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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Nov 30. 2021

TINY RIOT

저항하는 음악이 그립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내재된 경쟁구도와 자본주의를 욕하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재능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2021년을 "강타"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재밌게 봤고, 그 전까지는 <슈퍼밴드2>를 애청했다. 작년에는 JYP에서 일본인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인 <Nizi Project>에 빠져있기도 했다. 너무 흥행해서 일본에서 책으로까지 나온 박진영의 "난 너의 가능성을 알아. 넌 너다울 때 가장 멋져. 넌 분명 더 잘할 수 있어" 식의 심사평은 오그라들기는 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Niziu라는 그룹이 만들어졌지만, 발매되는 곡들이 유치하기 그지없어 JYP에게 실망스럽다.) 그래도 역시 박진영이 참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믿고 볼 만한 것인가 싶어 올해 초, 박진영과 싸이가 기획한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프로그램인 <라우드(LOUD)>를 시청했다. 하지만 단 2회만에, 이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내가 원하는 종류의 가수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프로그램을 접었다.

너무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들은 내가 선호하는 저항의 노래를 이제 하지 않았다.




아니 애들이 왜 이렇게 착해(!)


나는 남자들만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본 적이 없다. 그 유명했던 <프로듀스101 시즌2>도 안 봤다. 그래서 그랬을까. <라우드>에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너무 오글거렸다. 특히 참가자들끼리 서로를 대하는 방식, 참가자들이 심사위원을 대하는 방식, 심사위원이 참가자를 대하는 방식에 좀 놀랐다. 뭐랄까. 너무 예의가 바르고 깍듯하달까?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남자'아이들의 태도를 보며 그 이질감은 증폭되었다. 게다가 데뷔만을 바라며 어린 나이부터 열심히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쌓아온 아이돌 지망생들의 성실함은 감동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충격이었다. 그동안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늘 느껴온 충격이었지만 대체 스무살도 안 된 혹은 갓 넘은 나이에 어쩜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길만을 향해 갈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왜 이렇게 착하지. 그리고 착한 게 왜 이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질까.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의 이미지는, 춤을 추고 노래하는 10대들은, 좀 껄렁껄렁(?)하고 사회와 어른에게 불만도 많은(!) 학교 가기 싫고(!!) 놀기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실력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는 반항과 저항의 메시지가 듬뿍 담긴 저항송(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항으로 가득한 곡)을 부르는 가수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제야 깨달았을 뿐이지 이미 예의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고 실력있는 연예인이 더 환영받은지 오래됐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가수는 H.O.T.다. 외모와 스타일도 좋았지만 그들의 노래와 무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팬픽이나 팬 활동들이 즐거웠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은 지금도 방송에서 언급되는 캔디, 행복, 빛과 같은 밝고 사랑스런 노래가 아니다. 그보다는 전사의 후예, 늑대와 양, 열맞춰, 아이야, 투지, Monade, Pu Ha Ha, 아웃사이드 캐슬과 같은 류의 노래를 좋아한다. 첫째도 저항! 둘째도 저항!! 셋째도 저항!!! 지금 사회 X같애(화르르르) 싹 다 바꿔버려(화르르르르)!!! 이런 류의 노래! H.O.T.를 알게 되면서 그 위로 저항을 노래하던 사람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H.O.T.는 그런 생각을 가진 멤버들이라기보다는 이수만 아저씨가 기존에 성공한 음악들을 잘 벤치마킹해 만들어 낸 아이돌 그룹에 가까웠지만, 잘 놀고 싶었던 멋져 보이고 싶었던 오빠들이 자신이 속한 그룹의 정체성을 가지고 맘껏 소리 지르는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C랜드 사건을 보고 '아이야'를 만들고, 장애인들의 삶을 생각하며 '아웃사이드 캐슬'을 만드는 사람들이지 않았나. (그때 저항을 부르짖던 오빠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보면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이돌뿐 아니라 주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친구들은  재단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집도 그다지  살지 않았고 어딘가 거칠고 틀에 맞지 않고 불만이 많았다.  구속하려 들지마!!!! 라고 외치던 친구들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조용히 공부만 하라는 이야기를 하루종일 듣는 10대가 유일하게   있는 반항.  목소리를 내고  몸을 자유롭게 만들며 친구들과 어울려다닐  있는 수단이었다. 공부만 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랬다.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며칠  책상 앞에 다시 앉더라도 당연한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가사에는 몰입이 안되도 소리를 질러댈  있는 김현정, 소찬휘 노래를 불러댔고, 걸그룹 노래를 부르며 깜찍한 척하다가도, 결국  구속하는 사회와 학교는 부서져 버리라며 서태지, H.O.T., 크라잉넛, 자우림 노래를 불러댔다.


내가 당시에 가수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나 대신 그런 노래를 불러줘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에는 도무지 정이 붙지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그런 노래들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시대를 행복하게 누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런 노래들이 뚝 끊겼다. 저항송의 가뭄이 왔다.




