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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Aug 31. 2019

북한과 아내의 공통점

젠더 의식의 결여가 가져 온 최악의 비유


공직자, 국회의원, 교수, 기자 등 북한과 통일에 대한 담론과 생각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종종 남북관계를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에 비유한다. 남북관계는 밀당하며 갈등이 치닫는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가, 신혼의 단 꿈에 젖은 신혼부부이기도 했다가, 파경 위기에 닥친 부부이기도 하다. 혹은 70년 전에는 부부였는데 현재는 별거 상태에 있는, 재결합해야 하는 부부로 비유하기도 한다. 부모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부부로 말이다. 그리고 남한은 남자 북한은 여자다.


어떤 글에서도 남한을 여자로 북한을 남자로 비유하지 않는다.


북한과 아내(여자 친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아래 글의 저자는 통일에 어떤 편익이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생명이 위급한 아내에게 드는 수술비용을 통일비용에 빗대어 설명한다. 수술비용이 많이 들지만, 아내를 살렸을 때 얻게 되는 편익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수술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적 문단이 등장한다.



"게다가 통일에는 비용이 수반되나 통일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도 상당하다. 예컨대 당장은 아내의 수술비용이 들지만 아내를 살림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가. 우선 아내가 없으면 음식 준비, 빨래, 청소 등을 위하여 파출부를 써야 할 것이다. 집으로 손님을 식사 초대할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드는 외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편이 살림을 맡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설령 남편이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기회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내 없이 혼자서 아이들의 학업이나 진학 문제 등을 도와주고 신경 쓰는 데에서 오는 시간과 노력 비용도 클 것이다. 더욱이 아내가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라면 소득의 상실도 매우 클 것이다."

- 조동호, <주제가 있는 통일강좌 27: 통일비용보다 더 큰 통일편익>(서울: 통일교육원, 2011), pp. 16-17.



아. 그러니까. 아내를 살려야 하는 이유가 가사노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고, 아내가 벌어들이는 소득의 상실 때문이라고? 그런 아내를 살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은 남편에게만 있다고? 이후 이어지는 문단은 더 가관이다.



"따라서 통일에 대비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정책은 바로 우리의 경제를 튼튼하게 키워 나가는 것이다. 다시 예로써 이야기하면, 아내가 언제 아프더라도 수용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내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함으로써 명예퇴직 안 당하고 승진도 순탄하게 해 나감으로써 월급을 많이 받게 되면 수술비용 정도는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 공부를 잘 시켜서 좋은 직장을 가지게 도와주면 아이들도 엄마의 수술비용 일부를 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앞의 글, pp. 28-29.



아. 그러니까. 언젠가 병이 걸릴지도 모르는 아내는 평생 집안일을 하면서 자신의 수술비용을 대줄 수 있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자신이 걸릴지도 모르는 병에 대한 대비이고, 절대 중병에 걸릴 가능성이 없는 남편과 자식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나가면 된다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물론 이 부분에서는 아내를 살려야 하는 이유로 '가족 간 사랑'에 대해서도 설명하지만 전체 글을 읽고 난 후에는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이해 못할 시각만 남는다.



이선균은 부부관계를 남북관계에 비유했다. 남북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2011년 놀러와 자료)


아래 글은 남북관계가 신혼과 파경 위기를 모두 거쳤으니 이제는 중년부부에 머물러야 한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중년부부란 너무 차갑지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가정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면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가정을 지키는 성숙한 부부를 말한다. 모든 중년부부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에도 문제적 문단이 등장한다.



우선 북한은 경제사정이 좋아졌다. 예전 어렵게 살던 시기에 남쪽에게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북한은 정말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남북관계가 그나마 좋았던 연유이기도 했다. 살림하기 위해 남편에게 돈을 타서 써야 하는 아내의 처지는 무작정 남편에게 대 들고 싸울 수 없다. (중략) 북중 교역의 지속 증가는 북한 경제에 상품 유통과 시장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북한은 남쪽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신혼 초기에 남편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써야 했던 아내가 이제 딴 주머니를 차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셈이다. 남쪽에 경제 의존도 줄면서 북한이 신혼 때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유가 생겨났다.

