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오보를 만드는 언론, 다시 보기
요즘 챙겨보는 거의 유일한 TV 프로그램인 <정준희의 해시태그>. 지난주 '22화: 오보 강제 리콜 중? 조국·이재명 언론 소송전'에서는 언론사의 무책임한 오보 행태를 다뤘다. 오보를 내고 그냥 나몰라라 하는 줄만 알았는데 오보를 낸 기자에게 기자상도 수여한댄다, 해당 이슈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언론사들이 매번 표현의 자유 같은 소리로 오보를 정당화하는데. 이쯤 되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오보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이건 오보가 아니라 프로파간다다.
프로파간다propaganda. 우리말로 하면 선전-선동. 선전은 주의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 따위를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 선동은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건 사전적인 뜻이고. 일반적으로 프로파간다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면서 사람들을 유혹해내는 냄새가 풀풀 풍겨나는.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정보를 조작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판을 짜서 교묘하고 빈틈없이 만들어 낸 전략을 의미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전파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프로파간다는 내 손 끝에서 벌어진다. 클릭, 좋아요, 공유, 댓글과 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프로파간다가 된다. 그리고 언론사의 수많은 오보가 프로파간다의 콘텐츠로 사용된다. 프로파간다로 사용될만한 콘텐츠를 무수히 만들어놓고, 이러한 콘텐츠가 일파만파 확산될 때 정작 기자와 언론사는 뒤로 빠진다. 만일 특종을 위해 경쟁적으로 보도하다가 실수로 오보를 낸 것이라 하더라도 이 오보가 이슈가 되어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명백한 프로파간다다. 그리고 오보는 그 자체로 충분히 위험하다.
오보가 위험한 이유로 최근 내가 겪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에 하태경 의원에 의해 촉발된 '김여정 제1부부장 위임통치' 논란이 있었다. 이 또한 결국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하태경 의원의 말을 그냥 받아 적어 보도한 언론들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다.(물론 하태경 의원도) 이 뉴스가 보도된 날 남북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해당 뉴스 이야기가 나왔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뉴스를 사실처럼 믿고 있었는데,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다. "역시 3월에 김정은 위중설이 나왔던 게 그냥 나왔던 말이 아닌가 봐요. 김정은이 확실히 건강이 안 좋긴 한 건지... 북한에 무슨 큰 변화가 생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김여정 위임통치 논란에 갑자기 김정은 위중설이 소환되었다. 이 말을 한 분은 평소에 어떤 정보든 충분히 검증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이것이 오보의 가장 위험한 점이다. 4월에 보도되었던 김정은 위중설은 분명한 오보였다. 아무도 사실관계를 입증하지 못했으며, 김정은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미지와 함께 위중설이 반복되자 그자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북한 내부가 혼란스럽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의 건강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건강 상태가 북한 체제를 실제적으로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처럼 오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잔상을 남기고 이후 다른 정보를 접할 때 영향을 미친다. 분명히 잘못된 정보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 정보는 머릿속에 남는다. 왜, 한국 사람들 밥 먹듯이 하는 말이 있지 않나.
야, 그런 말이(뉴스가) 괜히 나왔겠어?
오보가 더욱 위험한 건 바로 이러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공정한 언론의 역할을 찾지만 이제 언론사는 '회사'고 기자는 '회사원'인 듯하다.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는 기자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특종'과 '클릭 수'에 대한 고충. 언론사는 기사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다른 언론사들보다 빠르게 해당 기사를 내서 문제화시켜야만 한다. 왜? 클릭 수를 많이 받는 기사를 실어야 하니까. 다른 언론사보다 더 주목을 받아야 하니까. 기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주의력'을 끄는 미션을 받는 순간, 이 사람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 언론사에 다니는 회사원이 된다. 기자가 갖춰야만 하는 공공성은 점점 더 흐려질 수밖에 없다. 회사원이라는 단어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지 않다. 무슨 일을 하는지 드러나는 존재가 아니라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기자가 아니라 회사원이라면 언론사도 회사일뿐이다.
이제 언론사는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에서 눈에 띄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는 언론사와 포털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다. 영국에 있을 때 기사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언론사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네이버/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가 없는 것이 낯설었지만, 어느 사이트에 접속해야 하는지 알고 나면 그 사이트를 모두 즐겨찾기 해놓고 들어가면 됐다. 뉴스를 보고 싶으면 <BBC>, <The Guardian>, <The Economist>, <The Telegraph>, <The Sun> 등 직접 사이트에 접속해서 찾아봤다. 혹은 해당 언론사 어플을 깔아놓고 속보 알람이나 아침 뉴스 알람 등을 켜놓고 뉴스를 받아보기도 했다. 그러자 이 뉴스가 어느 언론사에서 보도되고 있는지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어떤가? 모든 뉴스가 포털사이트의 하위항목으로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튀기 위해 제목으로 경쟁한다. 언론사 이름은 묻힌다. 보고싶은 언론사를 모아서 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포털에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이 의미는 크지 않다. 그저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뉴스를 찾기 위해 접속할 뿐이다.
이렇게 언론사가 사람들의 주의를 많이 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와 다를 바 없어졌지만 오보에 대해서는 일반 회사들보다 무책임하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회사는 신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리콜하거나 손해배상을 한다면서 회사 내규에 따라 개발자를 징계한다.(물론 제대로 안 하는 회사도 많다.) 그러나 오보에 대해서는 언론사와 기자 중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 언론사는 오보라는 이름으로 프로파간다에 사용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자극할 뿐이다. 그래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언론사여도 해당 기사의 근거가 충분한지, 출처가 명확한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만 한다. 그리고 이 또한 편향된 기사일까 싶어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찾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언론사와 기자에게 공공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여전히 언론사의 역할을 그렇게 인식하고, 알아야하는 사실이 있을 때는 기사를 검색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필요한 정보를 언론사를 통해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이 그런 취재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그들이 하는 짓을 아예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좋은 기사를 찾아내 아직 우리에게도 좋은 기자가, 좋은 언론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그래서 <정준희의 해시태그>도 계속 볼 생각이다. 기사와 언론에 대한 기준을 잘 갖추어 속지 않고 좋은 보도를 구분해낼 수 있도록.
참고.
<정준희의 해시태그> 22화: https://www.youtube.com/watch?v=XvVRtqkix_w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