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 versus Democracy> 참고도서 찾아 읽기
책을 만들기 위해 다른 책을 찾아 읽다 보니, 결국 책을 만들려는 사람이 책을 읽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잘 팔리는 책도 읽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의미 있는 책을 발굴해서 읽는다. 그러다 보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 조금 더 다양한 책을 읽게 되고, 그 사람이 만든 책은 또 책을 만들려는 사람이 읽게 된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사람들 간의 내수경제는 활발해진다. 결국 이것이 험난한 출판 시장을 지탱하는 힘이었던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 사라지면 책을 읽는 사람도 사라질 것 같다. 결국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마지막 독자, 출판시장의 보루인지도 모른다.
서론이 길었다. <Data versus Democracy>를 발견한 시점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참고할 만한 책을 찾아 나섰다. 참고도서를 읽는 목적은 세 가지. 1) 공부 2) 시장조사 3) 용어 번역 확인. 공부야 기본이고 번역은 이후에도 얘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오늘은 시장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보통 시장조사를 한다고 하면 같은 분야의 다른 책들의 강점은 무엇인지, 다른 책들이 소개하지 못한 부분 중 우리 책은 어떤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지, 우리 책은 어떤 면에서 차별성이 있는지, 편집 및 구성 시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다른 책들은 어떤 지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는지 등 여러 가지를 보기 위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현재 비슷한 분야에서 어떤 지점의 지식과 설명이 공백 상태에 있고, 우리 책이 어느 지점을 채울 수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어쨌든 힐데와소피가 책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만드는 것에 있으니까.
막상 참고도서를 찾기 시작하면 그 분야와 주제가 꽤나 넓어서 끝이 없다. 그래서 책의 특성에 따라 분류를 설정하고 참고도서를 찾기 시작해야 좀 덜 헤맨다. <Data versus Democracy>의 경우 1부와 2부가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 특징이다. 1부에서 기술의 속성과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왜 우리가 데이터 조작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면 2부에서는 퍼거슨 시위와 블랙 라이브즈 매터, 게이머게이트,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미얀마와 남미에서 벌어진 여러 정치적 사건을, 데이터가 민주주의를 조작한 사례로 다룬다. 그러다 보니 1부와 2부의 참고도서의 종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1부와 관련된 책은 많지는 않았다. 기술적인 알고리즘을 설명하거나 인지심리학적인 개념을 설명하다 보니 보통 전문서적인 경우가 많아서 대중들이 접하거나, 우리가 읽기에도 일종의 장벽이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저자가 참고한 책 중 한 권이 번역되었다.
매슈 크로퍼드 저, 노승영 역, <당신의 머리 밖 세상: 몰입을 방해하는 시대에 대한 보고서>, 문학동네, 2019.
힐데와소피가 좋아하는 번역가이기도 한 노승영 선생님이 번역하셔서 더 신뢰가 갔다. 이 책의 매력은 여러 장르로 읽힌다는 점이었다. 몰입을 방해하는 시대에 어떻게 내 주의력과 몰입을 찾아올 것인지 자기 계발서의 느낌으로 읽을 수도 있고, 주의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장인이 하는 일의 가치를 소개하는 인문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왜 주의력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인지과학 측면의 책이기도 하며, 주의력 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해주는 일종의 경제 서적 느낌도 든다. 여러 가지로 읽히지만 메시지는 한결같다. 우리가 주의력을 상업화했으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책은 <Data vesrus Democracy>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글도 썼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살펴보시라.
2부의 내용을 담은 책 중 대표적으로 살펴본 책은 다음과 같다.
캐시 오닐 저, 김정혜 역, <대량살상 수학무기: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흐름출판, 2017.
브리태니 카이저 저, 고영태 역, <타겟티드: 당신이 누른 '좋아요'는 어떻게 당신을 조종하는가>, 한빛비즈, 2020.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 2019.
사피아 우모자 노블 저, 노윤기 역,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한스미디어, 2019
모두 재밌는 책이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한 권 한 권 살펴보자. <대량살상 수학무기>는 수학과 데이터, IT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알고리즘 모형이 정말 공정한지에 의문을 던진다. 동시에 알고리즘 모형이 어떻게 인간의 편견을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례도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례부터 정치적인 사례까지 범위가 넓다. 10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빅데이터'로 우리 책의 사례와도 맞닿아 있다.
<타겟티드>는 위의 책에서도 등장하는 사례인 2016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의 이사였던 브리태니 카이저가 쓴 책이다. 어떻게 수집한 데이터를 공작과 여론 조작에 활용하는지 직접 경험한 바를 폭로한 책이다. 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어떤 수준의 공작까지 할 수 있는지 상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한 가지 사례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로 <거대한 해킹(The Great Hack)>이 있다. 2019년에 나온 다큐멘터리로 Jehane Noujalm과 Karim Amer가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어떻게 다양한 국가의 정치 공작에 참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영국의 브렉시트 캠페인과 2016년 미국 대선에 참여했는지를 보여준다.(오늘은 참고도서만 이야기하지만, 책을 만들 때 참고하는 자료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그리고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는 플랫폼을 통한 알고리즘이 어떻게 편향적인 사례를 확산하는지, 검색 결과는 정말 중립적인지 등. 차별 증폭기가 되어버린 검색 플랫폼의 문제를 다룬다. 검색 플랫폼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검색 엔진의 검색 결과도 알고리즘에 많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과이거나, 광고비를 지출한 글인 경우가 많다. 검색 결과는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데이터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심리와 사고를 조작하는 책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해킹(hacking)'의 개념이 좀 더 빨리 확장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한국에서 해킹은 지하에서 활동하는 '해커'가 몰래 시스템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가거나 바이러스를 심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더 이상 해킹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공개하는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여 눈에 보이는 경로를 통해 등장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인지와 기술의 발달, 그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작동하면서 발생하고 있으며, 우리 책은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 출간된 책을 보면서 우리 책의 주제가 SNS와 검색 플랫폼의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잘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설명해주는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이런 내용을 다룬 책들 치고는 짧고 간결하다는 점, 기술적 요인+인지적 요인+사례를 풍성히 다루는 좋은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 사례 중에 미국 외의 사례가 있다는 점, 저자가 위트(!)가 있다는 점, 개인의 영역과 정치경제적 영역을 골고루 잘 아우른다는 점 등등이 그렇다. 그렇다. 나는 이미 우리 책의 1호팬... 장점이 더 크게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내 옆에는 판단이 날카로운 요룬과 완성도에 집착하는 소피가 있으니!!!!
이 외에도 다양한 참고도서와 자료를 접할 때마다 소피와 요룬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과정은 절대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참고도서를 살펴봤으니 이제 번역에 들어갈까? 절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지지 않는다. 번역을 마친 지금도 갑자기 인터넷에서 책을 발견하면 카톡으로 주고받기도 하고, 서점에서 책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서 전송하기도 한다. 찾을 만큼 찾아본 것 같은데 왜 매번 새로운 책이 눈에 띄는지 알 수 없는 일. 즉, 참고도서와 자료를 찾는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