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훗카이도의 작은 도시, 아사히카와. 쓰지구치 게이조는 유괴범에게 어린 딸을 잃는다. 그 시각 그의 아내 나쓰에는 병원의 젊은 의사와 밀회를 나누고 있었다. 게이조는 아내의 목덜미에 남겨진 키스 자국을 보고 딸을 지키지 못한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마침내, 끔찍하리만치 냉정한 복수를 감행한다. 범인의 딸을 양녀로 들이고 아내로 하여금 그 아이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코였다.
이 잔혹한 설정 앞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한동안 멈춰 있었다. '복수'라는 이름의 양육, '속죄'라는 이름의 시련 앞에 선 한 아이가 내 앞에 있다. 그 아이가 보여주는 맑음과 고결함, 그 누구보다 밝고 의연한 태도는 나의 어느 시절과 겹쳐지며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어쩌면 나는 요코였다. 혹은 요코처럼 살고 싶었던 누군가였다.
직장에서 겪었던 한 절의 시간이 떠오른다. 말하지 못한 마음 하나가 오해로 뒤틀려 조롱의 형체가 되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남자 교사와의 짧은 친분은 어느 날, ‘내가 그에게 차였다’는 소문으로 둔갑했고 그 허위는 유부녀 부장 교사의 질투와 뒤섞이며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녀는 그 남자 교사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와 자연스럽게 잘 지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향한 불편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직장 안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 누군가는 외면했고 누군가는 피했으며 더러는 눈빛 하나로 나를 조롱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침묵을 견뎠다. 그러다 병이 생겼고 내 안의 무언가가 천천히 얼어붙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빙점』 속 요코는 학예회 날 모두가 하얀 옷을 입은 가운데 혼자 붉은 벨벳 드레스를 입는다. 기묘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요코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맑은 얼굴로 정성껏 춤을 춘다. 빨간 옷을 입고 선 요코가 내 안 깊은 어딘가를 건드렸다.
“울리려는 사람 앞에서 울면 지는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p.416)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그 시절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응수하고 싶었다. 같은 말, 같은 눈빛, 같은 태도로 대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들의 조롱에도 나는 고개를 들었고 침묵을 선택했다. 품위를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행위는 단순한 고결함이 아니었다. '나는 너희와 달라. 언젠가 너희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은 조용한 복수였다. 그러나 그 복수는 결국 나를 조금씩 좀먹었다.
『빙점』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죄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 자체를 넘어 상처받은 이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미움과 우월감'조차 죄의 얼굴임을 말해준다.
책의 후반부에서 요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요코의 마음에도 빙점이 있었다는 것을. 제 마음은 얼어 버렸습니다.” (p.580)
나는 그 고백 앞에서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정확히, 그리고 너무 날카롭게, 내 안의 침묵과 억울함과 분노에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정직했고 성실하려고 노력했으며,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기억도 없다. 하지만 ‘나는 억울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외침의 이면에, ‘나는 너희와는 다르다’는 교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에도 확실히 얼어붙은 구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응수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조용한 복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결국 내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병이 깊어져 수술대에 올랐을 때에야 비로서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처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삶에 구원의 의미로 다가왔다.
요코가 눈을 뭉쳐 강물에 담갔다가 입에 넣고, 다시 칼모틴을 삼키는 장면은 그 피와 눈의 대비, 죽음 앞에서도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 그 모든 장면이 신학적 상징으로 다가왔다. 요코는 죄의 형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죄를 자각함으로써 구원의 문턱에 선 한 영혼이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 이사야 1:18
그 장면은 내 안의 수많은 질문을 잠잠케 했다. 억울한 사람과 악한 사람,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 세상이 나눈 이분법의 경계는 미약했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진리는 이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러나 그 죄성 위에 은혜는 더 크다.'
가끔은 『빙점』 속 나쓰에를 떠올린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그 내면은 욕망과 불안, 질투로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이성에게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확인받고자 했기에 요코라는 존재가 자신보다 빛나는 순간마다 불편한 감정과 이기적인 행동으로 응수했다.
그 인물을 찬찬히 읽다가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쓰에처럼, 그녀 역시 남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기를 원했고 자신이 아닌 여자가 한 남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그 헛된 욕망을 위해 사실을 비틀고 소문을 만들며 나를 조용히 밀어냈다.
그 당시 나는 억울했고 분노했다. 무언가로 저항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입을 다물었고 마음은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상처를 모른 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죄인이었음을.
그 사건 이후,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외면 너머의 내면, 행동 뒤에 숨겨진 불안, 말의 이면에 감춰진 상처까, 나는 그 모든 것을 ‘죄성’이라는 본질로 꿰뚫어봐야 함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게 주어진 사랑과 은혜를 조금 흘려보내기만 해도 내 마음은 더 이상 그늘지지 않았으니까.
그 일은 오랫동안 나를 붙들었다. 말하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천천히 무너졌고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한 감정들은 내 몸 어딘가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결국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다. 쓰러지지 않았고 무너지지 도 않았다. 그 시절 으스름 속에 잠겨버린 나의 존엄을 건져내기 위해 이제는 말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침묵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자 했던 것은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존엄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나는 조용히 말한다.
'그래도 잘했다.'
나는 빨간 옷을 입고 눈밭 위에 선 요코처럼 조용히 웃으며 춤을 추었다. 그 누구도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내게 끊임없이 진실을 물으셨고 진심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뿐이다.
침묵은 견딤이었고 견딤은 사랑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