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데와소피 Nov 07. 2019

리더는 무슨 책을 읽는가?

리더와 책 - 국회의원의 서재 분석

책 읽는 리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추천사에는 흥미로운 이름들이 보인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 빌 게이츠,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정치, 경제계 리더들이다. 이들은 또한 애서가(愛書家, bookworm)로도 유명하다.


2015년 마크 저커버그는 "A Year of Books"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같은 이름의 온라인 북클럽을 운영하며, 페이지를 통해 북클럽에 읽는 책들을 페이스북 팔로워들에게 소개했다. 그가 추천한 책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물론 고전에 반열에 오른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와 같은 게임이론 도서까지 다양했다.


빌 게이츠는 자타공인 독서광이다. "오늘날 나를 만든 것은 마을의 도서관이며,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서에 대한 이러한 열정은 그의 '게이츠의 노트(Gatesnotes.com)'라는 블로그에도 엿보인다. 현재 이 블로그에는 100권이 넘는 서평이 올라와 있다.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에 매일 1시간씩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통령 임기 생활을 지탱해주고 힘이 되는 것이 그 한 시간의 독서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대통령에 퇴임한 현재에도 오바마는 자신이 읽은 책을 꾸준히 SNS에 공유한다. 미국 출판 관계자들은 오바마의 이런 책 추천이 매출로 이어지는 이른바 '오바마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출판계도 그 효과에서 예외는 아니다. "오바마가 휴가 갈 때 가져간 책"이란 문구는 책 홍보에 적극 활용된다.


마크 저커버그의 "A Year Of Books" 온라인 클럽 홈페이지




빌 게이츠가 직접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 "Gatesnotes.com"



오바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공개한 여름 독서 리스트(2019)



세 사람이 출판사와 모종의 관계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찌 됐건, 미국 사회 대표 리더들이 '책'을 중시한다는 것이 자못 인상적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고, 사회에 필요한 의제를 제기하고, 모든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일. 리더가 하는 많은 일이 실은 책을 '경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은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 랄프 왈도 애머슨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애머슨의 말처럼 책을 읽는 행동이 자신의 미래, 그리고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리더가 어떤 책을 읽는가는 그들이 만들어 가는 미래,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단서일 것이다.





우리의 리더들은 무슨 책을 읽나 - 국회의원의 서재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 장 폴 사르트르


얼마 전 우연히 국회도서관 웹사이트를 들어갔다 '국회의원의 서재'란 기사를 발견했다. 국회도서관에서는 매월 '월간 국회도서관'을 발간하는데 거기에 실린 한 코너였다. 금태섭, 나경원, 박주민, 노회찬 등 대중에게 유명한 의원의 이름도 제법 등장한다. 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들은 자기 인생에서 기억에 남은 책은 무엇인지, 특별히 영향을 준 책은 무엇인지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3권의 책을 추천한다.


국회의원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중요 리더라고 한다면, 그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인터뷰한 이 자료는 꽤 좋은 원자료가 될 것 같았다. '국회의원의 서재' 코너에서 최근 5년 간(2014년~ 2019년)  소개된 61명의 국회의원의 책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출처: 월간 국회도서관 - 국회의원의 서재

*정리 엑셀: 국회의원 책 추천 리스트


일단 먼저 국회의원의 서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책들을 정리해봤다.


삼국지(16회)

태백산맥(14회)

전환시대의 논리(11회)

데미안, 토지(9회)

논어, 장길산(8회)

82년생 김지영, 부활, 전태일 평전(5회)

우상과 이성, 로마인 이야기, 죄와 벌, 라이파이, 한강(4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피엔스, 역사란 무엇인가, 칼의 노래, 광장, 채식주의자, 대망,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새로운 100년-가슴 뛰게 하는 통일이야기, 해방전후사 인식, 사기열전, 아리랑, 소나기, 임꺽정, 정글만리 (3회)


좌우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은 '삼국지'였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최근작 정글만리까지)과, 박경리 선생의 '토지' 예찬도 빠지지 않았다. 대체로 민주당 계열의 국회의원은 리영희 작가의 책(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 인식, 우상과 이성, 대화)을 많이 언급했다. 민주화 운동권 출신의 학습도서로 빠질 수 없었던 책이었던 까닭이다.


꽤 많은 국회의원들이 동양철학을 언급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논어'는 물론이고, 맹자, 장자, 도덕경 등 다양한 동양고전이 언급됐다. 그 외에 '로마인 이야기'라던지, '대망', '막스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같은 정치사 및 정치철학 관련 도서도 있었다. 비교적 최근 책으로는 '82년생 김지영', '채식주의자', '사피엔스'가 순위에 올랐다. 순위 중 '라이파이'는 낯선 이름의 책도 있었는데, 1959년(!) 처음 나온 한국 토 히어로물이자, 최초의 SF만화라 한다.




당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게요.


