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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Dec 14. 2020

일 맡기는 사람이  내 미래를 고민해주진 않는다

일을 맡는 기준과 원칙을 정하자


외주가 넘쳐나는 연말. 연말에는 늘 불만과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찬다.(이 매거진의 이름이 오힐데의 불만인 것을 기억하시라.) 작년에는 이 불만을 어떻게 터뜨렸더라. 그래, 이맘때쯤 일잘갑(일 잘하는 갑)을 만나고 싶다며 울부짖다가 결국 올해 초에 일잘갑에 대한 글을 썼더랬다. 올해는 외부에서 받은 여러가지 일이 뭔가 답답하게 진행되자,


그래, 결국 이 일을 맡은 내 잘못이지 뭐!!!


라고 외치며 가슴을 팡팡 치고 있다. 이러다가는 화병 걸리겠다 싶어서 내가 일을 받는 기준을 점검해 봐야겠다고 성질을 내며 키보드를 때리고 있다. 어떤가. 내가 평소에 아무 일이나 받는 사람인가?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이 성격 나쁘고, 필요한 일이 아니면 딱딱 거절하는 사람도 아래의 세 가지 경우에는 늘 갈대처럼 흔들린다.


1번 유형: 돈 주는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지 (일 없는 것보다는 낫지)

2번 유형: 돈은 안 돼도 나중을 위해서 해둬야 하는 일인 것 같아 (잘해두면 다른 곳에도 소문나겠지)

3번 유형: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맡겨주다니 고맙네. (안 해주면 다음에는 일을 안 주겠지)


나뿐만 아니다. 이건 작은 규모의 영리 조직, 대부분의 비영리 조직, 유명세가 없는 개인사업자와 프리랜서 같은, 외부 사업을 받아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거다. 특히 비교적 공공의 영역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우리에겐 기준이 필요하다. 나름의 기준을 정하여, 내 기분과 위의 명제에 휩쓸려 일을 하고 말고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따라 사업을 하냐 마냐를 결정해야 한다.


일을 맡기는 사람은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 주지 않는다. 고민하면서 맡기는 것처럼 보이나? 속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설령 상대가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 준다고 해도 그 예측이 절대 맞을 수는 없다. 결국 고민과 판단은 우리 조직,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거다. 외부로부터 조언과 격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절대 판단을 맡기지 마라. 그래서 기준을 한 번 써 보았다.



일을 맡는 기준과 원칙을 정하자



(기회+의미+수익) - (인내+체력+비용) > 0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최종적으로 0보다 크냐 작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입과 산출 사이의 비율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분수로 표시하도록 한다. 투입이라 할 수 있는 인내, 체력, 비용 산출이라 할 수 있는 기회, 의미, 수익을 따져서 투자 대비 산출이 1보다 크거나 같다고 판단할 때 일을 맡도록 한다. 그럼, 각 항을 살펴보도록 하자.


기회

가장 과대평가될 가능성이 높은 항목이다. 당장은 의미와 수익이 없더라도 나중의 의미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익성이 떨어지는 하나하나의 일이 모여 이후에 큰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그건 개인과 조직의 능력에 달려 있지 이 경력이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기회라는 것은 일을 주는 사람이 지금 당장에 의미와 수익을 챙겨줄 수 없을 때 하는 '달콤한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일을 하시면 경력이 돼서 다음번에 더 큰 일을 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와 같은 말은 절대로 다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해당 기관에서 다른 곳에 소개해줘 봤자, 이번에 일을 한 것과 비슷한 조건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러다 보면 그 정도가 내 일의 기준이 될 수 있으니 정말 조심해서 따질 것. 보통 2번 유형에 따라 돈은 안 돼도 우리 조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선택하지만, 잘못하다 보면 비영리단체라면 관변단체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조직에게 필요한 기회가 무엇인지, 상대방이 의미와 수익보다 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것에 상응할 때만 '기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의미

