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만드는 시간
힐데와 소피는 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텀블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텀블벅은 초심자에게 좋은 곳이다. 가진 돈이 없어도 좋은 기획과 성실함만 있다면 후원자를 모을 수 있다. 그냥 온라인 서점에 올라가고, 오프라인 서점에 전시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힐데와 소피에겐 왜 이런 책을 내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힐데는 몇 달 전부터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를 소개를 위해 브렉시트(Brexit) 사례를 자주 언급했다. 후배와 이야기하던 중에 입 밖으로 나온 브렉시트가, 왜 이 책이 통일 문제에서 시민의 생각이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가장 잘 설득시켰기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할지 말지를 영국 의회는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2016년 8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브렉시트 찬성이 승인되었고,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정치인들만 결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문제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면? 그리고 남북통일 문제가 바로 그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영국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힐데와 소피는 텀블벅 펀딩을 준비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책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는 통일 문제를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열려있는 질문이며, 이 책은 시민 한 사람이 각자 만의 답을 찾게 도와주는 가이드북이고자 했다.
2020년 2월 4일,
드디어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의 펀딩 페이지가 열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책의 홍보, 판매가 시작됐다. 힐데와 소피, 크나그 소령은 지인들에게, SNS에 첫 펀딩 소식을 퍼 날랐다. 첫날 성과는 놀라웠다. 낮게 설정한 금액이었지만 목표금액 100만원을 몇 시간 만에 넘겼다. 소피가 속해있던 카톡방에서는 "축하드려요! 펀딩 성공하셨네요"라는 카톡이 올라왔다. 하지만 목표금액을 100만원으로 잡은 건 소피의 판단 미스였다.
소피는 펀딩을 준비하면서 최근에 올라온 펀딩의 목표금액을 살펴보았는데, 몇몇 아이템들은 펀딩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목표금액을 적게 잡은 것이 보였다. 300%, 400% 이상 목표액을 초과한 아이템은 마치 인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홍보가 주목적이라면 목표금액을 적게 잡고, 초과 수치를 더 높이는 게 방법이겠다 싶었다.
물론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만, 힐데와 소피의 펀딩에 초기에 참여했던 지인들에게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펀딩은 낯설다는 것이 문제였다. 힐데와 소피가 내건 목표금액이 순수한 필요금액이라 생각한 몇몇 지인들은 '100만원이면 책이 나오나' 혹은 '성공해서 축하한다'라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목표금액이 현실적이었다면 그들은 추가로 펀딩금액을 올리거나, 펀딩을 외부에 홍보하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피는 돈에서만큼 더 솔직해지자고 반성했다.
펀딩 시작 이후 반가운 연락도 있었다. 텀블벅에서 메인 홍보를 위한 이미지를 요청한 것이다. 소피는 텀블벅 메인에 게시되는 것은 텀블벅 매니저들이 결정하는 권한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힐데와 소피의 프로젝트를 눈여겨 봐준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책 목업 이미지 외에 별달리 제공한 것이 없는데도 텀블벅이 만들어 준 이미지는 생각보다 귀엽게 잘 나왔다.
통일/북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몇몇 팀과 개인에게도 연락을 받았다. 확실히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안고 있던 사람들이었기에, 힐데와 소피의 기획의도를 더욱 잘 이해해주었다. '이러한 생각을 왜 못해봤을까요!' '응원합니다'와 같은 말들은 실제로 반갑고 힘이 되는 말들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 확신과 불안 사이를 번뇌하던 힐데와 소피에게, 이런 말들은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목이 말랐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의 존재를,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말로 시작해야 사람들이 우리를 더 알아봐 줄까, 깜깜하기만 했다. 힐데는 추천사를 요청하는 메일을 돌렸고, 소피는 페이스북에서 SNS 광고를 시작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홍보의 효과는 미미했다. 조만간 한반도는 코로나의 시작과 4.15 국회의원 선거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갈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떤 것보다 힐데와 소피의 콘텐츠가 가진 함정이 있었다. 그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통일을 하자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지 말자는 말. 생각해보자 하였으나 결정은 내려주지 않는 책. 오늘날 우리가 콘텐츠를 발견하는 알고리즘은 '확증편향' 형성에 유리하게끔 짜여져있다.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아지 영상이 더 자주 피드에 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싫은 사람에게는 그를 욕하는 포스트가 더 많이 노출된다.
소피는 이런 상황에 힐데와 소피가 위치한 곳이 '계곡'이라 비유했다. 사람들에 눈에 띄는 정상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계곡'. 힐데는 그 표현을 듣고 무릎을 치며 깔깔댔다. 네 말이 맞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될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힐데와 소피는 정확히 알았다. 둘은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계곡은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었다.
그럼에도 하루에 한 명씩, 두 명씩 후원자가 늘어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