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말하는 것 (2)

#9 쓰는 시간

by 힐데와소피
작가에게 답장이 왔다.


작가는 재미있는 기획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했다.


소피: (재미있을거 같대..!)


재미. 통일이랑 재미랑 엮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반은 성공한 거 아닌가. 소피는 신이 났다. 들뜬 마음으로 작가와의 만남 일정을 조율하고, 미팅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만나 고도의 협동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각자의 목적과 능력이 어떠한 지부터 먼저 알아야 했다. 일단 정리해야 할 것은 힐데와 소피의 목적이었다.


힐데는 이 책의 내용을 다시 되짚어봤다. 책은 '통일'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고, 독자가 그중에서 자신과 가까운 입장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힐데는 이러한 다양한 입장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그 이미지가 이 책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힐데와 소피가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았던 작가의 작품처럼 말이다.


힐데가 상상하는 그림은 광화문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북한과 통일 관련 시위들(종북세력 척결, 평화 지향, 북한 인권문제 등 주제) 이에 무관심한 시민들, 군사분계선에서 펼쳐지는 경의선 준공와 GP철수,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과 판문점 등의 장면들이 수직으로 펼쳐진 모습이었다.




2019년 7월 말, 청년청 1층 카페에서 진행된 작가와 처음으로 만났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힐데와 소피가 생각해뒀던 그림을 실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보였다. 작가는 도트라는 디지털 화면의 최소 단위를, 하나 하나 채워나가는 형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특이하게도 그는 원근법을 없애고, 위치에 따라 위계를 짓는 방식을 선호했다. 명확한 도트의 값, 그리고 원근법이 없는 그림. 이런 방식이라면 힐데와 소피가 생각했던 모습들은 정말 '작게' 그려져야했다. 이를테면 시점을 하늘에 둘 건지, 아니면 땅에 둘 건지 결정해야 했고 동시에 이 둘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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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보느냐, 아래에서 바라 보느냐의 시점 차이



힐데의 상상이 '정'이라면, 작가의 스타일과 책 표지의 크기는 '반'이었다. 헤겔은 정과 반이 만나면 합으로 지양되는 변증법을 말했다. 씨앗이 싹이 되는 것이 그의 변증법의 정확한 예시다. 씨앗이 땅 위에 공기와 만나 싹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정'이 '반'을 만난다면 과감히 이전을 버리고 더 새로운 '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카치 도요다가 개발한 '5 why'기법은 그 '합'의 방향성을 어디로 두어야 하는가를 검토하게 한다. 씨앗이 싹이 되기 위해서는 씨앗이 원래 가지고 있는 그 '목적'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힐데와 소피는 작가와의 미팅을 마친 후 이 책 표지의 원래 목적은 무엇인가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힐데는 이 책 표지의 목적은 '통일이란 주제를 다루면서도 색다른 방법을 쓰고 있음을 드러나는 이미지'라는 것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굳이 앞서 상상한이미지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색다름을 드러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주제로 하는 책들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표지" 소피가 칠판에 또박또박 적어보았다. 하지만 막상 적어보니 참 평범해보였다...


힐데: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에 도달하는 걸까. 아니면 우연히 여기에 다들 도달한 걸까. 하하.

소피: 그러게요ㅋㅋㅋ




힐데는 이번엔 작가의 철학과 이 책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선우 훈 작가의 그림에 도트는 전체의 부분이라기보다 하나의 개별이다. 개별이 모이고 모여서 전체를 구성한다. 이 책 역시 시민 한 사람의 의견이 모이고 모여 종합된 의견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형식은 무엇일까, 이때 소피의 눈 앞에 떠오른 이미지는 '아리랑'이었다.


4823932-0-image-a-10_1538853086244.jpg 출처: 사진 속 참조


'아리랑'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연된 북한의 대표적인 집단예술이다. 수천 명이 참여하는 이 집단 체조예술은 집단 체조를 선보이는 운동장과 함께, 무대의 배경이 되는 관람석의 카드섹션 모두 일사분란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놀라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렇지만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집단예술에서 개인은 전체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개별들은 전체의 그림을 위해 움직이고 위치한다.


소피는 북한의 카드 섹션이 책의 메시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망설어지면서도, 개별의 도트가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명확한 예는 '카드 섹션'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전형적인 북한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일사분란한 집단예술은 그 '통일성' 때문에 개별 존재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하나만 튀어도 전체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다. 힐데가 생각했을때도 소피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표지의 가닥이 얼추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책 제목을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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