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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Data versus Democracy> 참고도서 읽기 (2)

by 힐데와소피

<Data versus Democracy(가제: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를 힐데와소피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생각하게 된 건, 첫 번째 책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가 남긴 질문 때문이었다.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는 한반도의 여섯 가지 미래(흡수통일, 평화체제 등 남북관계와 관련된 미래)를 두고 국민투표를 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것처럼, 한반도의 통일 문제 역시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방법은 아니다. 국민투표는 현재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혹은 해결하기 싫은) 사안을 가장 거친 방식으로 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는 국민 대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투표한 사람의 절반이 조금 넘는 사람의 찬성표로 문제의 종결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 사례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불거졌고, 그와 동시에 대두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작된 여론'이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시민이다. 시민이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지만 일정한 임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시민의 자리로 돌아온다.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 그런데 주권을 쥔 시민이 그만의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누군가의 프로파간다에 설득되었다면? 브렉시트를 찬성을 독려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선전이 실행됐다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애초에 "주체적 결정"은 불가능하고 이상화된 것이라 비판할지 모르지만, "주체적 결정"이 불가능을 선언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시대의 징후인 것은 분명하다. 합리적인 인간의 주체성을 의심하고, 모든 질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대. 요즘 이를 '탈진실의 시대'이라 부른다.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든,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든 간에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두가 맞닥뜨리는 문제는 바로 이 '탈진실'이다. 나는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를 읽으면서 왜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간략하고 친절한 설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개념, 특히 '주의력 경제'와 '온라인 프로파간다'는 정보사회의 미디어 지형에 대한 관심도 촉발시켰다. 힐데가 여러 책을 둘러보는 사이, 나 역시도 이와 연관된 몇 가지 책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책은 '탈진실'을 제목으로 내건 <포스트트루스>다. 이 책이 정의하는 '탈진실' 즉 Post-truth의 정의는 이렇다.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진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


사람들이 객관적인 진실을 버젓이 보고도 왜 외면하는가? 저자인 리 매킨타이어는 그것이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진실보다 거짓이 이득이 되는 선동가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담배의 유해함을 최대한 가려보려는 담배회사, 지구온난화는 오지 않는다는 설명하려는 석유회사,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에 참석한 인원이 오바마 때보다 더 많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현대 미디어 환경은 이런 이들이 공교롭게도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더욱 효과적으로 퍼뜨릴 수 있도록 진화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플랫폼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 사람들의 의견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선동가들이 진실을 무시하고 거짓 정보를 확산시키는 효과에 대해서는 <가짜뉴스의 시대>가, 그리고 소셜플랫폼은 왜 사람들의 의식을 조정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빼앗긴 세계>가 일정 부분 설명하고 있다.



책 <가짜뉴스의 시대>의 저자인 케일린 오코너와 제임스 웨더널 부부는 행동과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앞서 포스트트루스에서도 언급된 이익단체들이 어떻게 과학적 진실을 프로파간다로 방해하는지를 소통 연결망 모형을 통해 보여준다. 새로 발견된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동료 과학자들에게 퍼져나가는가를, 과학자들이 연결된 형태를 모형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과학자들 간의 신뢰관계, 연결 정도에 따라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신뢰도가 낮고 연결도가 낮은 과학자는 가장 늦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선동가'가 추가되면 모형의 양상은 달라진다. 선동가는 새로운 정보 따위는 중요치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하여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선동가가 속한 모형의 사람들은 선동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해 동질화되고, 거기다 서로의 '동조 효과'에 의해 더욱 기존 입장을 강화하게 된다.


사람들 간의 연결이 늘어날수록, 정보의 확산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정보의 발견도 더욱 자주 일어나야 하지만, 사람들이 되려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빠져 새로운 정보를 거부한다는 사실이 꽤 역설적이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는 이러한 필터 버블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을 집중 겨냥한다. 책의 논조는 모든 것, 심지어 인간의 지성마저도 알고리즘 하에 자동화를 하려는 이들 창업자들과 테크 기업들의 이상향에 반대한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로 대표되는 테크 기업들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로 개인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과 개인의 자유는 인공지능이 발달로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게 해 주고, 개인마다 필요한 부분을 알아서 계산해주며, 물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제작되어야 하는지를 최적화하여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회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이 책의 저자인 프랭클린 포어는 지적한다. 컴퓨터, 인공지능의 발달로 정보의 연산과 처리는 너무나 빨라졌지만, 그 알고리즘을 만들고 소유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의 테크기업에 근무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수 억 명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더구나 거대 테크기업은 보고, 듣고, 사고, 거의 모든 경제적 활동을 플랫폼 안에서 해결하도록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민주주의에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을 내놓는 책도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책은 <쿠테타, 대재앙, 정보권력>이다. 이 책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끝이 나는가'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서 3가지 이유는 전통적인 방식의 쿠테타, 핵전쟁과 그에 버금가는 대재앙, 그리고 기계화되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기계화된다는 의미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들어온다는 뜻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런시먼은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해서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대신 그러한 인공지능을 나쁘게 사용하고 싶어 하는 선동가와 정치인들에게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기술들은 너무나 편리해서 사람들이 의존하게 만든다. 편해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며, 기술과 산업의 진화는 그런 쪽으로 계속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기술이 가져 온 또다른 변화도 있다. 이전에는 정치지형에서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직접 대화하거나, 혹은 인터넷에서의 직접 행동을 선택한다. 기존 민주주의 대의제도가 이제 거추장스럽고 진실되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책 <나와 타자들>의 이졸데 카림 역시 이런 현상을 지적했다. 제3세대 개인주의라고 하는 경향은 디지털 기술과 만나 더욱 강화되었다.





데이터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이전과는 폭발적으로 정보의 양을 증가시켰다. 매년 스마트폰 사용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사물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생산하는 데이터의 양도 폭증할 것이다. 이 같은 빅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인공지능도 매일매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데이터 처리의 효율을 위해 도입된 인공지능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인간의 인지와 정보의 유통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소개한 4권의 저자, 그리고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저자 크리스 샤퍼는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인간사회, 그리고 민주주의의 체제의 회복을 위해 데이터 기술에 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데이터 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이 기술이 지금 우리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명확히 이해해야 함을 역설한다.


힐데와소피가 곧 출간할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필터 버블을 만들고, 온라인 프로파간다를 양산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세계 각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과 위험을 미치는지 살핀다. 앞의 언급한 책들과는 보다 쉽고, 명확하게 문제의 원리와 사례를 짚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디지털 기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는 개인적으로든, 앞으로 다른 책으로든 더 들여다 보고 싶은 주제가 되었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를 시작으로,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얼른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러니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곧 나올테니까요!




글.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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