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 가는 길

#22 마무리하는 시간

by 힐데와소피

소피는 오랜만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했던 탈고 이후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남은 브런치 연재를 끝내려고 마음을 먹었다. '힐데와소피의 뉴퍼블리싱'은 힐데와 소피가 왜 책을 만들려고 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만들었는지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책은 이미 나왔지만 작년부터 시작한 브런지 연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피는 작년 9월부터의 일들이 벌써 가물가물했다. 그때는 매일이 비슷했지만 또 매일이 달랐다. 언어의 미묘함이란 정말 한 '끗' 차이라서, 매일 조금씩 글에 손을 대도 2~3일이 지나면 전혀 다른 느낌이 원고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소피는 그 시간에 어떻게 원고가 변하였는지 성실하게 기록하지 못해 아쉬웠다.



소피: 글이 너무 들쭉 날쭉한 것 같죠.

힐데: 이 정도만 충분히 잘한 거야. 누구도 이렇게까지는 안 해.

소피: 그래도. 다시 읽어보니 제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요....

힐데: 또 저런다. 어휴.



힐데는 어찌 됐든 끝을 보아서 좋았다. 이번 책 작업은 둘이 해서 좋았지만, 그래서 힘들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글을 봐주고, 고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 경험으로 힐데는 자신이 글보다는 말이 좋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심지어 책의 후기에도 남겼다. "글을 쓴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역시 저는 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니, 좋습니다."


이 점에서 힐데는 소피를 높이 평가했다. 소피는 어찌 됐든 자신에게 먼저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 사람이었다. 책을 만들어보자 했고 브런치에 글을 먼저 써보자 했다. 물론 소피는 책을 만들자는 처음의 패기와는 달리 주기적으로 쓰는 성실함은 부족했지만, 글마다의 메시지가 있어서 좋았다. 힐데는 소피가 조금 더 성실하고 용기가 있다면 좋은 글쟁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면 힐데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이 문장 자체보다는 '구조화'에 천착하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란 책의 골격은 힐데가 통일 문제를 사고한 방식을 다듬은 것이었다. 힐데는 앞으로 구조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결국에는 글로 표현된다 할지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힐데는 이제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감이 잡혔다.






지난 일 년 반 사이에 힐데와 소피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아직 외부에서 보기에는 성과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도,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 감각이 생겼다. 그렇게 매사 분명하던 힐데도, 그렇게 매사 큰 그림을 그리던 소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입 버릇처럼 처음에 말하던 "출판사가 돈은 안 되더라도 책은 남을 거야"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출판사는 힐데와 소피가 세상을 공부하는 연구소이자, 일을 계획하고 만들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됐다. 책 역시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지적 성장을 돕는 엄청난 과정임을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 책만 남은 아니라, 책도 남았다.



그리고 힐데와 소피는 이 일을 더 하고 싶어졌다.





<힐데와소피 뉴퍼블리싱> 연재를 마칩니다. 출판사 힐데와 소피의 새로운 책 이야기는 <힐데의 편집일기>에서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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