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얘기가 불편한 이유
요즘 제 화두는 ‘돈’입니다. ‘자낳세’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자본주의가 낳은 세대, 불로소득을 희망하는 세대,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세대를 말합니다. 제 또래들은 모이기만 하면 돈 얘기만 하고, 뉴스에서도 주식과 부동산 얘기만 하는 통에 아주 머리가 아픕니다. ‘돈’, ‘돈’ 하는 세상이 지긋지긋합니다. 젊은 세대들만 그럴까요?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작은 출판사를 창업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업한 이후 어른들에게 늘 비슷한 질문을 듣습니다. “돈은 좀 벌리나?”, “돈을 벌어야 할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네”. 조금 더 좋은 말을 해주시려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래 지금 돈은 안 되겠지만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 물론 저는 이런 표현들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래오래 지속하길 바란다는 응원’, ‘생활이 너무 궁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려’, ‘더 많은 영향력을 주도록 처음의 가치를 잃지 말고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기대’ 등 많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이야기를 대부분의 분들이 ‘돈’으로 표현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돈’에 관한 이야기라면 뭔가 아쉽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돈’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아쉽습니다.
어쩌면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돈 잘 버는 삶이 전제 되지 않는 다른 말. ‘돈 안 되는 일은 하지마’가 아니라 ‘누가 돈 준다고 해도 너가 하고 싶은 일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일은 하지마.’ ‘힘들어도 참으면 좋은 날이 올 거야’가 아니라 ‘돈으로 네가 하는 일의 가치가 평가되는 건 아니야.’ ‘집 한 채는 있어야 할텐데’가 아니라 ‘늙어 죽을 때까지 월세 살아도 괜찮아.’ ‘돈을 벌어야 할 텐데’가 아니라 ‘정 어려울 때는 나한테 연락해라.’ 이런 말을 들으면 더 든든하고 새롭게 하는 일에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으니 저도 실천을 해야겠죠. 20대 친구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고 상기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시에 ‘근데 결국 돈이 없으면 어떡하죠’, ‘비현실적이에요’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닌 친구들이 벌써 그런 고민을 합니다. 아직 돈 없으면 서러운 걸 경험해본 아이들이 아님에도 그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미 듣고 본 게 너무 많거든요.
평화의 걸림돌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평화는 갈등해결의 과정이므로 갈등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정주진 박사가 인용한 갈등의 정의에 따라 갈등을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상호의존적인 당사자들이, 불충분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당사자-당사자들과 대립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 집단 간, 개인 간 발생하는 웬만한 갈등은 이 정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정의에서 말하는 네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1) 양립할 수 없는 여러 목적을 양립할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들거나 2) 상호의존적인 당사자들을 분리하여 상호의존적이지 않게 만들거나 3) 불충분한 자원을 충분한 자원으로 만들거나 4) 서로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가요?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죠. 물론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폭력적인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갈등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불충분한 자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돈 이야기를 꺼낸 건데요. 이 ‘불충분한 자원’에서 ‘자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습니다. 먼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과 환경 에너지가 자원의 근원이죠.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온 지식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이들의 역사와 사상이 인류의 자원입니다. 조금 더 밀접하게 있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이기도 하고, 생활에 필수적인 건축, 토목, 제품, 인터넷과 같은 기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중에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만한 충분한 자원도 있고 희소한 자원도 있습니다.
문제는 충분한 자원이든 희소한 자원이든 모두 ‘돈’이 매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깨끗한 물, 시원한 온도,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훌륭한 직원이나 나와 잘 맞는 사람, 좋은 집, 빠른 인터넷.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인 ‘불충분한 자원’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돈’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분명히 충분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자원이 있고, 함께 보존할 수 있는 자원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고 좋은 사람과 일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며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고 기술을 쓰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활동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이바지 하는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거나 온전히 나를 위한 활동을 합니다. 예전에는 사회적인 활동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나와 가족의 일 말고는 다른 일에 기여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우리는 왜 돈 외에 다른 자원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일을 멈추게 되었을까요.
쉽게 생각하면 사회를 경험하기 이전부터 들어온 이야기들이 실제 경험과 맞아 떨어지면서 아주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커 오면서 들은 다양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결과적으로는 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이유도, 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하는 이유도, 착하게 살아야 하지만 또 너무 착하면 안 된다는 이유도, 잘 하는 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이유도, 상을 받으면 1등을 하면 어른들이 너무나 기뻐야 하는 이유도.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 아니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건 번듯한 직업을 갖기 위한 밑작업이니까요. ‘쟤는 엄마 아빠가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잘 컸더라’ 라는 말은 결국 ‘몸 쓰는 일 안 하는, 안전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더라’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동하지 않고 주식으로 ‘깔끔’하게 돈을 벌고자 하는 바람과 ‘노동’에 대한 경시는 이전부터 들어온 말들이 현실화 된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위험한 일이 필요하니 꼭 제도적으로 이를 개선하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위험한 일을 왜 하려고 하니’, ‘너만 그 일을 안 하면 돼’와 같은 암묵적인 메시지가 위험한 노동을 경시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동산도 이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가 그 뒤에 있는데 그걸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원보다, 자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돈을 못 버는 사람은 점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럼 대체 그런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요?
이제 젊은이들은 궁극적으로 돈을 가진 사람이 편안하게 사는 삶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온 것 같습니다. 출발점이 다른 것은 공정하지 않다가 아니라, 자본을 가진 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이 공정하기 때문에 내가 그 자본을 가진 이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돈’이라는 단어로 모든 자원이 평가되고 분배되면서 많은 가치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은 우리가 포함되지 않은 바깥의 적이 만든 세상이 아닙니다. 강력하게 자본을 추구하는 거대한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돈을 못 벌면 소용없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은 제 안에도,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사람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과 자본이라는 모든 걸 블랙홀처럼 흡수해버리는 단어와 개념을 해체하고 구체적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자원과 희소하지만 분배가 필요한 자원을 나눠가며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자원이 끝없이 갈등하며 획득해야 하는 가치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금 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하기 위해서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인식하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평화를 승리의 경험, 획득의 경험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결국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대상으로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이 속한 집단뿐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과 나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성찰이란 스스로만 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비판과 의심, 질문에 대해서도 귀를 열어둬야 하구요. 이런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적과 나를 구분하는 세상이 아니라 나와 적이 함께 평화롭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왔음을 인지 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돈’ 얘기를 조금 덜 하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것이 요즘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