 이미지가 싫은 것인지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처음 블루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더라도 '용달 블루'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다른 생각이 든다.
만일 그 색이 싫고 용달 블루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지지 않았다면, '나는 저 색의 채도나 명도가 싫어, 쓰다 보면 질릴 것 같아'라고 말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 색이 싫진 않았지만 '용달 블루'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불편해졌다면, 포터 색에 비유되는 파랑색 고유의 고유의 채도와 명도가 자신의 선호와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용달이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이미지로 인해서 이 색을 촌스럽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용달 블루는 그저 귀여운 별명일 뿐이라고. 포터 색이 원래 그런 색이니 아주 찰떡같은 비유를 했을 뿐이라고. 나는 포터 트럭의 색이 촌스럽다고 생각할 뿐이지 용달이라는 직업까지 떠올렸던 것은 아니라고. 아직 실물을 못 봤는데 정확히 비유할 수 있는 물건이 있었고, 떠올려 보니 나는 그 색이 별로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색은 어떤 형상이 있는 물건, 제품과 상품에 입혀지냐에 따라 각인되는 이미지와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색을 아무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는 없다. 이미 어떤 색은 이름 자체에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고, 내가 그 색을 볼 때 무엇을 떠올리냐에 따라서 나의 차별 의식이 반영되기도 한다.
어떤 핸드폰 가게에서는 아이폰12 블루 색상을 판매하기 위해 용달 블루가 아닌 람보르기니 블루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이는 용달 블루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정확히 보여준다. 실제 아이폰12의 색상이 무엇과 가까운가를 떠나서 이렇게 부르면 아이폰12의 색상은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용달 블루가 문제인 것은 아이폰12의 블루를 촌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정관념이 담긴 색의 이름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색'이라고 배워 온 그 색을 더 이상 '살색'이라 부르지 않고 '살구색'이라고 바꿔 부르는 것이다. 살색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었던 인종차별적 사고를 중단하고 주의하고 성찰하기 위해서 말이다. 살색을 살구색으로 부름으로써 우리 안에 인종차별 의식을 성찰한다면, 이제 용달 블루를 '순수한' 별명이라 생각하는 것을 중단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계급 및 차별의식을 성찰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