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되찾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
분명 초겨울인데 봄 같았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었음에도 어느 틈새엔가 봄의 단내가 스며 있었다.
해풍에 섞인 목서의 향은 파도의 소금기와 뒤엉켜 마치 바다가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끝은 초겨울에 서 있었지만 가슴은 완연한 봄 한가운데로 돌아가는 듯했다. 찬 공기가 살결을 스치는 와중에도 오래전에 피어났던 감정들이 향기로 다시 깨어났다.
바다는 말없이 빛을 터뜨리고 있었다.
태양의 열을 받은 대양이 끓어 넘쳐 물비늘을 뿜어내는 듯, 마치 바다가 자기 안의 치솟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몸을 뒤틀며 수천 개의 은빛 파편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윤슬이 찬란히 반짝이는 아름다움이겠지만 그날 내가 본 윤슬은 ‘끓어오르는 감정’ 그 자체였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빛을 내게 튀겨 보내는 것만 같았다. 가슴 깊은 곳을 아리게 찌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왜 이제 왔을까.”
해운대의 바다는 참으로 능숙한 존재다.
태양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그 열을 다루는 방식도, 나를 위로하는 방식도 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날은 유난히 내 마음의 온도를 눈치채고 그에 맞는 빛의 농도를 골라 건네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살던 땅의 냄새와 사투리의 울림, 그리고 이 거대한 빛의 숨결은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받을 수 없는 위로였다.
고향의 단내 나는 바람과 윤슬이 내가 눌러두었던 모든 감정들을 한꺼번에 열어젖혔다. 바람이 내 눈을 씻겨주자 윤슬은 오래된 상처들을 투명하게 비춰주었다. 그리고 사투리는 잊고 있던 내 정체성을 조용히 되돌려주었다. 더 이상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몸 깊숙이 전달되었기 때문이겠지.
고등학교 1학년, 서울로 전학 가던 날 모두들 “사투리가 심한 앤데 우짜긋노”라며 나를 걱정하던 목소리가 문득 바람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래서 사투리가 전혀 티 나지 않는다고, 서울 토박이 같다는 말을 나는 오랫동안 칭찬이라고 믿었다. 그 말은 내가 이 도시에 너무나 정교하게 적응해 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억양을 평평하게 다듬고 표정을 조절하고 고향의 목소리를 조금씩 지워냈다. 서울의 감각에 맞춰 늘 나의 온도를 조절하고 말과 표정, 목소리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살아왔다. 이 모든 긴장은 서울이 나쁜 도시라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익혀버린 생존의 리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바다 앞에서 ‘객관화’되었다.
사투리를 잃은 건 정체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티느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투리는 어린 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던 호흡이자 친구들과 장난치며 튀어나오던 억양이다, 단순한 말투가 아니라 처음으로 익혔던 내 삶의 리듬으로 버릴 수도, 버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내 마음을 깨우기 위해 윤슬이 아프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은 가만히 내 등을 밀며 “이제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이 잊혀진 자리에서 조용히 다시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자리-.
겨울 바다의 은빛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뜨겁게 반사되어 묵묵히 속삭였다.
“너 여기 왔구나, 기다렸어”
잘게 부순 햇빛을 온전히 나에게 뿌려주며 바다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내 감각과 숨결이 해운대의 빛과 바람을 맞으며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