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마다 주인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새 그림이 그랬다. 임효영 작가(b.1983)의 그림책 <밤의 숲에서> 32-33페이지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드로잉의 가장 초기작이었던 새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효영의 그림책 <밤의 숲에서>(2019, 노란상상)가 나오게 된 계기는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작가는 머나먼 호주에 살고 있었고 아이를 낳은 직후여서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의 죽음에 상처가 컸고 생각이 많았던 작가는 자신의 방식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어린 아기를 재우고 늦은밤 식탁에서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차오르는 눈물을 떨구었다.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할머니와 작별했다. 그림은 전시나 출판이 목적이 아니었고 그저 할머니를 애도하는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관습이나 사회적 몸짓이 무엇이 중요한가. 누군가는 기도를 하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멈추고 기억만 남는다. 고왔던 기억과 가슴아픈 기억들까지, 엉겨붙은 수많은 마음에서 우리가 남길 것들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할머니 뿐만 아니라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살가운 모녀 사이가 아니라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 이 책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인공이 다시 작가 자신으로 겹쳐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것은 자신을 위한 이야기이며, 그렇게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2017년에 시작된 작업은 다음해까지 이어졌고, 2019년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최종의 그림책으로 묶이기까지 셀 수없이 탄생한 수많은 그림들 중 42점을 추려, 2020년 하우스갤러리2303의 개관전에서 동명의 전시 <밤의 숲에서>로 소개하게 되었다.
집(하우스갤러리)의 벽을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라, 절반의 그림은 액자 없이 종이그림 그대로 책상과 침대 위에도 전시해야만 했다. 이야기 글을 막 완성하고 처음으로 끄적인 할머니 캐릭터의 초기 스케치를 비롯, 한 페이지에 싣기 위해 작업된 여러 장의 그림이 있기도 했다. 그림책에 수록된 최종 원화와 함께 B안 C안의 그림들까지 전시는 책이 태어나기까지 지난 2년간의 흔적을 보여주고자 했다. 늦은밤에 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커피나 찻물 자국이 떨어져있거나 구겨지거나 때가 묻은 그림까지, 그림 속엔 작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실과 아이방, 침실, 복도와 부엌을 오가며 그림책을 넘기듯, 그림들이 펼쳐졌고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그림책 서사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새 그림은 바다를 건너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은유하고 있는 작품으로 거실의 한쪽 벽에 걸려있었다. 밤의 숲에서 여정의 마지막에 다다른 할머니가 어스름한 동이 틀 무렵 자신이 새로 변할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곧 아침이 온다는 걸 직감하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림이 있는 페이지의 글을 잠시 소개한다.
마침내 할머니는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힘찬 날갯짓 아래로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오래된 그리움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이고, 이제야 가벼워졌네."
새 그림은 두가지 버전이 있었다. 가장 먼저 그려진 '첫번째 그림'과 최후에 그려진 '마지막 그림'. 구도는 비슷하지만 새의 형태가 바뀌었고 다소 거친 호흡의 뭉특한 연필선은 좀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2년의 시간 동안 고유의 형태와 패턴, 표현으로 개성있게 정리되어 '완성'되었다. 그림책에 수록된 '마지막 그림'은 전시가 오픈되자마자 바로 하노이에 살고 있는 눈밝은 컬렉터의 눈에 띄어 전시 초반 진짜 바다를 건너 자신의 집을 찾아 날아갔다. 한편 '첫번째 새 그림'은 전시 말미까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거칠고 투박한 선이라 완성도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그림은 또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도 했다.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작가의 첫번째 호흡을 담고 있어 매우 귀하고 의미있는 그림이었다.
어느날, 다큐멘터리 감독인 Y와 변호사 K는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밤의 숲에서> 전시를 보러왔다. 조용히 전시를 보고 있던 K의 눈이 오랜 시간 새 그림에 멎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그림 앞에서 평소보다 길게 이야기를 했다. 작가가 처했던 상황,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 이 그림의 은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던 K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안에 눈물을 담고 있는 눈물 주머니가 있다면 K는 늘 눈물을 가득 담아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물은 줄기가 아니라 폭포처럼 온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슬픔이 가득하고 유약한 인간의 모습엔 그저 함께 가슴 아파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다가 Y와 K는 돌아갔다.
늦은 밤에서야 Y에게서 문자가 왔다. K는 그림을 보고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K와 늦은 밤까지 그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K는 늘 마음이 아팠으리라. 바쁜 일상 속에서 무상의 시간이 생겨날뿐, 슬픔은 쉽사리 옅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속 돌덩이는 녹지 않고 무겁게 내려앉아있고 마음은 늘 부서지고 흩어졌을 것이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그 마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싶지만, 우리는 얼마나 무력하단 말인가.
K는 그림을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어딘가 망망대해를 날고 있지 않는지, 헤매이지 않게, 이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그 새는 K에게는 동생이었던 것이다. 그림도 기다렸으리라. "멋있다. 좋다" 그림 앞에서 속삭이던 수많은 이들의 감탄 속에서도 그 새는 쉽사리 곁을 주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진짜 주인을 기다렸으리라. 작가의 부엌 테이블에서 태어난 그림은 마침내 자기 집을 찾게 되었다.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새가, 주인을 찾아 간 것 같아요. 저도 무척 좋아했던 작품이고, 저 말고도 여러 사람이 그 새를 데려갈까 망설였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주인이 생기지 않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새가 K님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새가 슬픔을 넘어서 위안과 삶에 용기를 주길 바랄께요. 동생분도 그러하길 바라고 있을 거란 생각이, 감히, 들었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표현의 빈곤을 느끼며, 나는 부족한 어휘를 골라 메세지를 전송했다.