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LivesMatter
트럼프가 '평화시위'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걸 들은 순간, 그 동안 참고 있었던 험악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맥락과 연결된 미국의 상황을 한국의 언론들이 줄기차게 베껴다가 기사로 써내려가는 걸 보고는 분노로 박동수가 빨라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평화시위를 했었다며 미국의 운동을 나무라는 발언을 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고는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대체 '평화시위'가 뭔가. 트럼프가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나는 그냥 모두가 이 말을 안 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후 반전운동, 군축운동 측면에서 발전해온 평화운동은 신사회운동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가치 기반으로 움직이는 운동과 결합한다. 사실상 명사인 ‘peace’보다는 'peaceful'과 같은 형용사적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평화 개념 혹은 평화운동은 이 때 시작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오래 전부터 각 문화권에서 그만의 이미지로 그만의 방식으로 있어왔다. 다만 세계화가 진전되고 운동이 국경을 넘나들며 연대하면서 마치 다 같은 의미의 ‘peace’를 쓰는줄 알고 굳어진 느낌. 어느 개념이나 그렇지만. 민주주의처럼 평화도 모두가 동일한 '느낌'으로 혹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에 조금 더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평화'를 사용하면서 전혀 '평화롭지' 않은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평화 개념에 대한 불합치가 가져오는 이질감은 정말 크다. 기독교인이 사용하는 평화 개념도 종파마다 교파마다 다르다.(예.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대체 무엇일까) 방법으로의 평화, 내용으로의 평화, 운동으로의 평화, 그리고 학자별, 문화권별로 상이한 의미를 지닌 평화 등. 평화 개념은 전 세계인이 어느정도 합의한 굉장히 글로벌한 개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평화통일운동'은 ‘평화’라는 개념이 들어있지만 다른 국가의 평화운동과는 별개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사실 2016년 촛불시위 때도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강조하는 말이 조금 불편했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운동방식에 대한 좋은 평가가 많았다. 방법으로써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로써 평화가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위가 2016년에 비교적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중첩되어 있지만, 시민의 ‘수준’이 높아진 것 보다도 그전에 저항해온 운동의 시간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자비한 폭력에 저항해야했기에 때로는 함께 폭력으로 대응했고, 그러다가 죽임을 당했고, 그렇기에 살아남아야했다. 2016년에는 시민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평화시위였던 것만이 아니다. 국가도 그렇게까지는 대응하지 않았다. 왜? 도무지 평화롭지 않았던 시간을 몇십년을 보내오면서 광장으로 나오는 시민들에게 그래서는 안된다는 시각이 그래도, 그나마, 축적되온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가 해야하는 건 부당한 기득권에 대한 불복종이지 그저 평화로운 시위가 아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역사와 배경에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 이후의 다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싸워냈던 여러 형태의 시위를 연결하여 해석해야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의 시위도 그렇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나는 트럼프가 말하는 평화가 불편하다. 그가 사용하는 평화는 그저 '착한 것'을 의미한다. “Hey! good kids! 말로 하자 말로. 쉬쉬! 쉬쉬! 조용히 하고! Hey! citizen! 너 자꾸 그러면 시민이라고 부를 수 없지! 시민이 아니면 폭도고 내가 맘대로 해도 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다. 평화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물론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운동, 평화시위는 트럼프가 말하는 저런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외부의 시각에서 시위를 단순히 평화/폭력의 프레임을 나누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체 우리가 미국의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무엇을 운운할 수 있을까. 국가마다 싸우는 대상이 다르고 싸우는 환경이 다르다. 우리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억압하는 사회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홍콩처럼 대체 주권 정부가 어디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27년 뒤에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는 그런 사회를 살아본 적도 없다. 우리는 연대하지만 이건 그들이 살아서 그들이 아는 그들의 사회다.
홍콩의 경우만 봐도 장정아 교수의 지적처럼 "스스로도 경제도시라는 위상이 주는 제한적 자유를 크게 거부하지 않고 살아왔"던 홍콩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뭔지, 선거의 4대원칙을 보장하는 선거를 하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2) 그건 홍콩인들이 겪어가며 살아가며 헤쳐나갈 숙제이다. 몇 세대를 거쳐도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살아가는 미국의 흑인들 또한 여전히 그렇게 몸부림치며 싸우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가지는 정당성은 평화/폭력의 프레임 중 무엇을 선택하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저항하고 불복종하며 무엇을 얻을까의 문제이다. 그들이 살아나가야 할 그 국가가 어때야 하는지, 그들의 운동이 어때야 하는지 우리는 함께 사유하고 이를 통해 배움을 얻을 수는 있어도, 그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지적할 수는 없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처한 이런 현실이 ‘당연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또 화남)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그걸 모른다. 선거권이 없는 국가도 아니고 절차가 갖춰진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이 그걸 모른다니(아 진짜 어이가 없네)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이 그걸 모른다니!! 그런 대통령 입에서 평화롭게 시위하라는 둥 그런 얘기가 나온다니!!! 진짜 꼴도 보기 싫다.
1) 트럼프 6월 1일 성명,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s-statements/statement-by-the-president-39/
2) 장정아, "[글로벌 시시각각]'생명식빵'과 '경제도시 홍콩'의 반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2031111001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