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연주에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첼리스트 홍진호의 음악적 하루 <작은 사랑의 멜로디: 노영심>

by 쓰는 사람 지민

2024년 9월 19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첼리스트 홍진호의 음악적 하루> '작은 사랑의 멜로디: 노영심' 공연을 기록합니다.




공연은 홍진호 님의 자작곡 「오래된 다리」로 문을 열었다. 그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유학하던 시절, 오랫동안 집을 구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던 날들을 이야기했다. 그때 이탈리아 출신 신부님이 수도원에 초대했고 성가를 부르며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고 한다. 그 경험이 곡의 앞뒤를 감싸는 멜로디가 되었다고 했다. 첼로의 낮고 부드러운 울림이 새벽 강물처럼 차분히 흘러 객석을 감싸고 피아노 선율이 그 위에 은빛 물비늘을 흩뿌리듯 섬세하게 겹쳐졌다. 추석 연휴 내내 몸과 마음에 쌓였던 긴장과 어두움이 그 순간 물결을 타듯 객석 어딘가로 굴러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뷔르츠부르크의 알테 마인교, 오래된 다리 위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다리란 결국 건너는 존재를 위한 길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리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파든 음악 속에서 나 또한 어느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목가적이고 종교적인 울림은 영혼에 쉼을 남겼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음악이 되었다.



두 번째 곡은 노영심 님의 「시소 타기」였다. 실제 시소에 앉아 있을 때 떠올랐다는 이 곡은 상대가 올라가면 내가 내려가고 내가 올라가면 상대가 내려가는 단순한 움직임을 8도의 음정 속에 새겨 넣은 음악이라고 했다.

“네가 달을 따오려면 내가 어둠이 되어줄게.”

짧지만 시적인 그 말은 관계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균형은 단순한 주고받음이 아니라 서로의 어둠을 기꺼이 맡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다는 것. 음악은 그렇게 인간관계의 심층을 건드린다.


이어진 곡은 드라마 <연애시대>의 OST 「보내지 못한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피아노의 맑은 선율 위에 첼로가 겹쳐지자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까지 울림이 스며들었다.

노영심 님은 말씀하셨다.

“좋은 드라마에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자연스레 2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보며 대사를 외우고 OST를 흥얼거리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음악은 응축시켜 둔 내 감정과 삶을 다시 끌어내어 그 시절의 나와 마주 앉게 했다. 멜로디에 마음을 묻어 두었기에 세월이 흘러도 음악이 울릴 때마다 보내지 못한 말들이 되살아나는 것이리라. 음악은 그렇게 잊히지 않은 감정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버지의 마음」은 내 마음 안쪽을 흔들었다. 라디오를 진행하던 아버지가 사연을 보낸 딸에게 전하던 말. 홍진호 님은 그 대사의 ‘은호야’를 ‘여러분’으로 바꾸어 다시 들려주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해진다.”

그 말이 깊숙이 내 가슴을 툭, 쳤다. 아버지는 자식이 슬픔 속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지지만 결국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 조심스러운 바람이 음악에 실려 객석을 감돌았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랐고 눈물이 번졌다.


이후 이어진 곡은 「휴식을 위한 송가 Hymn Forest」였다. 노영심 님이 작곡하고 홍진호 님이 연주한 곡이다. ‘일이 휴식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음악은 이름처럼 영혼에 쉼을 주는 곡이었다. 나에게 음악은 언제나 향유의 대상이라 악기를 배우거나 이론을 깊이 공부하지 않으려 한다. 음악은 나에게 언제나 ‘일’이 아니라 ‘쉼’이다. 하지만 연주가들에게 음악이란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그들에게 음악이 쉼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이어진 자작곡 「별을 보게 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는 그 이름처럼 웃음을 머금게 했다. 별 하나, 둘, 셋을 헤아리듯 멜로디가 흘러가고, 작은 밤하늘이 어느새 은하수가 흐르는 우주로 확장된다. 나는 그 음악 속에서 경이로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내 ‘일’의 한 장면에도 이 곡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순수하고 예쁜 음악이었다.



홍진호 님은 「꿈에 본 겨울」을 노래로 불렀다. 평소 첼로로만 연주하던 그가 목소리로 선율을 전하는 순간, 무대가 환히 비추어졌다.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해서 웃음이 났지만, 곡이 끝나갈 무렵에는 눈물이 났다. 창을 열자 햇살과 바람, 풀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순간 같았다.

마지막 곡은 「고마워」였다. 드라마 <연애시대> 속에서도 눈물로 건네던 그 말. 세월이 흘러 다시 들으니 슬픔보다는 감사로 남았다. 너무 늦어 잊고 있었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던 말. 고마워. 그 단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삶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느낌표 같았다.


공연 말미, 홍진호 님은 말했다.


“행복해야겠다. 행복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예전에는 꼭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 말은 단순한 공연의 마무리 멘트가 아니라 연주 전체를 관통하는 결론이었다. 내 마음에도 질문 하나를 남겼다.


행복은 질문이다. 나는 그동안 행복해지기보다는 불행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행복을 상황의 반응으로만 여기며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행복은 질문이며 동시에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해?”


나는 그 물음을 정면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음악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내 삶을 감사로 돌려놓는 힘이 된다. ‘고마워’라는 짧은 말속에 슬픔이 녹아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음악이 예배가 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이다.


무엇보다 오래 남은 장면은 무대 위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홍진호 님 곁에서 함께 연주하던 노영심 님. 좋은 어른을 곁에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기를. 누군가의 마음 위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기를.

그날의 공연은 책 한 권을 읽은 시간 같았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오히려 그때부터 진짜 사색이 시작되듯 나는 지금도 그날의 질문과 여운 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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