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다그쳤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시골에서 전학 온 학생이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이야기가 담임을 거쳐 국어 선생님께 전해졌다. 국어 선생님은 교지를 통해 학교 문화를 새롭게 일으켜 보려는 계획을 품고 이에 동참할 학생들을 찾고 계시던 참이었다. 나는 서울시 학생 기자로 활동하며 사설 매거진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을 정도로 문자 매체를 좋아했던 바 선생님께서 내민 손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교지편집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숙제나 개인 공부보다 우선해야 할 과제는 ‘글쓰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매일 문장을 조각내듯 해체하고, 문단을 나누어 새로 짜고, 거친 문장을 곱게 다듬도록 끝없이 숙제를 내주셨다. 수정 작업은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졌고 첨삭은 엄격했다.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끝내 눈물을 보였던 어느 날 저녁 선생님께서는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상황을 전하셨다.
“시키면 하는 아이라, 조금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그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누가 이렇게까지 지도해주시겠냐’며 기꺼이 배우라고 다독여주셨다. ‘시나 소설은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지만 설명문이나 논설문, 수필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씀에 나는 꼭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잘 써야 할 어떤 이유나 당위는 없었다.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첨삭과 수정 과정에서 글을 다루는 일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다루는 방법,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사가 된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기이할 만큼 특별했다. ‘학교 붕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며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메말라가던 시절, 동아리 담당 교사가 학생 하나를 붙들어 매일 글쓰기를 지도한다는 일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나는 삼십 대 중반의 젊은 교사가 쏟아낸 열정을 고스란히 받아낸 것이다. 그 과제를 감당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해야 한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끝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믿음이 내 안에서 책임감 또는 동력으로 자라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학교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대조된다. 만약 동아리 담당 교사가 학생에게 그런 과제를 맡겼다면 “왜 우리 아이에게 그런 일을 시키느냐, 대학 입시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라는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실제로 입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작업이 아니라 학교 신문에 투고할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때 길러진 결은 지금 내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다. 직장에서 쓰는 글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단어들의 무게를 구분하려 애쓰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비슷한 단어들을 함부로 섞지 않고 명확히 구분하려는 집요함, 문장을 이어갈 때의 간결함, 문단을 하나의 주제로 묶으려는 감각, 그리고 결론에서 흩어진 생각을 다시 품으려는 사고의 습속 모두 그 시절의 훈련으로 길러졌다. 무엇보다 ‘일단 써보라’ 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망설이지 않고 글쓰기를 시작하곤 한다.
지난 겨울, 나는 교장 선생님이 되신 그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교과별 AI 활용 교수법 강의를 준비하며 요목을 따라 빈칸을 채우게 한 교사용 연수 자료를 만들고 계셨다. 여전히 손수 문장을 고쳐가며 누군가의 배움을 위해 시간을 기울이고 계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여전하시구나.”
세월은 흘렀지만 문장을 붙잡는 그분의 손끝은 여전히 날카롭고 따뜻했다.
화려한 성과보다 소박한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에 더 깊이 새겨진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날카롭고 따뜻한 그 온기가 등불처럼 내 안에 남아있음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