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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n 15. 2019

왜 힙한 출판사는 없을까?

책의 위기가 아닌 출판사의 위기

책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다. 디지털 시대의 책의 종말이 다가왔다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의 멸종은 상상할 수 없는 미디어다. 책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아니 생각할 수밖에 없는 가장 완성된 생각의 '틀'이기 때문이다.


이 '틀'에 대한 질문은 여태껏 없었다. 너무 당연한 것인 것이기에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 틀은 꾸준히 변화하여왔고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되어왔다.


Copyright © Mike Keefe, Denver Post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전자책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높아졌다. 나도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인터렉티브한 전자책을 처음 봤다. 2011년 푸쉬팝프레스에서 나왔던 전자책의 완성도는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다. (당시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놀라울 만큼 기존 출판계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전자책 시장을 선도한 건 아마존과 리디북스와 같은 출판업계 외부에서였다. 기술은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출판 시장의 변화속도는 훨씬 더뎠다.



기술의 혁신은
출판업계와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책이란 '틀'의 힘 세다. 그것의 효용성과 유용함, 그것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이미 검증된 것, 영속적인 것이란 믿는다. 소설의 '기승전결'이 고정불변의 진리이듯이 말이다. 기술의 발전은 책 이외의 블로그나 SNS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를 만드는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책'이란 형태의 구조와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흔히 본다.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기술이 출판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리디북스와 밀리의서재와 같은 전자책 플랫폼이 굉장히 커졌고,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펀딩은 독립출판 열풍을 몰고 왔다. 책을 내고픈 작가는 잘만 하면 아무런 자본도 없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책을 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출판은 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공감하는 사람을 직접 모으고 후원하는 것을 현실화시켰다. 이는 수많은 작가의 등장이라기보다, 작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독자의 등장'이었다. 메시지 선택의 권한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하여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플랫폼들 (좌부터) 텀블벅, 퍼블리, 북저널리즘


그러나 기존 출판업계는 시장이 작아지는 만큼, 더욱 강력한 인플루언서에 찾아 의존하는 소극적인 대응만 해왔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 명만 잘 모시면, 걱정이 없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는, 이 시대의 출판사는 역할은 대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묻게 한다.



시장은 변했지만 플레이어는 변하지 않았다



출판업계만큼이나 언론업계의 위기 인식도 오래되었다. 종이신문은 종이책보다도 더 빠르게 사라진. 요즘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의 80-90%는 스마트폰이다. 언론업계에는 '틀'에 대한 의심을 하기 앞서, 이미 '틀'이 변화한 환경을 마주한 셈이다. 기존 저널리즘 방식에 대한 회의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한 철학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에 '뉴스'가 '서비스'이자 '상품'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뉴스의 문법을 획기적으로 바꾼 해외 미디어 스타트업 악시오스(Axios)의 시도는 이 중 가장 흥미롭다. 악시오스는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전달을 위하여 길게 늘어진 기사를 없애버렸다. 같은 뉴스를 다룬 뉴욕타임스와 악시오스의 기사 화면은 얼마나 다른가. 기존 뉴스 작성의 문법을 바꿔버린 것만으로도 메시지 전달 방법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좌) 뉴욕타임즈 (우)악시오스의 기사화면


'책'이 상품인 것은 기존 출판계에서도 명확한 진리였다. 책은 팔려야 돈이 되는 너무나 명확한 수익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나 혹은 구독, 후원에 의존하는 언론과는 그 결에서 달랐다. 그러나 새로운 저널리즘이 내린 정의 중 하나는 책에게 던져보지 않았다. 책도 '서비스'일까?


책이 '서비스'라는 개념을 대입하면,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밀리의서재의 책을 요약해서 읽어주는 리딩북이나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형 팟캐스트 'Serial', 내게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온라인서점의 취향마법사, 오프라인의 큐레이션서점들 등이 그것이다. 책을 둘러싼 서비스의 다양한 변화들이다. 이런 변화를 책 그 자체에 대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



문법을 바꾸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의 사례로 매거진B와 유유출판사를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콘텐츠를 담는 '틀'을 매력적으로 만듦으로써 두 출판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브랜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고 정성어린 관리가 필요하다"했다. 뛰어난 마케팅을 위해서 조직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왜 책을 내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질문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시장 속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누구나 늘 스스로 묻고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생산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도 동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B ⓒJOH&Company


힙한 출판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힙하다'는 기존과는 색다른 것, 그리고 앞서가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일 때를 말한다. 힙하기 위해선 당연하다 여겨지는 전제를 의심하고 도전 할 정신이 필요하다.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처음엔 다 그런 거니까.




글.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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