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과 겉

#4. 작당의 시간

by 힐데와소피

작가와 출판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라 한다면, 작가는 '속'을 고민하고 출판인은 '겉'을 고민하는 데 있을 것이다. 책의 속과 겉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영감과 노력을 효율적 활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분업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나 출판인이 욕심을 부릴 때다. 자신들에게 맞는 겉, 혹은 속을 찾지 못해 결국 자기가 해보겠다는 욕심 말이다. 힐데와 소피는 이 욕심을 부릴 것이다. 의기충천한 초심자이니 말릴 수 없다.



힐데: 정말, 통일 관련 서적도 그렇지만. 요즘 책들도 어지간히 재미없게 되어있다.


소피: 읽을 사람만 읽으라? 뭐 이런 느낌이죠?


힐데: 응. 근데 그 읽을 만한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해.


소피: 우리 같은 사람?.. 큭


힐데: 그러면 더 큰 문젠데.



출판의 문제는 이것이다. 읽는 사람만 읽는다. 그런데 책이란 건 휴지 같은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다 읽었다고 똑같은 책을 새로 사지 않는다. 이러니 요즘에는 1쇄 1,000부 찍은 책들도 다 팔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만약 힐데와 소피가 근 일 년 동안 노력과 돈을 투자해서 1,000부밖에 팔지 못한다면, 돈은 물론이고 힐데와 소피의 존재 역시 반짝거리며 쏜살같이 사라지는 별똥별이 될 것이다. 분명 봤지만 내가 무얼 본건가 의아해지는 별'똥'별..


힐데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된다. 시장을 넓혀야 한다. 읽지 않았던 사람도 읽게 만들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주제를 바꿀 순 없으니, 기존에 통일 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 + 관심 없던 사람도 끌어당길 요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 +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끌어당길 만한 요소면 더 좋겠지.



힐데: 나는 '통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면, 당장 어떤 형태로 통일할 거냐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르거든. 남한이 주장하는 '연합제'나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같은 것들 말이야. 이런 통일의 형태에 대한 고민을 남북한 정부 뿐만 아니라 남과 북에 사는 시민들이 함께 해야 된다고 봐. 소피는 어떻게 생각해?


소피: 맞아요. 각자가 어떤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하죠. 그 말을 들으니.. 저번에 텀블벅 펀딩으로 샀던 게임북이 생각나는데.. 책의 질문을 따라 가다보면 자기가 선호하는 체제에 다다르는 그런 흐름은 어때요?


힐데: 그렇지!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책이 지루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책은 보는 이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반면 영상매체는 그렇지 않다. 텔레비전을 왜 바보상자라 하고, 넷플릭스 몰아보기는 어떻게 가능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떠 먹여 주는 것이 영상이다. 하지만 책은 들어야 하고, 펼쳐야 하고, 넘겨야 한다. 책에는 반드시 물리적인 행동이 수반된다. 손톱만큼의 적극성. 책이 그것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적극성. 책이 그것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게 하는 힘은 눈길을 사로잡고 감동시키는 문장, 즉 책 '속'의 내용 있다 보통 믿어져 왔다. 안타까운 사실은 힐데와 소피 이 둘 중 하나도 누구의 심금을 울릴 만한 문장을 써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문장으로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둘 다 자격미달이다. 그러니 달리 나올 수밖에 없는 전략은 문장이 아닌 구조, 즉 책의 형식인 '겉'을 건드리는 것이다.


을 집에 비유한다면, 힐데와 소피의 이번 책은 정글짐 될 것이다. 집에 비해 상해 보이겠지만, 명확히 구조가 보이면서 튼튼한. 그리고 그 뼈대 위에 오르거나, 매달리거나, 드러누워가며(?) 놀 수 있는 기구. 아리송하지만 일단 뭐, 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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