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잃어버린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로 전학 가던 날 선생님들께서는 예상 밖의 이유로 나를 걱정하셨다.
“사투리가 심한 안데 우짜긋노”
(=사투리가 심한 앤데 어쩜 좋니)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에는 낯선 세계로 건너가는 제자를 향한 다정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투리를 지우는 일이 곧 목소리를 바꾸는 것이고, 내 정체성마저 새로 짓는 일이 될 줄은.
‘서울 토박이인 줄 알았다’, ‘깍쟁이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생김새 때문이겠거니 하다가, 이젠 그 말을 반전의 요소로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울깍쟁이’ 임을 알게 되었다. 속내를 감추고 계산에 능하며 자기 경계를 좀처럼 풀지 않는 그들과 함께 살아오며 나 역시 그들의 공기 속에서 긴장의 법칙을 배워버렸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이후, 내 내면의 기본값은 언제나 ‘긴장’이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에 매달리느라 그 긴장을 자각하지 못했고, 대학 때는 다정하고 좋은 친구들 덕분에 잠시 잊고 지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턴 이 도시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음 위에 서서 동동거리며 낯선 스텝으로 춤이라도 춰야 살 수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
직업과 직위가 관계의 윤리보다 앞서는 곳. 그곳에서는 인간적인 의리나 상호 책임이 쉽게 닳고 마모되었다.
서울에 대한 동경으로 그동안 이 도시의 물성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약해서 그렇다고, 조금만 더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은 묘하게 긴장되는 곳이었다. 집값과 물가, 생활 수준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구역이 나누어진다. 그 선을 건널 때마다 공기의 질감과 온도는 달라지고 표정마저 미세하게 바뀐다.
이제는 이방인 같은 낯섦은 없지만 늘 팽팽하게 당겨진 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그게 서울의 리듬이고,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면서도 불편해하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부산에 내려간다.
눅눅해진 심장과 뇌를 바위 위에 꺼내놓고 인공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땡볕에 뽀송하게 말린다. 그리고 전통 시장을 돌며 ‘모국어로서의 사투리’를 들으며 내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의식 아닌 의식을 치른다. 그렇게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속에서 서울의 언어로 덮여 있던 나를 하나씩 벗겨낸다.
첼리스트 홍진호의 자작곡 〈Sentimental Seoul〉을 들었다. 처음에는 곡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낯설었지만, 몇번 들으니 오래 전의 어둠과 replay 하고 싶지 않은 적막이 되살아났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시절, 캄캄한 밤거리를 혼자 걷던 기억이었다. 주위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내 발아래의 어둠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도심을 멀리 내려다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둠에 묻혀서 내 존재는 보이지 않고 저 멀리 화려한 불빛만 묘연히 보이는구나.’
화려한 도시의 외피 아래 나 자신이 더욱 초라해 보였던 그날, 끝내 나를 따라오던 어둠이 〈Sentimental Seoul>의 선율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완벽하게 조율된 듯한 도시의 리듬 어딘가에서 첼로 현이 고요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미세한 떨림 속에는 서울에 살면서 숨겨왔던 쓸쓸함과 긴장이 고스란히 얹어져 있었다.
요즘 구수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연예인의 유튜브 영상을 보곤 한다.
서울말이 완전히 익숙해진 나를 보며 가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은 안쓰러워진다.
조만간 다시 내려가야겠다, 싶다.
바람의 냄새와 말의 온도로
다시 나를 확인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