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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l 31. 2019

통일 이후 한반도를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응준, <국가의 사생할>  그리고 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

통일.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지만 사실 실제로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죠. 그래도 서울통일평화연구원에서 매년 진행하는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  '통일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59.8%에 달했다고 해요.(서울통일평화연구원, 2019) 아직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통일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상상해보지 않는 것 같아요. 



포스터 그리기 귀찮아서 통일할 순 없잖아요?



이번 글을 읽어보시면서 "통일을 하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상을 돕기 위해 책 두 권을 가지고 왔어요. 이응준의 책 <국가의 사생활>과 장강명의 책 <우리의 소원은 전쟁>입니다. 사실 두 책은 통일 이후에 벌어질 부정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배경부터 살펴보면, <국가의 사생활>에서 북한은 권력층이 해체된 후 남한체제로 흡수통일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는 급변사태가 일어난 후, 북측에 통일과도정부가 세워진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과도정부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고, 조선인민군이 해체되면서 평화유지군이 북쪽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죠. 최악의 통일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건들은 남북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한다 해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문제들로 보입니다.





통일을 하면 지금의 북한 정부는 어떻게 될까요?


현재 북한 정부가 그대로 유지된 채 통일을 맞게 될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간에 '김씨 왕조'는 몰락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김씨 왕조'가 사라진 후에 우리 생각처럼 쉽게 안정이 올까요? 이런 상황은, 외부의 힘에 의해 독립을 맞아야 했던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게 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정권을 유지해온 세력들도 함께 처벌하고자 할 겁니다. 그러다보면 바로 이어서 집권할 정부가 없으니 행정 공백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죠. 만일 모두를 처벌한다면, 북한의 행정과 치안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급하게 임명하거나, 남한에서 북한의 행정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처벌하지 않을 시, 한국에서 친일파 문제가 여전히 불거지는 것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겠죠. 


그래서 통일 이후 북한의 상황은
독립 이후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럼 통일을 조금 천천히 하면 괜찮을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권력층과 독재 세력에 대한 처벌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남한도 친일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본 적이 없는 걸요. 그들이 다시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할지라도 어떤 삶을 살아가도록 할지에 대한 대책까지 필요합니다. 북한은 개인의 권력이 직업과 직결된 곳입니다. 행정 및 당의 지도층, 법관, 대학교수 혹은 정치 교사, 지방의 기업 관리자들 등 많은 이들이 당원이죠. 처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는 북한의 경찰인 인민보안부 인력을 급변사태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하여 치안을 유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뒷돈을 받아 마약거래를 눈 감아주기도 하죠. <국가의 사생활>에도 동일한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 경찰이 북한의 치안을 담당하면서 북한 출신 폭력 집단에게 뒷돈을 받고 범죄를 눈 감아주죠. 아마 소설 속, 영화 속 경찰들이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북한 주민들의 삶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두 책의 주요 소재는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약. 아마도 마약을 선택한 이유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정부에서 암암리에 마약을 재배해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생산한 마약은 '빙두', '백도라지'로 불리면서 북한 인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고 해요.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 마약범죄가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마약만큼 한국 사회에 가장 큰 혼란을 줄 수 있는 장치도 없겠죠.(요즘은 뉴스에 많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마약문제가 등장하니 당연히 폭력 집단과 특수부대 혹은 인민군 출신의 에이스도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해체되면서 어둠의 통로로 나온 총과 무기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무기와 마약, 그리고 조직원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북한에서 꽤나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마약이라니 무시무시하죠. Photo by Matthew T Rader on Unsplash


<국가의 사생활>에서는 마약을 팔며 돈을 버는 북한 출신 폭력 집단이 한국에 테러를 일으켜서 남북 출신의 주민들의 갈등을 극대화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폭력 집단 내부에서 이를 막고자 하는 정의의 사도가 등장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는 북한 산 마약을 한국으로 밀반입하려는 폭력 집단과 이를 막으려는 특수부대 출신 해결사와 장마당 언니들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구요.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조금 유치한 설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재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자극적인 주제로 끊임없이 서로의 뒷통수를 때리며 동시에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설정은 많은 걸 말해줍니다. '북한의 고위급들이 통일 이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북한 정부를 인정하는 통일을 하지 않는 한 말이죠. 그들은 자신의 계급, 위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체제에 충성하고, 북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왔을 겁니다. 그들이 가진 전부가 사라졌을 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될까요? 이렇게 어둠의 길로 빠질 가능성이 클까요? 모든 사람이 어둠의 길로 빠지진 않겠지만,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반드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위급 뿐 아니라 전문적인 직업군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는 역사교사를 하다가 통일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북한에서 김씨 왕조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교사들이 등장합니다.

"통일과도정부가 들어서자 남조선 당국이 학교 시설을 고치고 아이들 밥을 먹이는 데 쓰라고 어마어마한 돈을 지원해줬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어요. 김씨 왕조를 우상화하는 교육은 절대 안 된다. 교과서 내용을 고치고 교원들도 다시 시험을 치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영어나 수학 교사들은 상관이 없었지만 도덕, 력사 과목 교사들은 큰 타격을 받았죠. 사실은 남조선에서 두 과목 교사들은 전부 다 내쫓으라고 요구했대요. 그리고 남조선에는 일없이 노는 늙은이들이 많으니, 그 노인들을 조금 가르쳐서 공화국에 보내 력사 교사로 일하게 만들려 했다는 거예요. 그 노인들의 봉급은 공화국이 주게 하고요." 