그들은 무엇을 노래하는가(!!)


점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줄어든 시대 탓도 있겠지만. 저항을 노래하던 몇몇 아이돌이 크게 성공을 하고, 회사에 자본이 축적되면서 춤과 노래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잇따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반항적이지 않았다. 반항을 하기 위해 춤과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인기와 성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춤과 노래를 좋아해서 직업으로 삼기 위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기획사에 들어가 계속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자본도 필요했다. 이제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이들은 더이상 딴따라라고 불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감히 그렇게 부를 수 없도록 훈련받고 스스로 훈련한 아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대중은 반항적인 아이들보다, 준비되고 친근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을 좋아했다.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부추긴 결과일지도 모른다. 반항적으로 보낸 10대의 스토리보다는, 성실하게 살아온 아련하거나 대견한 스토리가 있는 편이 더 좋았고. 친구들을 괴롭혔을 수 있는 폭력적인 아이들보다는,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들이 더 좋았다. 사회적인 어려움 속에서 비뚤어진 아이들보다는 그걸 극복하고 착하게 살아온 아이들, 혹은 그런 걸 모르는 아이들이 더 좋았다. 사회문제를 직접 지적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돈을 많이 벌어 그런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더 보기 좋았다.


이제 아이돌들은 사랑만 노래한다. 그조차도 사랑의 본질을 고민하고 다루는 노래는 아니다. '우리가 만났고 나는 이래서 너한테 반했어 그러니 날 사랑해줘.'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어!'  이런 맥락의 노래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종종 멋있는 컨셉을 한 그룹이 나오더라도. '나는 이렇게 강하고 도도해, 그런 내가 너한테 반했어. 너도 날 좋아하게 될 거야.' 이런 노래들을 불렀다. 그러면서 훅이 반복되는 점점 퍼포먼스 위주의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부터는 춤을 추는 영상과 함께 봐야만 납득이 되는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힙합에서도 돈 좋아! 예쁜 거 좋아! 그래서 나 너 좋아! 이런 가사들가 지배적이며 이런 걸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최근 <쇼미더머니10>을 하길래 어떤 음악을 할지 궁금해서 틀어봤다가 돈 타령에 숨이 막혔다. 개인의 욕구를 드러내서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고. 그것이 돈인 걸 어떡하나. 돈이 없으면 소중한 걸 지킬 수 없다는 데 어떡하나.


<라우드>에 나오는 깍듯한 아이들, 반항은 커녕 성실하게 연습에 임하고, 선배와 심사위원에게 (군대식으로) 예의를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 이렇게 해야 데뷔하고 사랑받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본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2>에서조차 저항송은 찾기 어려웠다. 밴드!하면 락! 락!하면 저항!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곡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어떤 문제가 있어도 나는 나의 길을 갈거야!' 류의 메시지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더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이제 노래할 수 없는 걸까. 그런 희망은 더 이상 노래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걸까. 그러니 최선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그저 내 길을 꿋꿋히 가는 것. 그것뿐인 걸까.




그래 이게 락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저항송을 찾는다. 내게 저항을 담은 노래가 밥이라면, 노래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저항감은 탄수화물이고, 저항감을 통해 얻는 에너지는 탄수화물이 분해되며 나오는 에너지와 같다. 나는 저항을 담은 노래를 통해 저항할 힘을 얻는다. 몇 달 전 샘 라이더(Sam Rydar)가 부른 <Tiny Riot>이라는 노래를 발견했다. 락다운 중 틱톡에 꾸준히 커버곡을 올리면서 유명해진 가수라던데, 나는 <Tiny Riot>으로 처음 알게 됐다. 알고리즘이 돌아가며 틀어 준 노래였는데, 처음 듣자마자 바로 "그래, 이게 락이지!"라고 속으로 외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7BcBD8-BA


Start a tiny riot 작은 폭동을 시작해.
Stop being so goddamn quiet 조용히 있는 건 집어쳐!
Got a spark in your heart so strike it 마음 속에 있는 불씨를 지피고
Wash away your pain 고통을 씻어내
Turn the pouring rain to a tidal wave and ride it 쏟아지는 비를 파도로 바꾸고 서핑을 해
(...)
Turn the pouring rain to the wave of a tiny riot 쏟아내리는 비를 작은 혁명의 파도로 바꿔봐


저항송을 듣는다고 해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갖기는 어렵지만, 내가 아닌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매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최소한 절망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다짐한다. 나는 절대 사회 속에서 혼자일 수 없다. 사회와 나는 유기체처럼 얽혀있고, 사회구조에 영향을 받은 내 행동과 내 생각이 사회구조를 다시 재생산한다. 그 굴레가 너무 강해 마치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지만,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지려고 애씀으로써 그 구조에 분명 균열을 낼 수도 있다. 어렵지만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저항송이 준다. 눈에 보여지는 뉴스들과 갈등들은 늘 답답하지만, 또 다시 힘을 내보자. 마루야마 겐지의 책 제목처럼 결국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기도 하니까.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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