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만드는 시간
펀딩을 시작하자 이제는 원고 내용 발전이 아닌 원고의 완성이 목표여야 했다. 그러나 발전과 완성은 질적으로 다른 단계다. 힐데와 소피는 완성을 위한 몇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1.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사회과학 게임북을 표방하는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이 책의 6가지 방안 중 독자 각자의 선택을 공유할 수 있는 웹을 구현하면 어떨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구현을 도와줄 팀을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 청년청에 같이 입주하고 있던 S스튜디오 측에서 기꺼이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구글 폼으로 하려 했던 설문조사는 이렇게 버젓한 웹페이지를 갖추게 되었다.
이 작업은 누구보다도 소피에게 의미가 깊었다. 이 웹페이지는 힐데와 소피가 만들고자 했던 '형식의 다름 '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디지털 시대의 책 읽기는 더 이상 책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책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게끔 만든다. 책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만들어낸다 등. 소피는 무궁한 상상력을 자극하게끔 만드는 이 QR코드가 맘에 들었다.
2. 워크시트를 만들었다. 크나그 소령의 피드백대로 책을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힐데는 독자가 자신의 입장을 체크하고 단계별로 파악할 별도의 종이인 '워크시트(Worksheet)'를 제안했다. 워크시트를 추가하기로 하면서 책의 전체적 구성을 설명하기 위한 설명문을 더 보강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A, B 선택지에 따라서 페이지를 단순 이동하는 설명이 전부였다면, 전체 책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책을 읽으면서 참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적어두었다. 처음 시도되는 책이니만큼 모호함을 최대한 줄이고 힐데와 소피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설명했다.
3. 목차를 만들었다. 2번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건물에 출판사를 하던 선배 K편집자께서 원고를 봐주기로 해놓고 바빠서 여즉 오지 못했다면서 힐데와 소피의 방에 들렀다. 정말 한두 시간 빠르게 훑었는데 K편집자의 지적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첫 번째 페이지부터 '한반도미래위원회'가 '한반도미래의원회'로 되어있었고, ‘국제앰네스티’가 ‘국제엠네스티’로 되어있는 고유명사 오타도 있었다. 소피는 이제껏 봤는데도 이런 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거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덧붙여 K편집자는 목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의 아나토미(Anatomy), 즉 뼈대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목차가 없으면 어색하단 것이었다. 힐데와 소피는 K편집자의 의견을 듣고 난 뒤 회의를 가졌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목차를 빼낸 이유를 생각했다. 게임북에는 원래 목차가 없다. 힐데와 소피는 게임북을 상상하며 이 책을 만들었고 선택에 따라서 페이지를 읽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K편집자의 지적대로 목차가 없어서 당황하는 독자가 있다면 어떡하지? 게임북이라 하기에는 텍스트가 너무 많아서 그 의도가 잘 전달이 되지 않으면 어떡할까? 힐데와 소피는 없어서 아쉬울 바에야 있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목차를 만들려고 보니 이 책의 1부와 2부를 부르는 별다른 명칭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부와 2부는 그저 독자가 6가지 방안 중 하나를 최종 선택하기 위한 단계에 불과했다. 힐데와 소피는 이제 이 전체의 과정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야 했다. 한 두시간을 다시 이 설명을 위한 정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1부와 2부가 가진 의미를 따지면서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았고, 대구가 맞을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1부, 6가지 미래와 당신의 선택
2부, 7가지 질문과 당신의 근거
그리고 둘은 다시 처음부터 원고를 읽었다. 힐데와 소피 모두 말 그대로 머리를 싸매고 원고를 들여다봤다. 이미 정신적으론 탈진 상태였다. 화룡점정은 용의 눈을 그리는 마지막 순간을 뜻한다. 용의 눈을 잘 못 그리면 그간 애써 그려 온 그림을 한 순간에 망하게 만들 수 있고, 잘 그리면 용은 실제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다. 이를테면 최종 마감까지 요 며칠은 용의 눈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림이 살고 죽느냐는 여기에 달렸다. 힐데와 소피는 힘겹게 마지막 용의 눈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2020년 3월 5일,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의 펀딩이 마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