국회의원의 서재 마지막 질문인 추천하는 책 3권은 정당별로 정리해봤다. 국회의원들이 추천한 책들의 제목만 봐도 정당의 성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25명의 추천 도서       

전태일 평전 (2회)

대망, 무소유, 어린왕자, 사랑의 기술, 홍길동전, 역사란 무엇인가, 세계문학전집, 생활의 발견, 입 속의 검은 잎, 친일인명사전, 합동연합작전군사용어사전,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 못이야, 뜻으로 본 한국역사, 코스모스, 변증법적 유물론, 한국자본주의, 풀꽃도 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분권헌법, 상상-현실이 되다, 태백산맥, 반 고흐 태양의 화가, 큰 바위얼굴, 데미안, 손자병법, 호치민 평전, 강희대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삼국지, 불가능의 예술, 죽은 시인의 사회,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인식, 우상과 이성, 이야기 세계사, 새로운 백년, 리딩으로 리드하라, 정글만리, 불완전함의 영성,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제인스빌 이야기, 정의란 무엇인가, 푸틴 권력의 논리,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절반의 인민주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옥중서신, 시로 납치하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제5열, 빨강머리의 여인, 로봇의 부상, 인간의 품격,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울로프 팔매, 노르웨이의 숲,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 82년생 김지영, 논어, 장 크리스토퍼


자유한국당(새누리당) 21명의 추천 도서

 논어 (3회)

 로마인 이야기, 토지, 삼국지 (2회)

일류국가의 길, 죽음의 수용소에서, 명상록, 파인만 이야기, 넬슨 만델라 평전, 블루오션 전략, 정선 목민심서, 강대국의 흥망, 관자, 잘가요 엄마, 한국의 내일을 묻는다, 이완영의 노사형통, 국가의 부와 빈곤, 소셜 애니멀, 죽기전에 한번은 유대인을 만난다, 불평등의 대가, 침묵의 봄, 지와사랑, 인간시장,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 중용,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세종처럼, 난중일기,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직지, 사기열전, 82년생 김지영, 축적의 시간, 초한지, 칼과 칼집, 인듀어런스, 대한민국의 건국일과 광복절, 초예측,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 간디자서전, 강한 국가의 조건, 세대 전쟁, 혼돈의 세계, 넛지, 도시의 승리, J커브, 별 헤는 밤, 길 없는 길


바른미래당(국민의당,바른정당,민주평화당) 11명의 추천 도서

사기열전(2회)

엉클 톰스 케빈, 백범일지, 가인 김병로, 현대한국문학사탐방, 논어의 자치학, 부활, 폭풍의 한가운데, 토지, 대지, 탈무드, 김종필 증언록, 만화조선왕조실록, 경제전쟁,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매지노베이션, 제인에어, 소유냐 삶이냐, 모든 것의 이론, 경제철학의 전환, 공터에서, 혼불, 무상을 넘어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빼앗긴 봄의 들판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사피엔스, 진리의 말씀 법구경, 꺼벙이, 삼국지, 우주로부터의 귀환, 축적의 시간


정의당, 통합진보당 4명의 추천 도서

시튼 동물기, 행복한 논어읽기, 전태일 평전, 비폭력대화, 김대중자서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도덕경, 동물 해방,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도합해 보면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3권의 책 중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의 순위는 아래와 같다. 논어의 자치학, 행복한 논어 읽기처럼 논어와 관련된 책을 포함하면 논어가 총 5번 언급되므로,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책 중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사실상 '논어'라 할 수 있겠다.   


논어(3회)+ 논어의 자치학, 행복한 논어

삼국지, 전태일 평전 (4회)

토지 (3회)

82년생 김지영, 사기열전 (2회)




베스트셀러를 읽는 리더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 포도르 도스토옙스키


국회의원들이 제일 많이 언급한 '삼국지'는 사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다. 다른 버전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이문열의 '삼국지'만 2015년 기점으로 2800만 부가 팔렸다. 한국 문학사상 가장 많은 부수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들(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역시 삼국지만큼 천 만부를 넘어서는 메가 히트 작품이다. '82년생 김지영', '채식주의자', '사피엔스' 역시 비교적 근래에 조명을 받았던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시대가 읽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꼽은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탓할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 자신의 세계관 형성은 물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책을 고르라는 질문에, 별다른 의식 없이 베스트셀러를 언급한 것을 그저 '괜찮다' 혹은 '바람직하다'라는 평가를 내릴 순 없어 보인다. 더구나 그들의 인터뷰는 마치 꼭 짜 놓은 것처럼 비슷비슷했다. 


만일 국회의원이 지역사회나 시민들의 요구를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한다면, 국회의원이 책을 얼마나 읽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지역구민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국회의원의 역할이 그것에만 한정되어있는가. 지역사회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구상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추천한 책에서 그들이 '학습'하고 있다는 느낌은 (소수의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대다수가 정치인이란 '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회를 군웅이 할거하는 '삼국지'로 바라보고, 현재 한국의 문제를 '전환시대'의 논리와 '해방전후사'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들의 세계관은 과연 현재 우리사회가 필요한 요구와 미래를 담아낼 수 있을까.




리더에겐 책 선물이 필요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사가 나온 직후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책은 2018년에 나왔지만, 이번엔 출간 직후에도 얻지 못한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사람들이 읽기 시작하자, '밀레니얼 세대' 말이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리더는 어떤 책을 읽는가'만으로 여론은 움직였고, 반응했다. 청와대와 국회의원. 어찌 보면 그들은 나라를 선두에서 운영하는 리더다. 그들이 읽는 책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사회적인 영향력이 일반 개인보다 크기 때문이다.


리더의 책 선물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7년에는 금태섭 의원이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했다. 금 의원의 선물 덕택(?)인지 몰라도 국회의원의 서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최신 서적은 '82년생 김지영'이었다. 그래선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누구에게 책을 선물했다는 미담이 그저 훈훈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책을 손에 쥐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읽지 않는다는 얘기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더라 하여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아닌 좋은 책을 발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독서는 단순한 취미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책과 사람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그 상호작용의 결과로 그 사람의 사고와 말, 그리고 행동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추천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일단 그들이 뭘 읽기라도 해야 그걸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미국의 대통령도 매일 1시간 독서를 했다는데,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안 하진 않은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여. 스스로 서재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성찰하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제발 신간도 읽으면 좋겠다.





글. 김소피

매거진의 이전글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