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데와소피 Dec 24. 2019

서울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 (2)

지방내기의 서울살이 몇 달 후


서울엔 이주자가 많나, 정주자가 많나


이주자는 언제 정주자가 되는 것일까? 그전에 이주자(移住者)와 정주자(定住者)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봤다. 일단 (1) 자기 소유의 집. 집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지역에 계속 살겠다는 의지와 전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2) 20년의 거주 기간. 한 인간이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정주자'라 부를 수 있다.


뇌피셜로 만든 조악한 내 정의에 빗대자면, 서울의 인구 대다수는 이제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킨다. 1980년까지는 서울에는 이주자가 더 많았다. 하지만 1988년에 서울 인구는 천만 명이 넘었는데, 그 뒤로 서울의 인구는 천만 명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유지되었다.



밀레니엄 세대 중 42.7%가 '부모와 같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 성인기 이후에도 독립하지 않은 '캥거루족'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들 10명 중 6명이 서울 출생자(62.3%)로 77.7%가 '서울이 고향 같은 느낌'이라고 답했다.

밀레니엄 세대는 1980년 이후 출생자들을 흔히 칭한다.



그런데 첫 번째 조건이 남았다. '자기 소유의 집(자가점유율)'. 이 조건을 따지면 서울 인구 대다수가 정주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머뭇 거려진다.  전국적으로 자기 집에 자기가 사는 사람의 평균은 56.8%다. 전국 인구의 절반이 조금 넘는 가구가 자신 소유의 집에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 비율이 유난히 떨어진다. 2015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에서 14%가 부족한 41.1%다. 이런 추이는 1995년(서울 39.5%, 전국 53.3%)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출처: 국가지표체계,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239


서울 인구가 천만 명이 넘은 이후에도 60%의 사람은 여전히 자기 집이 없다. 대다수가 서울시에 사는 사람이지만, 서울 내에서는 이주자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임차가구의 임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서울시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을 제외한, 민간임대주택 임차가구의 50% 정도가 2년 미만, 75% 정도가 5년 미만 단기로 거주한다고 한다(!). 이렇게 2년마다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대충 계산해보면 (서울 인구 1,000만 명 X자가 비소유 가구 60% X 2년 미만 단기 거주 50%) 300만 명이다. 묘하게도 현재 서울의 1인 가구 비율과 그 수치가 비슷하다.



가구 구성으로는 1~2인 가구가 54.7%로 가장 많았다. 특히 1인 가구는 2016년 기준 30.1%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30% 이상인 자치구는 관악구, 중구, 종로구 등을 포함해 13개 지역이다.




유동성이 만들어 낸 도시의 모습


서울 내 이주자가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서울에선 임차가구만이 자주 이주하지 않는다. 자가에 살고 있는 집들도 이주를 감행한다. 서울 거주가구의 절반이 현 주택에서 5년 미만 거주한다. 2년 미만 거주하는 가구도 20%를 차지했다. 반면 10년 이상 장기거주는 가구는 약 29%였다. 자가소유비율이 40%라면, 10%의 사람들이 자기 집이 있는데도 이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 '정주자'의 조건을 배격하는 도시다. 자기 소유의 집도, 긴 거주 기간도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의 '유동적인 생활양식'은 이 도시에 그대로 드러난다.


인구유동성이 적은 동네에 가면 (물론 경제적으로 쇠락한 느낌도 받겠지만) 그곳이 조용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왜냐하면 거리에는 이미 그 동네에 효용성을 입증한 가게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간판도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빵집이 있고, 허름하지만 망하지 않는 세탁소가 있다. 동네의 인구와 세대가 큰 변화 없다면, 그들을 위한 상업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큰 부침없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매년 새로운 사람들로 바뀐다면, 동네 가게들도 그 속도에 맞추어서 흥망성쇠를 겪는다. 단골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에 불안정성이 커진다. 새로운 고객을 잡는 홍보가 중요해지고, 거리는 자연스럽게 시끌벅적해진다. 서울의 많은 공간들에서 나는 이 시끌벅적함을 느꼈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동네라도 지역은 훨씬 안정적이었다.


