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찾아서

#3. 작당의 시간

by 힐데와소피

서점을 유랑하는 일은 보물 찾기와 같다.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 '내 말이 그 말이야'를 연발하게 하는 문구, 선 자리 그대로 얼어붙게 만드는 필체. 서점 나들이는 이 짜릿한 목격, 그 한순간을 위한 것이다. 인생이란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것.


그러나 출판인이 된다면 이 마법은 사라진다. 서점이란 보물섬은 돌연 박물관이 된다. 누군가가 이미 발굴하고 윤색해 논 보물들이 닿을 수 없이 놓여진다. 내 것 아닌 황금이 무슨 소용이랴? 출판인은 자신의 황금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갓 나온 탐험가에게는 보물 지도도 없다. 그래도 영리한 선각자들은 이런 이들을 위해 팁을 남겨 두었다. 어쩌면 보물은 당신 집 뒷마당에 있을지 모른다고.






힐데와소피라는 사명을 정하고 난 뒤, 힐데와 소피는 첫 번째 책의 아이템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통일과 북한' 분야 관련 책들부터 모조리 알아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남북 평화무드 조성으로 마침 출판가에는 '북한 알아가기'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오는 책들마다 무언가 중대한 것이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소피: 라캉이 이런 말을 했다죠. 모든 언어는 미끄러진다.

힐데: 무슨 말이야?

소피: 철학 수업 때 들었던 건데. 언어로 의미하는 바를 말하려고 하면, 그게 뜻대로 안 되는 거래요. 이를테면 '사랑해'라고 하는 단어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뜻이 그 뜻이 아닌 게 되어 버리는.

힐데: ?... 그래서?

소피: 그러니까. 저희 작업이 약간 그런 거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시작된 소피의 난데없는 철학 타령. 그러나 힐데의 문제의식도 소피와 다르지 않다. 힐데와 소피가 생각했던 통일교육사업의 핵심인 '통일'이 바로 그런 단어였으니까. 그 단어는 알프스 산맥 어딘가의 스키장처럼, 미끄러지고 미끄러져도 당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힐데: 통일이란 게, 정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거라는 걸 대학원 가서 금방 느꼈어. 모두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 누구는 대단히 폭력적인 통일을 말하고, 누구는 유토피아를 그리듯 통일을 이야기하더라.

소피: (유토피아란 단어에 뜨끔.)

소피: 오.. 동시에 두 사람이 방법적으론 다르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힐데: 맞아. 그런데 중요한 건 다르다면 어디가 다른지, 같다면 어디가 같은지 서로 모르는 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지. 그 사이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은 무엇일까, 아니 그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통일'이란 단어를 꽤 오래 담고 살았던 사람에 속하지만, 소피는 명확히 말할 수 없었다. 이 질문은 소피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그 단어가, 대체 무엇인지 짚어 보자. 그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렇게,



첫 책으로 향하는 나침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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