여기서 의미란 여러 가지를 뜻한다. 나 혹은 조직의 성장일 수도 있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일일 수도 있다. 종종 의미와 기회를 헷갈릴 수도 있는데 의미가 지금 당장에 실현되는 것이라면 기회는 그 의미의 실현조차 나중 일로 미루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비영리 활동가들과 프리랜서들에게 의미만큼 구미가 당기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내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 내 마음을 그득하게 채우는 일은 때로는 수익보다 더 큰 걸 얻은 기분이 든다. 무엇이 내게 의미가 되는지는 각자가 제일 잘 알 것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일을 받았을 때 정말로 이 일이 내게 의미가 되는지, 내게 일을 주는 갑에게 의미 혹은 이익이 되는 것인지 명철하게 구분해 내야 한다. 갑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해주고는 그것이 내게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주의.



수익(매출)

분모에서 비용을 따지기 때문에 정확히는 매출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기분으로는 수익이 더 좋다. 수익은 늘 다다익선이지만, 수익만 봤을 경우 분모의 인내, 체력, 비용을 감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비교해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내

인내는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상황을 버텨야만 하는 힘을 말한다. 특히나 일 자체를 참을 수 없을 때, 갑과 소통이 너무 안될 때, 일이 기한을 넘어 길어지기만 할 때, 조건과 다른 일을 갑자기 끼어넣을 때 등등, 일을 하는 사람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고통! 때려치고 싶지만 시작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선한 자아의 고통!!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고통!!! 인내는 투입의 항목 중 어쩌면 가장 힘들고 무서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 봤자 '너가 선택한 일인데 어쩌겠어', 혹은 '그럴 거면 때려 쳐', 혹은 '일이 있는 게 어디야'와 같은 말을 듣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말하기도 어렵다. 서두에 얘기했던 1,2,3번의 모든 유형에 속하는 복병이다.



체력

인내가 일과 크게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부분이라면, 체력은 정확히 일을 할 때 드는 힘을 말한다. 오히려 인내와 같은 부수적인 힘에 더욱 신경이 쓰여 체력을 제대로 안 따져 보지만 당연히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한 일인지 잘 가늠해야 봐야만 한다. 돈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일이다 보니 쉽게 생각하지만 돈은 평생 벌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꼭 제대로 따져보자.



비용

비용은 크게 시간적, 금전적으로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비용을 따질 때는 일의 성격에 따라 이미 내게 있는 콘텐츠나 기획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작업해야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새롭게 기획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고, 이전에 개발해 둔 것을 활용할 수 있다면 비교적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




항목별로도 비교해봐야 한다


보통 위의 여섯 가지 항목에서 별도로 비교한다면 비용 대비 수익을 많이 따지겠지만, 일은 좀 더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비용 대비 수익이 많고, 위의 수식에서 분수의 크기가 1보다 같거나 크다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변수를 더 따져 본다. 기회와 인내. 거의 예측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변수를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분수 값이 1보다 크더라도 아래 두 가지 경우라면 일을 받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기회가 의미와 수익을 더한 것보다도 크다면, 이 사업은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단계에서 의미와 수익을 합한 값을 기회보다도 적게 챙겨주는 일거리라면, 나의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거나 일을 진행하는 측이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 경우는 피하자.


 번째로 인내가 체력과 비용을 합한 것보다도 더 필요한 상황이 예측된다면, 일을 시작한 뒤에 인내의 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을 시작한 뒤에 분수의 크기가 1보다 작아질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나를 착취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뭐랄까. 기회를 미끼 삼아 일을 던지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개고생 했지만 결국은 내게 일을  갑에게만 좋은 일을 해준 꼴이 된달까.


이 연말에 수많은 클라이언트들과 지원사업을 주는 주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괴로운 이들이 많지 않을까. 정확히 수치화되지는 않지만 위의 공식을 머릿속에 잘 넣어 둔다면 조금이라도 나를 갉아먹는 일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는 주체적으로 일을 선택하는 멋진 내가 되어 보자.





덧.

혹시 일잘갑에 대한 글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hildeandsophie/66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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