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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부엉이를 위한 잡지 한편

칡부엉이의 사통팔달 : 연구자에게 전하는 영감

by 힐데와소피

오늘은 지난 편에서 다룬 '북저널리즘'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북저널리즘의 모토는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 우리가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룹니다."인데요. 놀랍게도 이 모토와 너무도 유사한 잡지가 하나 있습니다. '완성된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 편'을 추구하는 <한편>입니다. 북저널리즘과 잡지 한편, 양쪽 모두 책과 저널리즘, 그리고 논문이라는 기성 매체에 대한 '대안'과 '융화'를 시도하는데요. 이제 이런 시도들이 하나의 경향처럼 보입니다.


잡지 <한편>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부엉이들을 정확히 타켓팅한 잡지라는 사실입니다(!). 한편은 인문 분야 연구자들을 위한 잡지임을 대놓고 표방합니다. 물론 기존에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OO학회'나 'OO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잡지와 <한편>은 3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는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글을 싣는 것, 둘째는 젊은 부엉이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것, 셋째는 논문보다 짧고 쉬운 글을 싣는다는 것이죠.


<한편>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한 편의 글들은 그저 청탁해서 쓰인 글들이 아니라 같은 호에 참여하는 필자들끼리 세미나를 열어 서로 글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글을 완성한다고 합니다. 한 편의 최종적으로 실리는 글들은 부엉이 간의 협업 결과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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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저렴한 가격입니다. 한 권의 정가가 10,000원인데, 일 년 구독을 신청하면 27,000원이란 가격에 4개월용 리딩 플래너 노트도 덤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은 1월, 5월, 9월 연 3회 발행됩니다.)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도 개최하니 이런 이벤트도 참가할 여력이 있다면 더욱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한편>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짧은 글이라는 틀 때문에 글의 내용이 더 깊어지기는 힘들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글이 짧은 만큼 후루룩 읽기에 좋지만, 그만큼 읽은 내용이 빨리 휘발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민음사 측에서는 메일링 서비스와 공개 세미나로 주제를 계속 끌어가려고 하는 것 같지만, 글에서 던져진 화두가 더 깊이 토론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주제로 열 편의 글을 싣는다는 구성 역시 특색인 동시에 <한편>의 한계로 작용합니다. 주제가 매호 바뀌면서, 잡지의 연속성은 사라지고 무언가 하나를 꿰어 줄 '의식'이 존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또 주제에 따라서 수록되는 글의 깊이 차이도 느껴졌습니다. (1호에 비해 2호는 아쉬운 느낌...) 4개월이란 시간 안에 주제의 다양한 심도를 가진 글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잡지 <한편>이 칡부엉이에게 준 영감이 있습니다. 바로 부엉이들의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젠가 부리부리박사와 수리부엉이랑 생각보다 재밌는 논문이 많은데, 그런 걸 모아서 내는 잡지가 있으면 재밌지 않을까 하며 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는 일반 대중이 논문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도 연결되었습니다. <한편>의 시도는 수많은 부엉이들이 고민했을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입니다. 그래서 한 편의 시도가 부엉이의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기대하며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엉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알아보고 연결해 줄 '편집자' 부엉이다. 부엉이들 간의 협업이 이 잡지를 만드는 하나의 축이라면, 새로운 부엉이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일은 이 잡지의 또 다른 축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편집자'의 명성은 그 역할에 비해서 너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부엉이 세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엉뚱하지만 '편집자'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괜한 생각은 아니겠지요. 편집자와 부엉이의 흥미로운 콜라보, <한편>의 건승을 기원해 봅니다.



한편의 편집자의 인터뷰 - "한편한편 엮어야만 의미가 있다"(한겨레, 2020.01.3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26340.html



한편이 더 궁금하다면? http://minumsa.minumsa.com/1p/




글. 칡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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