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베를린이었을까
왜 하필 베를린이었을까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베를린은 이상할 만큼 나를 끌어당겼다.
총알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벽, 기억의 징표처럼 바닥에 박혀 있는 작은 황동판들, 비극을 상징하는 조형물들, 그리고 불리지 못한 수많은 이름을 대신한 무언의 손짓. 그곳에 있는 내내 묵직한 공기 속을 거닐었다. 죄책과 회한의 눅눅한 감정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듯했다.
베를린은 과거의 과오를 숨기지 않는 곳이었다. 회개를 나타내는 기념물이나 건축물은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고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기념 공간이자 신앙 양심처럼 보였다. '기도 같은 정직함'이 느껴지는 곳. 그런 도시에 내 마음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최근 감히 '감상'이라는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한 영화를 보았다. 『본회퍼: 목사, 스파이, 암살자이다. 나치에 저항한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의 이야기였다. 동시에 시대적 윤리와 신앙을 고뇌하며 끝없이 흔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막대한 배상금에 짓눌렸던 독일 국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국수주의의 거대한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설마 히틀러가 당선되겠냐는 사람들의 상식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일상 속에 뿌리를 내렸다.
영국으로 건너간 젊은 목사는 주교들 앞에서 말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침묵을 말하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동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담보로 한 선언이었다.
"이 고통의 시대를 내 민족과 함께 겪지 않는다면, 전후를 말할 자격도 없다."
그는 자신이 믿는 진리 앞에 온전히 서기 위해 어둠의 한복판인 독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설교단 위에 서서 오직 성경의 본문을 읽으며 하나님보다 히틀러를 위에 두는 행위는 진리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흑인의 인권과 유대인의 생명 그리고 모든 억눌린 존재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그의 설교에는 신학자로서의 명확한 통찰과 목회자로서의 절박한 애통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의 언어는 시대의 정치와 타협하지 않았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복음 안에서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살과 억압을 멈추기 위한 방법을 절실히 모색했다.그리고 결국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다. 이상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침묵하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는 신앙적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품은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명제를 넘어서 있었다. 살인을 멈추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기도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그는 책임지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끊임없이 물었다.
"사람들을 향해 질주하는 차량이 보일 때, 우리는 그들을 위한 장례식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운전자를 멈춰 세울 것인가."
그는 체포되었고 감옥에 갇혀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으며 글을 남겼다. 『옥중서간』 속 그의 문장들은 깊은 고요와 단단한 신뢰로 가득 차 있다. 그 것은 신을 향한 인간의 '확신'이 아니라 끝까지 믿고자 애쓴 고백의 흔적이 아닐까.
교수형을 앞두고 그를 살리려는 이들이 나타났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신다면 당신들과 저의 가족들이 모두 위험해질 것입니다."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그 죽음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끝을 기도로 껴안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군용차에 실려 수용소로 향하던 그의 모습은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끝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씀을 붙들며 살았던 그가 죽음을 향해 실려 가던 그 침묵의 순간은 설명할 수 없는 절망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는 수용소에 도착해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했고 아무 말 없이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침묵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으로 감당하려는 태도의 표현이었다. 그는 죄를 부인하지도 않았고 억울함을 항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리를 온전히 껴안았다. 그 고요한 모습은 모든 진술보다 선명했고 말보다 깊은 증언으로 남았다. 그의 죽음은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삶 전체가 하나의 증언이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의 삶은 내게 하나의 예언처럼 남았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고, "너 역시 침묵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조용히 묻는 듯하다. 말하지 않음이 편하고 외면하는 것이 안온함을 지켜주는 시대이다. 그리고 집단에서 진실에 질문을 던지고 구조의 균열을 말하는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카르텔은 자기 편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결집하고 그 바깥에 선 사람들은 조용히 고립시킨다. 그런 구조 안에서 고립되었던 나의 실존을 떠올린다. 그 침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기에 조용히 때로는 크게 '저항하는 삶이 가장 깊은 기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