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감정기복

#14 쓰는 시간

by 힐데와소피

통영을 다녀오고 난 뒤 힐데와 소피는 본격적으로 2부 집필과 1부 크로스체킹에 들어갔다. 2부는 7가지의 키워드에 나뉘는 의견들을 실제 언론이나 책, 인터넷 등에서 찾은 다음 재정리했다. 1부의 크로스체킹은 힐데와 소피가 나눠 맡은 부분을 서로 확인해주는 작업이었다. 각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맥락이나 문장의 어색함 등을 살폈다. 1부를 쓰면서 이미 서로의 글을 많이 본 상태였지만, 그냥 보는 것과 펜을 들고 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원고를 다듬기 시작하면서 소피는 자기가 며칠 전에 썼던 글이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 문장들이 낯설어 보였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피는 비단 이번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내내 그랬던 것 같았다. 마치 '쓰는 나'와 '읽는 나'가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였다. 소피는 "그래! 바로 이걸 적어야지!" 하면서 직관적으로 생각나는 문장을 타타탁 쳐내려갔다. 문장을 완성한 후 다시 글을 읽어보니 접속어가 어색하다거나, 아니면 문장이 함유하고 있는 논리가 다소 억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땅히 대체할 만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서 빨간 색으로 표시를 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한 십여분이 지나서 소피는 빨간 색으로 색칠했던 문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앞의 문장에서부터 읽어보니, 소피는 이전과 달리 어색했던 접속어와 문장의 논리가 어딘가 말끔하게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흠. 나쁘지 않은데?"라며 소피는 표시했던 빨간색을 다시 검정색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며칠 뒤 소피는 자신의 문장 옆에 힐데가 표시해 논 메모를 발견했다.


조금 어색한 거 같은데 이 내용을 추가해보면 어떨까?


이번에 소피는 이 맥락에 대한 자신의 공부가 부족한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몰랐던 논리적인 함정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두려워졌다.



소피: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렵고. 자괴감만 커져 가네요.

힐데: 그래서 나는 말이 좋아.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의 표정과 반응을 바로 바로 알 수 있거든.



힐데의 대답은 소피에게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주장을 연상시켰다.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괜한 오해를 만드는 것을 염려했다. 소크라테스는 살아있는 말과 달리 글은 '죽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글은 쓰는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지만, 물질은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지혜는 '물질화된 말' 즉, 글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글이 작가에게서 떨어져 나온 물질에 불과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발상은 소피가 느낄 수 밖에 없는 불안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이 글이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읽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글을 쓰는 내내 소피의 머리 언저리에서 튀어나오는 감정이었다. '쓰는 나'와 '읽는 나'가 다른 만큼,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간극은 작가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클 수 있다는 막연한 상상이었다. 소피는 자신의 글이 앞뒤 맥락도 없이 잘려서 세상 어딘가에서 떠돌아다닐 것만 같은 예감에 종종 휩싸였다.



힐데가 <쓰는 나>에 집중한다면, 소피는 <읽는 나>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힐데가 가지는 그 근거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어쩌면 글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지에 근거했다. 힐데는 글을 결코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힐데에게 글은 철저히 도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힐데는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문자의 한계에 공감하면서, 그렇기에 글이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거나 또 어쩌면 그 일부일 거란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작가와 글은 철저히 다른 것이고, 글은 작가에게서 떨어져 나가버린 위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글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곧 자신의 이미지와 인간성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던 소피는 힐데와는 달리 글이 곧 자신의 일부라는 관념을 취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이 불안감을 잠재우고싶다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쓴 글을 분리해야 했다. 완성된 글에 대한 적절한 분리의 감정은 독자를 두려워하는 작가의 멘탈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미처 언급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다. 힐데처럼 멘탈을 다잡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매번 소피가 실패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단순한 받아쓰기가 아니라면 작가 자신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쓰는 나와 읽는 나로 분화된다. 그러므로 글을 적는 과정에서 작가가 겪는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누구도 쓰는 나와 동시에 존재하는 읽는 나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의 숙명이란 확신과 불안,
자신감과 자괴감이라는 무한루프를 감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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