김씨 왕조의 역사를 가르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게 되면 북한의 많은 직업군이 그대로 사라지게 됩니다. 두 정부가 합의를 보지 못하고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지금의 북한 정부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얻을 수 있는 혜택만큼이나 잃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 쌓아 온 삶 자체를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마땅히 필요한 희생인 걸까요?


남북의 주민은 함께 살 수 있을까요?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남북의 모습을 촬영한 YUSUKE HISHIDA의 'Border I Korea' 시리즈 중


위의 문제들이 조금은 먼 얘기처럼 느껴지신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일상과 좀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사실 우린 북한 사람들이랑 만나본 적도 살아본 적도 없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본다 해도,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북한 사회를 벗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직 북한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두 책에는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린 장면들이 나옵니다. 


먼저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는 북한에 통일과도정부가 세워지고 조선인민군이 해체되자 한국군 일부를 북쪽으로 파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강 대위는 운이 없게도 예비군 신분이었다가 군인의 수가 모자라서 다시 착출된 사례입니다. 아주 억울하겠죠? 평화유지군으로 온 말레이시아 출신 롱 대위에게 강 대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이런 비유를 들어볼까요? 롱 대위님한테 형제자매가 여러 명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형제자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나가서 매일매일 대형 사고를 치는 거예요.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빚을 지고, 누구는 물건을 훔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롱 대위님도 형제자매 소식은 더 듣고 싶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음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거죠. 그 형제자매를 다 합해 놓은 게 북한이에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 해요. 너무 지겹고, 감당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왜 저런 형제를 저에게 주셨나요, 그런 심정이에요."


형제자매가 왜 그러는지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지쳐서 그냥 포기하는 느낌이네요. 북한 사람들끼리는 남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남조선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에요. 늘 자기들의 진짜 의도를 숨기고 상대편에게도 기회가 있는 척 말하지요. 그러면서 시험이나 면접 같은 걸 치게 해요. 그걸 평가하는 위원들은 전부 다 자기편 사람들로 채워놓고요. 그리고 돈을 공짜로 줄 때에는 결국 그 돈이 자기들에게 돌아오게 만듭니다. 알아두세요." 


어떠세요. 남한에 사는 여러분.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국가의 사생활>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통일 대한민국은 이북 사람들에게 뼈아픈 상실 그 자체였다. 따뜻한 남쪽 나라의 동포가 미리 건설해 놓은 자본주의에 편입만 하면 언젠가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남 사람들은 이북 사람들을 게으르고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모욕했다. 이북 사람들은 이남 사람들이 거만하고 인색하다며 비난했다. 이북 사람들은 자신들이 통일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 지금은 유령이 되어 버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루어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북 사람들과 이남 사람들은 서로가 달라고 이토록 처절하고 이 갈리게 다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작가들도 북한 사람들과 살아본 적이 없을텐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요? 두 작가는 기존 연구자료와 탈북자와의 인터뷰 등을 참고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던 중 <국가의 사생활>에 나오는 북한 사람의 말을 통해 작가들이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미래를 상상했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넌 통일 이후의 대한민국이 우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
천만에. 그건 이남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야.
여긴 원래 이랬어. 그게 통일 때문에 극심해져서 확연히 드러난 것뿐이지.


그렇습니다. 작가들이 통일 이후를 상상하면서 참고한 건 북한 사회가 아니라 남한 사회입니다.



남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사생활>의 결말에는 아래와 같은 뉴스가 나옵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한 소녀가 자신이 일하는 의료기기 공장의 사장에게 강간을 당하자 이를 비관해 유서를 적어 두고 자살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에필로그에도 다음과 같은 뉴스가 나옵니다.

"한편 지난달에는 경기도에서 임금을 몇 달 동안 받지 못한 북한 근로자 10여 명이 사장 가족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다 끝내 사장 부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익숙한 뉴스입니다. 통일 이후 발생하는 문제들의 원인이 북한에만 있지는 않을겁니다. 한국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정말 다른 이와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남과 북의 주민 모두에게 괜찮은 통일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을 상상하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현실에 대한 지식 보다는 '국가란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 '권력이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와 같은 철학적인 사고가 더욱 필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상상의 깊이를 위해서는 사유가 필요하니까요. 





이렇게 어려워보이는 문제를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요? 분단된 지 70년이 흘렀고, 당위성의 문제에서 한 발 떨어져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혹은 무관심한 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세대입니다. 하지만 위의 책들만 읽어봐도 남북 관계 문제는 저희 일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지금의 분단 상황은 징병제로, 정치적인 담론으로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만일 통일을 하게된다면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일상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거구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시겠거니 하고 바라만 봐서는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내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남북관계는 무엇인지, 통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에 대해 숙고하고 결정해야만 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필요와 뜻대로
남북 관계가 진행되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에게는 권리가 주어지는 동시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후 이 사안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시민으로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덧. 그래서 힐데와소피는 이런 내용과 관련한 책을 만들고 있어요. 빠르면 9..9월 중... 펀딩..? 기대해주세요!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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