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준비하기:
텀블벅, 디자인, 교열

#17 만드는 시간

by 힐데와소피

2019년 안에 첫 책을 내자는 결의는 기어이 해를 넘기고 말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다. 10월 말 즘에 요룬이 가세하면서, 힐데와 소피는 올해 안에는 책이 나오기는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원고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가다듬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장 수정은 해도 해도 줄지 않는 느낌이었다.


2020년. 해가 바뀌었다. 하지만 이젠 미련을 끊어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힐데와 소피 그리고 크나그 소령이 오랜만에 한 테이블에 앉았다. 올해의 방향성과 계획을 설정하기로 했다. 새롭게 준비할 책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했고, 가장 중요한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출간 일정을 논의했다. 3월 출간을 목표로 한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1월 안에는 원고를 마감하고, 내지 디자인 작업 시작한다. 2월에는 텀블벅 펀딩을 시작하고, 인쇄소와 컨택한다. 3월에는 인쇄가 들어가고 보도자료를 뿌린다. 등등.


텀블벅 펀딩을 중심으로 역할분담을 나누었다. 힐데는 텀블벅 펀딩에 필요한 원고를 준비하기로 했고 그 사이 소피는 내지 디자인과 펀딩에 필요한 이미지 제작을, 크나그 소령은 원고의 최종 교열을 맡았다.




힐데에게 이번은 두 번째 텀블벅 펀딩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북한의 장마당에서 즐겨 먹는 간식 중 하나인 '펑펑이떡'을 통일교육의 아이템으로 소개했다. 펑펑이떡은 가열 없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면서 북한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아이템이어서 실제 통일교육 시간에 자주 활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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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 준비했던 '펑펑이떡 패키지' 텀블벅 펀딩 이미지들.


펑펑이떡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종의 이벤트 성격으로 준비했던 것이었지만, 펀딩이 성공하자 이전에 근무하던 기관에서는 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펀딩을 직접 준비하고 진행했던 힐데는 이 아이템에 대한 자신감이 되려 사라졌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였다.


펀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이 펀딩의 목표와 효과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계획하지 못했다. 펀딩이 성공하자 사업화 이야기가 나왔지만,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얻고자 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아니, 근본적으로 이 펀딩의 성공이 조직에게 주는 의미와 조직이 가는 방향성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대한 과제 설정이 완전하지 않았다. 힐데는 모호함을 못 견뎌했다. 결국 펑펑이떡 프로젝트는 텀블벅을 끝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힐데는 이번 펀딩의 정확한 목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의 사업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것인지, 혹은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했다. 힐데에게 일을 잘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아는 것'이었다. 이번만큼은 힐데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지 명쾌해서 좋았다.




반면 소피에게 디자인은 여전히 흐릿한 영역이었다. 샘플북을 가지고 있었지만 텍스트는 영어로 되어있어 내지 디자인 부분은 전혀 도움을 얻지 못했다. 일단 소피가 스스로 정한 3가지 규칙에는 부합하는 책이어야 할 것이다. 표지 문제는 작가가 해결해주었으니 남은 부분은 글자가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과 적절한 여백을 결정하는 것이다. 소피는 평소 가지고 있었던 책들을 들춰보고, 한글 폰트가 크기와 자간, 행간을 따라 해 보았다.


한국의 많은 책들이 텍스트 덩어리가 중간에 위치한 레이아웃을 택한다. 이렇게 하면 텍스트가 안정적인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여백의 비중이 커질수록 책의 가로는 길어지게 된다. 그러면 책은 한 손에 잡기 힘들고, 모양새가 뚱뚱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소피는 과감히 사방의 여백을 줄여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날렵한 책을 만들고 싶었다. 소피는 인상 깊게 읽었던 그리드 디자인 책을 레퍼런스 삼아 이번 책에 외곽 여백을 줄이고 안쪽 여백을 늘리는 것을 택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인디자인에서 안내선 그리기 버튼을 누르고 페이지에 격자를 부여했다. 나쁘지 않았다.


1부해설페이지.png 소피가 작업했던 내지 이미지




크나그 소령은 어찌 보면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의 첫 공식 독자였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크나그 소령은 힐데와 소피가 책을 기획하고 쓰고, 고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제 원고를 읽는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읽어보니 힐데와 소피가 그렇게 색다를 것이다고 주장하던 형식은 그리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너무 자주 들었던 까닭일까? 아니 그보다는 그들이 의도한 바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감상이었다. 형식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했다.



힐데: 저희 책 어땠어요 언니?

소피: 혹시 책의 형식이 이해가 가던가요?

크나그 소령: 일단 글만 봤어. 학생들에게 좋을 거 같더라. 나이 있으신 분은 이런 책 안 보겠지. A인지, B인지 정하고 하는 게.

힐데: 역시 그렇겠죠. 그런데 책의 내용을 보면 독자를 중고등학생보다는 대학생 이상을 생각하고 쓴 거긴 한데...

소피: 보다 친절한 안내가 필요할 것 같네요... 하하

힐데: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같이 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할 것 같아. (번뜩)



힐데와 소피의 책의 내용은 북한학을 나름 10년 가까이 공부한 크나그 소령이 보았을 때도 나쁘지 않았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여러 입장을 담으려 한 힐데와 소피의 의도와 균형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크나그 소령은 저자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어가며 점검해갔다.



편집. 너란 녀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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