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을 사고파는 시대를 읽는 방법, 책 <주목하지 않을 권리>
지난 1편에서 <뉴욕선>의 벤자민 데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음으로써 돈을 버는 미디어의 이익 구조의 시작과 확장을 알아봤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매출'로 이어지죠. 이제 미디어에 있어서 광고가 구성과 수익 양 측면에서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의력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 심화될수록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전략도 발달했습니다. 브랜딩과 노출효과, 그리고 타깃팅이 대표적이죠.
광고는 광고를 보고 상품을 구매할 누군가를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광고 제작에 있어 타깃팅은 전략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어쩌면 너무 당연한 전제이죠. 하지만 상품이나 양이나 종에서 부족하던 시절에서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가 되면서, 단순히 상품의 장점이나 효능으로만 고객을 설득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어떤 상품을 쓰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개종시키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했죠. 이를 위해 브랜딩과 노출효과가 쓰였다는 점은 1편에서 지적했습니다. 브랜딩과 노출효과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체 광고 전략에 잘 부합했죠. 하지만 전국적인 광고를 집행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비용이 크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용을 줄이고, 효과를 더 극대화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전략이 필요해졌습니다.
1971년, 군집 분석(cluster analysis)에 관심이 많았던 연구자 조너선 로빈(Jonathan Robbin)은 광고의 내용보다 수용자 특성을 분석하는 컨설팅 회사 클라리타스를 세웁니다. 그는 서로 가까이 사는 주민들끼리는 인구통계학적, 사회경제적, 생활 방식 상의 특징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이용해, "보헤미안 믹스", "총과 픽업트럭", "젊은 교외풍 생활양식"과 같은 단어로 미국 전체 인구를 40개의 특징 있는 군집으로 구분했습니다. 조너선 로빈의 컨설팅을 받은 코카콜라는 특정 유형의 군집들이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군집에게만 집중해서 광고를 집행했습니다. 결과는 물론 성공적이었습니다. 잘 연구된 타깃팅은 광고의 비용은 줄이면서도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임이 입증됐습니다.
잠시 인터넷의 등장으로 가봅니다. 인터넷이 광고업계에 가져온 변화는 엄청납니다. 아니, 차라리 변화라기보다 혁명에 가깝죠. 컴퓨터와 인터넷의 상업적 잠재력이 인정받기까지 이후로도 꽤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초기 이메일의 발명과 등장은 인터넷이 가진 잠재력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1971년. 컴퓨터과학자인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은 몇몇 대학을 연결한 네트워크에 불과했던 아파넷(ARPARNET, 인터넷 전의 컴퓨터 간 네트워크)을 쓸만한 방안이 있는지 연구하라는 국방성 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는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파일을 주고받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일단 메시지만이라도 먼저 주고받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일 전송 프로그램을 의도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메일박스에 메시지를 첨부할 수 있도록 수정했고 다른 컴퓨터로 도착하는 것을 표기하기 위해 지금은 너무 당연해진 '@(골뱅이)'를 사용하죠. 레이 톰린슨의 이 간단한 발명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파넷 사용자들에게 널리 사용되기 시작됐습니다.
톰린슨의 발명 이후 1978년, 벤자민 데이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게리 투어크(Gary Thuerk)는 전자장비 회사의 마케팅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새로 출시되는 제품을 어떻게 홍보할지 고심하고 있었고, 곧 열릴 시연회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전화나 초대장을 생각했지만 혼자 하기엔 너무 느리고 번거로웠죠. 당시에는 전화번호부처럼 인터넷 사용자 명부가 있었고, 투어크는 이를 활용해 대량 메일(380여 명을 대상으로)을 보내기로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스팸(spam)' 메일이죠. 물론 광고성 메일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거의 비용이 들이지 않은 효과적 광고가 인터넷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두고두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리 투어크의 스팸 사건에서 유심하게 봐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수용자와 공급자가 같은 채널을 동등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 대중매체에서는 오직 공급자만이 내용을 내보낼 수 있었고, 수용자는 공급자가 제공한 내용을 오직 듣고 보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혹 공급자가 보낸 내용에 항의를 하거나 의견을 보태려고 할지라도 자신이 보고 있는 채널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에서는 공급자가 보낸 콘텐츠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게리 투어크의 스팸 메일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항의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네트워크 간의 동등한 교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초기 인터넷과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광고업자의 등장과 잠식은 이후 모든 인터넷 채널(이메일, 블로그, 소셜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 됩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초기 페이스북은 광고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들은 사람들이 광고로 잠식되어간 타 사이트에 비해서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진정성을 느끼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이트의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을 주된 실적으로 챙기면서, 페이스북은 정교한 타깃팅을 준비했습니다. '좋아요' 버튼은 바로 사람들의 개인적인 정보는 물론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람과 자주 관계하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게 한 마법의 도구였습니다. 이후 페이스북은 광고를 통한 수익모델을 공개했는데, 광고 포스트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는 뉴스피드에도 똑같은 형태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용자와 공급자가 공유하는 채널의 가장 악한(?!) 버전까지 나아간 셈입니다. 인터넷은 광고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를 가장 잘 활용하게 된 건 광고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우리 모두가 광고업자가 되었다면요?
페이스북의 성공이 가져온 사회적 효과는 비단 광고의 효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이 만들어 낸 것은 현실 세계와 비등한 영향력을 가진 가상 세계의 발견이었죠.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정체성도 구축"하며, "어찌 보면 그들의 이미지와 정체성은 그들의 브랜드에 해당한다"(449쪽)고 정확하게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짚었습니다.
거기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어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같은 소셜 기반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저커버그가 지적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상품화하고 홍보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사람을 통해 '욕망'하게 하는 것이 가장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광고 전략임이 분명해졌습니다. 현대 미디어 플랫폼에서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곧, 그가 먹고 입는 것 등 모든 것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로써 브랜딩과 노출효과, 타깃팅이라는 광고 전략의 3박자가 그대로 개인에게도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의 2021년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억 3천만 명입니다.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거대기업인 셈이죠.
이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정체성을 계발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성장을 알아봐 줄수록 그 사람의 영향력은 커져가겠죠. 더불어 이 영향력은 각종 광고와 상품을 만드는 광고주 혹은 사업가들에게 반가운 채널이 되어주고요. 나 자신이 곧 상품이 되어버린 세상. "상품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곧 상품이다"라는 문구가 요약하는 바입니다.
주의력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 광고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지금,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지금, 여기는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고객에 닿을 수 있는 세상.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죠. 또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세상,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매일을 일희일비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유토피아인 걸까요? 디스토피아인 걸까요? 분명한 건 개인의 관심과 참여가 곧 경제적 가치를 지닌 교환수단이 되었단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또는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도 부릅니다. 물질을 기반으로 한 산업 자본주의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자, 인간의 인지 활동(어딘가에 관심을 쏟고 주의력을 기울이는 것)이 곧 노동이자 상품화된 자본주의로 이행했다는 것이죠. 조금 멀리 나아가면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책 <주목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 팀 우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되찾기 프로젝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우리의 의식과 정신 공간"(512쪽)어야 한다고 덧붙이죠. 과연 인간의 주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 시스템을 막아낼, 혹은 대체할 방법이 있을까요? 혹은 지금보다 인간적인 시장과 자본주의를 만들어낼 새로운 혁신이 등장할까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경계심을 갖고 준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인 듯합니다.
글. 김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