- 김근식,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신혼과 파경을 지나 중년부부로", Future Horizon: Winter 2016 (제27호), pp. 23-24.



살림을 위해 남편에게 돈을 타 써내야 했기에 고분고분했던 아내는 돈이 좀 생기자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다. 아내는 반드시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쓰며 고분고분해야 하는 건가. 게다가 아내가 돈을 버는 것만으로 부부가 파경에 이르렀다면, 아내는 그동안 경제적인 이유 만으로 남편하고 살았다는 건데. 이런 부부는 그냥 이혼하고 사는 것이 서로의 미래에 더 좋지 않을까. 




여성과 북한에게는 자기 결정권이 없다.


저자들은 여성을 능력 없고, 성숙하지 못한, 자기 결정권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 하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을 비유하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굉장히 학술적이고 객관적인 척하며 진짜 하고싶은 말은 숨겨 놓았다. 이들의 '격 있는 어투'를 거둬내고 숨겨져 있는 속내를 드러내 보겠다.


'나(남한)'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정도로 능력도 있고,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 이미 번듯한 집도 마련했고 재산도 꽤 많이 모았다. 게다가 사회에서 알아주는 친한 친구들(미국 등)도 여럿 있어서 사실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즐겁게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 친구(북한)다. 여자 친구는 어릴 때부터 옆집에 살고 있어서 거의 가족처럼 지낸 사이다. 부모님들에게서도 당연히 얘랑 결혼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결국 이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운명도 있는 거지.

여자친구는 별 볼일 없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 능력도 없는 데다가 친구도 없는!! 거의 왕따나 다름없다. 가지고 올 혼수라고는 사실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자원과 저임금 노동력뿐이다. 힘도 없는 주제에 꽤나 폭력적이고 분노조절장애도 있는 것 같고, 때로는 그냥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약속도 안 지키는 데다가, 내 친구들과 내가 친한 걸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 가족 간 약속도 있고, 혼수도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지 않나? 여자친구가 내 조언도 듣고, 하라는 대로 좀 하고,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자기 의견 말하지 말고, 내 친구들하고 잘만 지내면, 사고 치지 말고 살림만 잘하면!! 진짜 아무 조건 없이 먹여 살려주겠다는데 얘는 죽어도 자존심을 굽히질 않는다.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딸린 자식이 2,500만 명이나 있다!!!! 하아. 내가 그 자식들까지 모두 거둬주겠다고 말하는데!!! 이 정도면 사실 그냥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별 볼일 없고 약한 너를 받아주다니, 이런 남자가 세상에 어딨냐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라는 건 핑계다.


'여성'인 북한의 파트너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북한은 온 세계의 국가(남성)들과 연애 중인 듯하다. 아래는 민병두 의원이 2018년 북미정상회담 이후 작성해 문제가 됐던 글이다. 북한 여성뿐 아니라 북한에게도 '정절'은 중요한 문제였다.




국회의원은 해당 글이 논란이 되자 이렇게 설명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한, 이해하기 쉬운' 비유였다고. 그리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앞서 인용한 나머지 두 저자도 이렇게 설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건 핑계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라는 건 결국 자신도 이 프레임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위의 비유들의 또 하나의 문제는, 저자들이 늘 남성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여성, 그리고 북한은 철저히 대상화된다. 아마 다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북한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겠냐고. 솔직히 북한이 자꾸 속내를 감추지 않냐고. 그러나 모든 외교 관계에서 국가라는 행위자는 주체적이고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속내를 감춘다는 표현은 개인에게는 사용할 수 있지만 국가에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남녀관계로 표현하여 북한이 감정적이며 비정상이고 부족하다는 식으로 혹은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


북한을 아내로 비유하면서 마치 굉장히 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척하며 쓴 글들은 사실 저자 자신이 젠더적 의식도 없고 북한을 굉장히 비정상적인 국가로 보고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아저씨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담론을 이끌고, 교수도 하고, 정치도 하고, 북한에도 가고, 인터뷰도 하고, 뉴스를 비롯한 온갖 방송에 나와서 아는 척은 다 하고 있지 않은가. 아. 짜.증.나!!!!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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