5년마다 혹은 2년마다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면, 내가 사는 공간과  주변을 개선시키려는 관심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 내가 자본을 얼른 모아서 더 나은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는 무관심이 드러난다. 아무리 자기 집 앞이라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이 도시에 찾기 힘들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쓰레기를 치우도록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만큼 프랜차이즈가 성업하는 나라도 드물다. 계속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균화된 공간 경험과 서비스는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2년마다 정주 환경이 바뀐다면, 자기 동네에서 어디가 빵을 잘 굽고, 어디가 빨래를 잘 봐주시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간판에 의지하게 된다. 서울 거리 곳곳은 놀랍도록 서로 닮아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획일화된 거리 모습은 전국적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형태인 아파트와 원룸도 마찬가지다(서울 주택의 44%가 아파트이다). 아파트와 원룸은 누구든지, 바로 와서 살 수 있는 구조와 서비스를 갖춰둔다. 원룸에는 냉장고와 에어컨이란 옵션이 있고, 전기와 가스는 스위치만 누르면 연결된다. 서울의 공간은 결코 개인화하여 만들지 않는다. 언제든 사고 팔 준비를 해놓는다.




서울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


이러한 속도와 유동성은 어떤 사람을 만들어낼까?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면 이러한 현상은 '액체근대'의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바우만은 이런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일수록, 사회는 캐러밴 이동주택 단지 운영되는 방식과 비슷해진다고 지적했다.



모든 운전자는 각자의 여행 일정표와 시간 계획표가 있다. 단지의 관리자에게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다고 볼 수 있는 소망, 즉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간섭받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그들은 관리자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사용료를 제때 내겠다는 약속을 한다. 돈을 내기 때문에 때로는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있다. (……) 그러나 이들이 이동주택 단지의 관리 철학에 질문을 던지거나 이를 두고 교섭하려고 마음먹는 일은 결코 없다. 하물며 단지를 운영하는 책임을 떠맡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껏해야 앞으로 이곳에 다시는 오나 봐라 하며 친구들에게도 이곳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자고 마음먹는 정도이다. 각자가 자신의 일정에 따라 단지를 떠날 무렵, 그곳은 이들이 도착했을 때 그대로 남아 있다. <액체근대>, 41-42쪽


사회적 자본과 동네를 잃어버린 개인은 공간과 사회에 대한 애착이 없다. 오직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기 자본의 형성을 위한 시간과 일정이다. 그래서 자주, 서울에서 '집'은 사는 곳이라기보다, 자산을 뜻한다. 바우만은 오늘날 엘리트들은 이러한 환경에 가장 빠르고, 유동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오늘 날 엘리트들은 전 지구적으로 구속된 곳 없이, 빠르게 이동하고 점령한다. 이런 세상에서 '진보'는 더 작고, 더 가볍고, 더 이동 가능하기 쉬운 것을 의미한다. 바우만의 액체근대 글귀를 현실에 옮겨놓는다면, 서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렇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서울은 이런 엘리트들, 유동성을 원하는 개인들을 위한 도시로 변모해왔다. 서울이란 공간 곳곳에서 그 속도감과 최적화에 대한 욕구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나는 몇 달 전에 써던 글에 서울은 수많은 양을 가진 커다란 시장이기에, 자동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경쟁상대가 많다면 차별화 전략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서울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 https://brunch.co.kr/@hildeandsophie/19).


하지만 이제 와 보니, 이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트렌드'였다. 사람들은 '다양함'을 읽기도 전에 자리를 뜬다. 서울은 개성적인 사람을 만들기보단,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대세를 만들거나 빨리 쫓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이 도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혜는 물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물이 들어올 곳을 찾아가, 노를 저어야 하므로.




출처:

'나혼자산다'시대 성큼..서울 1~2인가구 절반 넘었다 https://opengov.seoul.go.kr/mediahub/15597560

서울연구원 https://www.si.re.kr/node/61136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서울 시민의 주거실태 http://data.si.re.kr/sites/default/files/file/3장



글. 김소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